밖에서 키운다. 게임업계 주도하는 투자와 퍼블리싱 결합 모델
자체 IP(지식 재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내부 개발력 확충에 힘을 쓰던 게임업계가 다시 퍼블리싱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물론 예전과 같은 방식은 아니고, 투자와 퍼블리싱이 결합된 보다 공격적인 형태다.
이전에 대형 게임사들 위주로 자체 개발력 확충에 나섰던 이유는 IP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퍼블리싱 사업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게임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게임이 성공하더라도 퍼블리싱 계약 기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과거 '서든어택'의 계약 종료로 큰 피해를 봤던 넷마블이나, '검은사막'으로 유럽 진출에 성공했지만, 계약 종료로 인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된 카카오게임즈 유럽 법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내부에 개발팀을 꾸려서 IP 강화에 나서는 경향이 커졌지만, 이 역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높아진 몸값으로 인해 자체 개발인원을 늘리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로 끌어들인 개발팀이 대기업 시스템에 녹아들면서 스타트업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잃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때마침 게임업계를 강타한 노조 열풍도 대형 게임사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양쪽의 모든 장단점을 경험한 게임사들이 새로운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이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면서 동시에 지분 투자를 진행해 향후 계약 연장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혈맹 관계를 갖추는 것이다.
완전 인수 대비 초기 투자 금액이 대폭 줄어들어 위험 부담이 덜하며, 향후 게임 성공시 지분을 바탕으로 퍼블리싱 계약 연장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인 만큼 당연히 위험이 있긴 하지만, 여러 시도 중 한번만 성공해도 그동안의 실패를 모두 만회할 수 있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에 이어 시프트업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투자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위메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라이온하트 스튜디오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처럼 회사의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는 게임으로 성장하게 되면, 추가 투자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초반에 저렴하게 확보한 지분 덕분에 현재 가치 대비 적은 금액으로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게 되며, 인수 협상이 결렬돼 퍼블리싱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초기 투자 대비 엄청난 가치로 성장한 보유 지분을 비싸게 팔면 된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이점이 많다. 스타트업 상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지분 투자와 퍼블리싱 계약을 함께 하면, 일부 지분만 넘기면서 초반 개발 자금 확보 및 대기업의 마케팅 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으며, 향후 게임 성공시 상장을 노리거나, 회사 매각을 통해 또다른 성공을 꿈꿀 수 있다.
임직원 입장에서도 대기업 산하 직원이 되면 성공하더라도 모든 공이 회사 소유가 되지만, 스타트업을 유지한 상태에서 성공하면 스톡옵션 등을 통해 대박을 꿈꿀 수 있다. 대기업의 경직된 분위기 없이 스타트업 특유의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창작욕구를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방식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카카오게임즈다. '검은사막'을 통해 뼈저린 학습을 한 카카오게임즈는 이후 퍼블리싱 계약을 모두 지분 투자와 병행하고 있으며, ‘오딘 발할라 라이징’으로 달콤한 성공을 맛봤다.
앞으로 선보일 게임인 ‘에버소울’, ‘디스테라’, ‘아레스 라이즈 오브 가디언즈’ 모두 개발 초기부터 퍼블리싱과 함께 지분 투자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 중 하나라도 ‘오딘 발할라 라이징’급으로 성장해준다면, 더 이상 “자체 IP가 없어 영업이익률이 약한 퍼블리싱 기업의 한계”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또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개발진들이 설립한 프로스트 자이언트 스튜디오와 ‘울티마 온라인’, ‘메타플레이스’ 개발진이 설립한 클라우드 기반 게임 및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플레이어블 월즈 등 성공 가능성 높은 해외 게임사에도 발을 걸쳐뒀으며, 상생 펀드를 통해 인디 게임사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강자이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신생아인 하이브IM도 지분 투자와 퍼블리싱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인 BTS IP를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자체 개발력의 한계를 느낀 하이브IM은 마코빌의 ‘프로젝트B’, ‘프로젝트OZ’의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플린트의 ‘별이되어라2’의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별이되어라2’의 퍼블리싱 계약은 하이브의 지분 투자가 함께 하는 계약이며,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마코빌에도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하이브의 박지원 대표는 지스타 때 진행된 ‘별이되어라2’ 간담회를 통해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 있는 게임사에 지분 투자를 결합한 퍼블리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분 투자가 결합된 형태는 아니지만, 소규모 인디 게임사 대상 퍼블리싱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인디 게임은 시장이 작아서 대형 게임사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지만, 구글, 애플, 스팀 등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으로 해외 시장까지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 인디 게임 최초로 글로벌 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네오위즈의 ‘스컬’처럼 의외의 대박 사례가 등장하기도 하고, 인디 게임 특유의 신선함 덕분에 식상한 게임만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안한다는 선입견을 날려주는 부가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다에리 소프트의 경우에는 원래 모바일 게임 개발사였다가, ‘인생 게임’, ‘사신키우기’ 등 인디 게임 퍼블리싱으로 재미를 본 뒤에, 본격적인 인디 게임 퍼블리싱 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개발력이 부족한 인디 게임사의 상황을 고려해서 적극적으로 개발지원을 하면서 초기 버전보다 월등히 향상된 결과물로 발전시키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자체 개발 -> 퍼블리싱 -> 자체 개발 -> 투자와 퍼블리싱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시장 분위기가 바뀔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딘 발할라 라이징’, ‘승리의 여신 니케’ 등 성공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 투자와 퍼블리싱 결합 모델이 당분간은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