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경쟁상대 닌텐도, 닌텐도 경쟁상대 틱톡?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닌텐도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이키 측에서 직접적으로 내뱉은 문장은 아니지만, 나이키의 타겟층인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기 위해 실내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 나이키의 성장세 둔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줬다는 책과 분석글이 쏟아져 나오면서 널리 퍼진 형태다.
실제로 당시 닌텐도는 게임기 Wii(위)를 기반으로, ‘Wii Sports’, ‘Wii Fit’ 등 스포츠와 적절하게 결합된 게임 타이틀을 통해 엄청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를 거친 게임계는 늘어난 인건비, 마케팅비, 개발비 등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당수의 게임사가 적자와 실적 악화를 면치 못했고, 인원 다이어트에 돌입하며 과하게 투자된 분야에 대한 재화를 회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업계 해고 인원을 기록 및 집계하는 사이트 ‘게임 인더스트리 레이오프’에 따르면 2024년 이후 1만 명 이상의 인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틱톡을 비롯한 ‘숏폼’ 콘텐츠다. 숏폼이란 1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유튜브에서는 ‘숏츠’, 인스타그램에서는 ‘릴스’로 불리기도 한다. 적은 시간으로 순간적으로 많은 정보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숏폼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게임에 준하는, 혹은 보다 대중화된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장분석업체 와이즈앱ㆍ리테일ㆍ굿즈가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인 IOS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순서대로 ‘유튜브’,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네이버’, ‘틱톡’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4년 4월 기준)
특히 이 리포트는, 회사가 모바일 앱 통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 ‘인스타그램’이 처음으로 ‘네이버’를 앞질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런 움직임은 ‘인스타그램’이 2021년 한국에 숏폼 콘텐츠 ‘릴스’를 도입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며, 해당 앱은 2024년 2월 기준 2019년 대비 사용자 수가 96% 급증한 바 있다.
아울러 ‘인스타그램’ 외 ‘유튜브’, ‘틱톡’도 숏폼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앱임을 고려하면 우리 생활에 숏폼이 얼마나 깊게 들어와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제 ‘닌텐도(게임)의 경쟁상대는 틱톡(숏폼)이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게임사들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게임사들은 시대에 발맞춰 ‘게임의 숏폼화’를 이뤄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소년층의 상당수가 즐기는 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뱀서라이크풍 기간 이벤트 ‘집중포화: 동물특공대’, 2vs2 투기장 형식 ‘아레나’ 등의 별도의 게임 모드를 적극 추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본편의 경우 한 판당 30분 내외로 걸리는 경우가 잦아, 보다 빠르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이용자들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레나’의 경우 플레이 타임이 15분, 오는 18일 정식 출시 예정인 ‘집중포화’ 역시 보다 짧고 간단한 플레이 방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엇게임즈 게임 디렉터 푸 리우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LoL은 한동안 랭크게임에 초점을 맞춰 변화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용자들이 보다 마일드한 경험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에서도 ‘숏폼화’를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은 최근 신규 모드인 ‘리로드’를 출시했다. ‘리로드’의 특징은 ‘속도감 있는 배틀로열’으로, 틸티드 타워, 리테일 로우 등 기본 맵의 크기를 더 작게, 폭풍의 움직임은 더 빠르게 해 게임의 템포를 올렸다.
또한 리로드는 별도의 조작 없이 4인 팀원 중 한 명만 남아있어도 사망한 인원이 자동으로 부활할 수 있어서,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존과 전투’의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픽게임즈의 한 관계자는 “이용자분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동안 불었던 방치형 게임 열풍도 숏폼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부분의 방치형 게임의 경우 별다른 조작 없이도 캐릭터가 성장하고 재화가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용자는 쌓인 재화를 어디에 투자할지 고른 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된다. 그 정도로 조작 방식이 가볍다.
이를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방치형 게임에서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다음 영상을 보기 위해 숏폼을 스와이프(손가락을 댄 후, 일직선으로 드래그하는 행위)해서 넘기는 것과 유사하다고 본다.”라고 표현했다. 가벼운 조작으로 재화를 투자한 캐릭터가 대미지 이펙트 등으로 강해지는 걸 보는 것이, 숏폼에서 새로운 영상을 쓱 넘겨보는 것과 유사한 피드백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관계자는 “요약하자면 간단한 조작과 빠르고 직접적인 정보값이 숏폼과 방치형 게임의 유사점이라고 본다. 이 부분이 방치형 게임의 흥행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다.”, “꼭 방치형 게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출시하는 게임들이 대부분 시대의 걸음에 맞춰 ‘숏폼화’될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