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의 끊이지 않는 성희롱·성추행 사건, 해결 방법은 없나?
잊을만하면 게임업계에서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월 3일, 프랑스 신문사 ‘리베라시옹’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검찰이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와 부사장 등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전직 유비소프트 직원 5명을 체포했다.
해당 사건의 시발점은 2020년 6월 있었던 유비소프트 내 직장 괴롭힘 및 성추행 사건이다. 당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회사 내 고위 간부들이 여성 직원에 대한 성폭력부터 인종차별은 물론 자신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목록인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했다.
이후 2021년 7월, 프랑스 노조 ‘컴퓨터 연대’에서 유비소프트에게 직장 괴롭힘 및 성추행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고, 프랑스 검찰의 1년이 넘는 조사 끝에 이루어진 것이 이번 체포다.
올해 2월에도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당시 블리자드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사건 등 위법 행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43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 받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블리자드가 지난 2021년 회사 내에서 발생한 각종 성차별, 성추행 문제를 고의로 숨겨,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2021년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부(DFEH)가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블리자드 내부에서는 여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성희롱, 임신 등의 이유로 여성 직원의 승진 기회 박탈, 남성 직원들의 업무를 여성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물론, 국내 게임 업계에서도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적 있다. 지난 7월, 국내 유명 게임 음악 작곡가이자 시프트업의 관계회사인 ‘에스티메이트’의 대표였던 박진배 전 대표는 한 여직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피해자가 사건을 폭로한 게시글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김형태(시프트업 대표)를 만나게 해 줄 테니 자기 말 잘 듣고 따라오라”며, “네가 사랑을 모르는 것 같으니 사랑을 알려 주겠다”라고 이야기했다.
피해자는 전부터 동경하고 있었던 김형태 대표를 만나고 싶어 과도한 업무도 감내했고, 그 과정에서 친밀해진 박 전 대표와 여러 차례 성관계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가해자가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와 교감하고 정신적으로 지배한 뒤 저지르는 성폭력) 형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성희롱,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까?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건 게임업계의 구조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회사는 보통 2인 이상의 개발팀 단위로 움직여 팀장이 절대 권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며, 과거에는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일과 같은 중요 일정을 앞두고 실시하는 강도 높은 업무 및 연장 근무)로 인해 회사에 장기간 머물면서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비교적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표현했다.
또한 관계자는 최근 ESG(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 기업의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비재무적 성과)와 PC(정치적 올바름) 문화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 과거에 무심코 넘어갔던 일들이 부당한 행위였음을 깨닫고 뒤늦게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게임업계 노조 측에서는 “게임업계 내에서는 성차별, 성희롱, 인종차별, 임금체불, 부당처우 등 다양한 종류의 노사 간 갈등 요인이 수면 위로 부상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이슈들은 어느 업계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경우는 그간 단체 교섭이나 단체 행동에 미숙했던 탓에 어떤 사안으로든 회사를 상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웠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도록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국내 게임 기업들은 성희롱 및 성추행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며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는 의무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무 성교육 외에도 신규 입사자들이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온보딩 과정, 관련 직무 전문가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돕는 직무 교육 프로그램, 조직의 리더십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 프로그램에서도 성차별 및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한 매니저는 “신입부터 고위 간부까지 관련된 내용을 철저하게 교육하고 있어 안정된 사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너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넥슨도 빠질 순 없다. 넥슨은 매년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넥슨코리아 내 건전한 조직 문화를 발굴, 소개하는 별도의 캠페인을 추가로 실시하며 건강한 조직 문화 구축에 힘쓰고 있다.
이어서 넥슨의 관계자는 조직생활 및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조직 내 관계문제,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인사관련 고충 등 고민을 함께 나누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고충 상담, 직장 내 성희롱 상담/제보, 직장 내 괴롭힘 상담/제보’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고인 보호를 위한 조치 및 신고인 정서안정을 위한 조사 중 심리상담 지원, 재발방지를 위한 행위자 조치, 모니터링, 신고인 사후 심리상담 지원 등 후속 조치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위메이드도 인권경영 정책을 기반으로 ‘기업윤리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윤리 상담센터’는 기타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회사 손실을 초래한 비리행위와 직장내 괴롭힘, 성희롱 등의 노동 관련 문제 등에 대하여 상담과 신고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성차별이나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신고 및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 심적으로 든든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런 성희롱 및 성추행 문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가시화되고 사라졌다. 다만, 게임업계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더라도 조직의 소속된 개인이 저지르는 모든 부적절한 행위를 막을 순 없다.”, “때문에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개개인의 노력과 인식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