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암살보다 소매치기를 더 많이 하는 암살자?"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전세계 2억 장의 판매량을 올린 유비소프트의 대표 프랜차이즈 시리즈이자 고대부터 근대까지 시간대를 넘나들며 암살 활극을 펼치는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신작이 새롭게 출시됐다. 지난 10월 5일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예고한 작품이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바이킹 침공이 시작되던 잉글랜드를 지나 시리즈 최초로 중동의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은밀하게 상대를 처치하는 ‘암살’보다 전투로 상대를 처치하는 요소가 더 돋보였던 최근 시리즈의 흐름에서 벗어나 과거 ‘어쌔신 크리드’ 원작의 오마주를 듬뿍 담은 작품이라는 것도 주목받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플레이해본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이 암살을 중심으로 한 플레이로 회귀한 것은 좋으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특유의 실제 역사와 연계된 밀도 높은 스토리가 전혀 부각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콘텐츠가 상당히 적어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이었다.
먼저 그래픽의 경우 워낙 철저한 고증으로 박물관의 학습자료로 사용되는 ‘어쌔신 크리드’답게 9세기 바그다드의 모습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국적인 염료와 복장, 우리에게는 낯선 아랍어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은 물론, 실크로드에 걸쳐있어 동서양 문화의 중심지였던 전성기 바그다드의 느낌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를 줄 정도였다.
여가에 소매치기를 일삼던 도시의 부랑아 ‘바심’을 주인공으로 한만큼 도시를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할 수 있는데, 이 덕분에 도시의 인파가 서로 이야기하고, 이동하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풍경이 연출되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를 더한 모습이다.
게임 진행은 크게 메인 미션을 중심으로 한 암살 플레이와 토큰을 활용한 다양한 부가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원작으로 회귀를 언급한 작품답게 이번 작품은 전투보다는 암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스킬트리인데, 방어력을 높여주거나, 공격력을 높여주는 스킬이 없고, 암살에 유리한 스킬로 구성되어 있어 후반부에서도 3~4명에게 둘러싸이면 곧바로 사망할 만큼 대놓고 전투를 벌이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무기와 방어구 등 장비 역시 스탯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암살 소음을 줄여주거나, 체력을 회복하는 등 암살에 유리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공격력을 높여주는 장비는 50% 체력 페널티가 있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붙어있다. 한마디로 전투보다 숨어서 한 명씩 처치하는 형태의 전투를 강제한 셈이다.
여기에 일반인이 보는 곳에서 대놓고 사람을 처치하면 악명이 높아지는데, 이 악명 단계가 높아질수록 도심 곳곳에 병사들이 배치되고, 최고 단계인 3단계에서는 쌍칼을 든 강적이 이용자를 추적한다.
이 강적을 처치하면 악명 단계는 낮아지지만, 암살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으며, 공격 한방에 체력 1/3이 없어질 만큼 강력하고, 거의 모든 공격을 패링(반격)하기 때문에 사실상 1:1 전투로 잡기 어렵다.
이 악명 단계를 낮추기 위해서는 도심 곳곳에 있는 수배 전단을 찢거나, 무다니에게 ‘위력 토큰’을 제공해 수배 단계를 낮출 수 있는데, 이 토큰을 얻기 위해서는 소매치기를 하거나 부가 미션을 하는 방법밖에 없어 암살보다 소매치기에 집중하는 상황이 여러 번 펼쳐졌다.
이 토큰은 ‘위력 토큰’, ‘학자 토큰’, ‘상인 토큰’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물건의 가격을 깎거나, 경계하는 이들의 입을 열게 하는 등 메인 퀘스트와 게임 플레이 전반에 쓰이기 때문에 되도록 아껴 사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위력 토큰’의 경우 용병에게 사용하여 경비대와 전투를 붙일 수 있는데, 이 혼란한 틈을 타 건물에 잠입하거나, 중요 인물을 암살하는 등 매우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처럼 생기 넘치는 도시와 암살을 중심으로 하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등 게임 플레이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지만, 어쌔신 크리드 특유의 밀도 높은 스토리는 이번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9세기 아랍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도시 바그다드에서 소매치기하며 살아가는 인물인 ‘바심’이다.
이 ‘바심’은 전작인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를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매우 익숙한 인물인데, 게임의 주인공인 ‘에이보르’에게 암살단의 존재를 알린 인물이며, 게임 보스로도 등장하는 등 인상 깊은 활약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번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이 ‘바심’이 암살단에서 활약하게 된 이유와 아랍에서 왜 머나먼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이동하게 됐는지에 대한 기원을 다루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번 작품에서는 ‘애니머스’를 통해 과거로 이동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어쌔신 크리드’가 현대의 인물이 ‘애니머스’로 DNA를 분석해 과거 인물의 삶을 체험한다는 컨셉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다. 문제는 이 ‘애니머스’ 장면의 삭제로 게임 속 ‘바심’의 행동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스토리가 붕 뜨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왜 이 인물이 이런 능력을 갖췄는지, 꿈속이나 결사단을 처치할 때마다 나타나는 ‘지니’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 게임의 결말만으로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 게임의 주인공임에도 조연으로 출현했던 전작인 ‘발할라’보다 존재감이 떨어질 정도였다.
이 부분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전작인 ‘발할라’를 플레이해봐야 하는데, 가격이 5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게임에서 전작을 플레이해야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은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콘텐츠의 양이나 맵이 상당히 적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 게임의 메인 스토리의 핵심인 고대 결사단은 고작 5명이다. 물론, 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다양한 형태의 미션이 등장하지만, 메인 퀘스트에 집중하면 금세 게임이 엔딩으로 향할 정도로 짧은 수준이다.
워낙 스토리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이 결사단의 악행도 별로 부각 되지 않는데, 중간 컷 신으로 나오는 이들의 악행이 생각보다 초라해서 “이렇게 대놓고 암살할 정도로 얘들이 잘못했나?” 싶은 정도였다.
여기에 부가 미션의 양도 10~15개 정도에 그치는 데다 전체 지역 중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이 적고 모험 지역도 사실상 바그다드 한 곳밖에 없다. 이는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독특한 모험을 접할 수 있는 전작들과 비교되는 부분으로, 지역은 크지만, 맵은 좁은 반쪽짜리 오픈월드 게임이라는 인식을 지우기 힘들었다.
이처럼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게임 시스템의 수준은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부족한 콘텐츠와 당위성이 떨어지는 스토리 등 이전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와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는 게임이었다.
다양한 DLC로 게임을 완성했던 전작 ‘발할라’처럼 과연 어떤 DLC로 이 부실한 바그다드의 세계를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지 앞으로 유비소프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