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팬이라면 그래도...'어스토니시아 스토리(리파인)'
1994년 처음 등장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국내 RPG 시장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으로 꼽힌다. 처음에는 아마추어들이 모여 개발을 시작한 작품이었지만, 출시 당시 세계관이나 설정은 물론 게임의 플레이 방식 등 재미가 일본산 RPG와 견줄 수 있는 모습을 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등장과 흥행은 한국 게임 개발사들이 본격적으로 PC 게임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 기존에도 국산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보여준 모습은 차원이 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국산 명작 RPG들은 직간접적으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영향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80~90년대 콘솔 게임기를 통해 JRPG를 즐겨온 모 편집부의 모 기자는 “나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나 '창세기전'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랑그릿사'가 더 재미있는데 친구들은 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나 '창세기전'을 즐기지 않느냐, '너는 일본 사람(비속어)이냐?', '심지어 PC 게임은 공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라고 말하며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겼다. (절대 본인 아님)
90년대 '오덕' 생활의 힘듦과 PC 게임에 대한 저작권 인식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PC 게임을 개발해 선보여온 개발진들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다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1994년 출시 이후 2002년 한국형 휴대용 게임기인 GP32로 리메이크 버전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이 발매됐고, 2002년 말 이를 활용한 PC 버전이 등장했다. 2004년에는 모바일 버전, 2005년에는 PSP 버전까지 등장했다. 잊힐 때쯤 되면 한 번씩 다시 등장한 셈이다.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2025년 12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을 기반으로 더 아름다운 픽셀 아트 그래픽으로 무장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리파인)'가 발매됐다. 게임의 발매는 대원미디어가 맡았고, 개발은 '환세취호전'을 '환세취호전 플러스'로 선보인 웨이코더가 맡았다. IP 홀더인 넷마블네오도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참고로 출시 이후 제법 시간이 흐른 1월 첫 번째 패치가 진행된 스위치 버전으로 게임을 즐겼다.

기본적인 게임의 스토리는 원작과 동일하다. 왕가의 보물 '카이난의 지팡이'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주인공 로이드가 수송 도중 의문의 기사 프란시스에게 습격을 받아 지팡이를 강탈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팡이를 회수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로이드 앞에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여러 동료를 만나며 더 큰 이야기에 휘말리게 된다.
원작이 90년대 등장한 작품인 만큼 기존 RPG의 전형적인 모습을 따른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이다. '정말 지금 여기서 끝이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엔딩과 후반부도 당연히 그대로다. 물론 개발사 사정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겠지만, 이야기가 좀 더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 손노리 특유의 개그 센스가 녹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위 '아재 개그'라며 썰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불법 복제 개그 등을 보면서 어느새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현대 시점에 맞춰서 준비하다 보니 일부 대사들이 중세 판타지 세계관과 현대적인 대사가 충돌하는 지점이 생겨 호불호의 영역으로 남을 듯하다.
이 외에도 이원술 대표를 닮은 패스맨과 같은 불법 복제 방지 추억부터 시작해 '이거 나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소니의 대머리 캐릭터를 닮은 캐릭터나 택배 게임 하러 간다는 이름이 뱀일거 같은 대장 캐릭터 등 게임 곳곳을 살펴보면 새롭게 준비하며 신경을 쓴 모습들이 보인다. 또 거대한 월드맵을 이동하는 형태가 아니라 구역별로 나누어진 맵을 이동하는 것도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작품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게임의 전투 부분이다. 전투는 최대 6인으로 파티를 구성해 진행한다. 원작의 SRPG 스타일 전투를 그대로 따른다. 캐릭터의 이동 순서에 따라 공격을 펼치고, 턴마다 회복되는 AP를 활용해 다양한 공격을 펼칠 수 있다.
또 적마다 다양한 약점이 존재하고, 사이드 어택과 백어택의 존재가 전략적인 재미를 한층 살려준다. 여기에 입구가 좁은 고지대 등을 활용한 전략도 유용해 전투를 비교적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물론 게임 후반부에 가면 강력한 광역 기술 등을 주로 사용하게 되지만 말이다. 더불어 강력한 보스를 공략하는 재미도 살아있고, 최강 기술인 '헬파이어'와 같은 스킬도 별도의 탐색이나 다른 조건 없이 레벨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강점으로 다가왔다.

이번 작품의 용병 시스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원작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경우 게임의 3분의 1 가까이 주인공 '로이드' 캐릭터 하나만 사용하는데, 이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에서 렌달프의 합류 등을 더해 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는 이보다 앞선 상황부터 용병 캐릭터를 활용해 전투를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동료가 많아지면서 'Out of Memory' 메시지를 남기고 게임이 꺼졌던 그 시절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기억하는 이용자라면 엄청난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매력적인 비주얼도 게임의 강점이다. 스퀘어에닉스가 선보인 HD-2D 느낌과 유사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리파인)'의 그래픽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픽셀 그래픽의 퀄리티가 수준급이다.
게임 초반 지팡이를 호위하며 마을을 가로지르는 장면이나 전투 장면에서 각종 연출 등 여러 부분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좀 더 세밀해진 묘사는 올드 팬들과 신규 이용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물론 화면이 너무 밝거나 흐릿하게 느껴지는 문제 등이 있었다. PC 버전인 퍼플 서비스 버전에서는 이용자가 마음에 드는 그래픽 스타일을 고를 수 있는 패치가 진행됐으나 스위치 버전의 경우 8일 기준으로 아직 변화가 없다. 빠른 패치를 기대해 보자.
전체적으로 보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리파인)'은 기존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 추억을 가진 이용자라면 그래도 추억을 떠올리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많고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게임의 특성상 게임 후반부에 가면 레벨업을 위한 전투가 많이 필요 없지만, 필드의 몬스터를 달려서 피해 가는 일이 쉽지 않아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 별도의 연막탄 아이템을 사용해야 하는 점 등이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계속 달릴 수 있는 '달핀 슈즈'와 같은 신발을 얻어도 갑자기 등장한 적을 피하지 못해 전투에 진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는 레벨에 따른 AP 추가 지급과 행동 순서 조정 등이 PC 버전에 패치가 진행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스위치 버전은 이마저도 패치가 되지 않은 상황이고 말이다. 2배속이나 전투 스킵, 적 HP 감소 등 여러 대안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 엔딩을 보고 나면 2회차가 바로 진행되는데, 엔딩을 보고 등장하는 스코어를 경신하는 것 정도를 빼면 2회차를 플레이해야 할 이유가 전무한 수준이다.

외에도 표정도 없고 개성도 없는 캐릭터 일러스트, 아이콘 형태로 대체된 모든 아이템 모습, 존재에 의문을 갖게하는 미니맵, 일부 삭제된 이벤트, 파티원의 급작스런 전략 이탈로 인한 자동 대체 등 아쉬운 부분이 많다.
더불어 기자는 원작의 Out of memory 버그가 등장해야 할 시점에 '에러가 발생하여 소프트웨어를 종료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스위치에서 게임이 갑자기 종료됐다. 의도한 타이밍인가 잠깐 생각이 들었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은 '리파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완성도를 위해, 앞으로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한 시스템 보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명성이 궁금했던 신규 이용자라면 넷플릭스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세이브 더 게임'을 보면서 게임을 천천히 기다려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