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 게이머에게 외면받는 조이스틱.. 히트박스 이용자 늘어난다
"격투 게임할 때 조이스틱이 필수라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히트박스가 훨씬 편해요. 장점이 많거든요"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격투 게임 전문 이벤트홀 '콩터'. 여기에서 만난 한 격투 게임 마니아는 "히트박스로 전향한 지 1년 정도 됐다"라며 "조이스틱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마니아 또한 "히트박스로의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거들었다.
이처럼 대전 격투 게임이 생겨난 이후 30년 넘게 전용 컨트롤러로 각광받았던 조이스틱이 위기를 맞고 있다. 레버가 없이 버튼으로만 구성된 주변기기 '히트박스'가 점점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글로벌 공식 대회인 '에보' 등에서 히트박스를 전면 허용하기로 하면서 조이스틱업계의 위기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이스틱, 시끄럽고 비싸고 보관도 불편
우선 유부남 중년층은 조이스틱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오락실에서 스틱을 제법 잡아봤다는 사람들도, 조이스틱 특유의 소음 때문에 포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장풍을 쏘거나 특수 기술을 쓸 때 레버를 돌리면서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특유의 '따다닥' 거리는 소음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
특히나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게임 한판 하려고 하면 자던 애들이 조이스틱 소리에 깰 수도 있고 층간 소음 항의를 받을 수도 있어 좀처럼 조이스틱을 꺼내기 어렵다.
여기에 조이스틱은 보관도 불편하다. 네모난 평면이 아니라 가운데에 레버 부분이 우뚝 솟아있기 때문에 어디에 쌓아놓을 수도 없고, 향후 2인용을 대비해서 2대를 구비한 경우에는 더욱 보관이 어렵고 번거롭다.
또 하나 가격도 스틱 이용자들에게 허들이 되고 있다. 최근 '스트리트 파이터 6'나 '철권 8'이 출시됐다는 소식에 조이스틱 하나 사볼까 싶었다가 가격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적당히 쓸만하겠다 싶으면 40~50만 원 선. 아무리 자재비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조이스틱의 대체품, 히트박스 판매량 급증
불과 3-4년 전만 해도 히트박스는 몇몇 게임 이용자들이 자작해서 만들거나 중소 개발사들만 취급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레이저 등 글로벌 메이저 게임 주변기기 판매상들도 일제히 히트박스를 내놓고 있다. 그만큼 시장층이 확대됐다는 뜻이다.
히트박스는 우선 조작이 정확하다. 키보드처럼 상하좌우 4개를 조작해서 누르기 때문에, 조이스틱의 레버처럼 삑사리(조작실패)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초보자들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승룡권 커맨드를 매번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다.
나아가 보관도 쉽다. 납작한 판에 버튼만 박혀있기 때문에 구석 틈에 세워놓을 수도 있고, 책장 틈 같은 곳에 끼워 넣을 수도 있다. 또 스틱처럼 조작감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무겁게 만들 필요도 없어서, 작고 이쁘게 생긴 것도 매력이다.
무엇보다 조이스틱 보다 저렴해서, 싼 것은 4만 원 대에도 구할 수 있으며, 최소 2만 회 이상을 보장하는 버튼으로만 구성되어 내구성도 상대적으로 더 강한 편이다. 키보드 기반으로 만들 경우 반응 속도도 일반 조이스틱 보다 빠른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상대적 장점 때문에 히트박스는 최근 격투 게임계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등 주요 포털에서 히트박스라고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제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락실없이 키보드로 게임하던 세대의 사회 진출
청소년기를 오락실에서 보낸 현재의 30~50대 게임 이용자들에게 히트박스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어떻게 게임을 저런 버튼으로 눌러서 하나 라며 신기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락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사회 진출을 하고 있는 현재 이 같은 생각은 맞지 않다. 이들 세대는 오락실 대신 과거 레트로 게임이나 격투 게임을 키보드로 즐겨온 세대다. 조이스틱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히트박스'가 정통성을 가진 컨트롤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인기 유튜버나 세계 대회의 권위 있는 선수들이 히트박스를 사용하는 것도 영향이 크다. 짬타수아처럼 키보드로 게임하면서도 특출 난 실력을 보이는 인플루언서, 우메하라 다이고처럼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프로게이머가 조이스틱에서 히트박스도 전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향후에 격투 게임을 즐기기 위한 컨트롤러 분야에서 히트박스의 비중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크 스틱을 개발 중인 아이에스티솔루션의 송대진 대표는 "'철권 8'이 출시되어 조이스틱이 잘 팔리고 있지만 판매량이 예상에 비해 30% 적은 상황이다. 히트박스의 영향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체 히트박스 제작 생산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