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 한 칸에서 시작된 작은 왕국. '드랍 더치' 개발한 슬리피 밀 스튜디오
인디 개발사 슬리피 밀 스튜디오(Sleepy Mill Studio)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언젠가 만들고 싶은 꿈의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완성할 수 있고 플레이어가 실제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택했다. 전직 AAA 개발자가 약 3년 전 설립한 이 스튜디오는 현재 그리드 기반 조립 퍼즐과 전략적 의사결정을 결합한 로그라이트 게임 '드랍 더치'를 개발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이상보다 현실을, 직감보다 데이터와 플레이테스트를 우선하는 개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 꿈이 아닌 현실에서 출발하다
슬리피 밀 스튜디오 창립자는 대형 스튜디오와 인디 양쪽을 모두 경험한 개발자다. 그러나 새로운 팀을 시작하며 그는 의도적으로 낭만적인 접근을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제가 꿈꾸던 게임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지금 가진 자원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는지, 규모가 실제로 관리 가능한 범위인지,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이미 익숙하게 즐기고 있는 경험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먼저 점검했다. 당시 로그라이트 장르는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는 단순히 유행을 쫓기보다 유사 장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사용자 리뷰를 면밀히 분석하며 플레이어의 선호와 불편 요소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트렌드를 베끼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로 재미있어하는 지점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이 접근은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1인 개발로 출발하면서, 대규모 서사가 중심이 되는 게임이나 시네마틱 연출이 많은 작품, 막대한 리소스를 요구하는 캐릭터 중심 시스템과 같은 형태는 처음부터 현실적인 선택지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 ‘범위 관리’는 디자인 원칙이자 생존 전략
초기 프로토타입은 전적으로 혼자 개발됐다. 이후 퍼블리셔가 합류하며 아트·사운드·음악 담당이 추가됐지만, 팀 규모는 평균 3명 남짓에 불과했고 전원 상근 체제도 아니었다. 이 환경에서 범위 관리(scope discipline)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모든 기능은 두 가지 기준으로 검토됐다.
하나, 현재 조건에서 구현 가능한가? 둘, 플레이 경험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가?
이 과정에서 캐릭터 시스템은 과감히 제외됐다. 개발 부담에 비해 체감 가치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멀티플레이 역시 타깃층과 맞지 않고 복잡도만 크게 증가한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반대로 개발자가 처음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들도 플레이어 요구에 따라 추가됐다. 난이도 옵션과 보스 전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가 넣고 싶은 기능이 아니라, 장르에서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경험을 맞추는 게 중요했습니다.”

■ 손보다 머리를 쓰는 로그라이트
이 게임은 일반적인 액션 로그라이트와 달리 반사신경이나 조작 숙련도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핵심은 전략적 선택에 있다. 플레이어는 그리드 위에 다양한 기능을 지닌 조각을 배치해 자원을 생산하고 유닛을 구성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매 회차마다 서로 다른 건물과 업그레이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략 경로가 열리며,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밸런싱이었다.
“모든 시스템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추가하면 전체 구조가 흔들리죠. 카드로 만든 탑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현재 스팀에서 약 89%의 긍정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수차례의 반복적인 개선과 조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다.

■ 플레이테스트가 드러낸 보이지 않던 문제
슬리피 밀 스튜디오는 개발 전 과정에서 다층적인 플레이테스트를 진행했다. 지인 테스트에서 시작해 퍼블리셔 내부 테스트, 8인 규모 관찰 테스트, 외부 컨설턴트 검토, 디스코드 비공개 베타, 그리고 공개 데모까지 이어졌으며, 개발자가 꼽는 가장 큰 가치는 버그 수정이 아니라 맹점의 발견이었다.
“테스트가 알려주는 건 무엇이 고장 났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퍼즐과 로그라이트 장르의 특성을 일부 공유하고 있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예비 슬롯과 같은 기능을 기대했다. 조각 회전 기능은 이미 구현되어 있었지만, 초기 피드백을 통해 해당 메커니즘이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충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고, 이에 따라 시스템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보스 전투에 대한 요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타났다.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난이도가 높아진 일반 스테이지가 아니라 로그라이트 경험의 일부로서 명확히 구분되는 보스 순간을 원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요소’라는 인식이 강해 뒤늦게 추가됐다.

■ “우리는 분명한 신호를 너무 오래 무시했다”
인터뷰에서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 부분은 후회에 관한 대목이었다. 데모 단계에서 약 20%의 플레이어가 게임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접근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개발자는 이에 쉬움 난이도를 추가한 두 번째 데모를 배포했고, 이러한 선제적인 조치는 게임을 플레이어들의 기대에 맞추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정식 출시 전 부정적인 피드백을 크게 줄였다. 튜토리얼 역시 같은 문제를 겪었다. 플레이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이라는 가정은 빗나갔고, 결국 보다 명확한 가이드가 뒤늦게 추가돼야 했다.
“문제를 늦게 고칠수록 비용이 커지고, 신뢰도 잃습니다.” 일관된 경고 신호가 보일 때는 즉각 대응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 직감 대신 데이터로 본 글로벌 전략
현지화 결정 역시 실용적인 기준에서 이뤄진다. 현재 타이틀은 퍼블리셔의 지원으로 12개 언어를 제공하고 있지만, 향후 자체 퍼블리싱 프로젝트에서는 데이터 의존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특히 핵심 지표로 삼는 것은 스팀 리뷰의 언어 분포다. 유사 게임에서 어떤 언어권이 실질적인 참여를 보이는지 분석해, 막연한 추정보다 실제 플레이어 기반에 따라 현지화 우선순위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데이터가 종종 기존의 예상을 뒤집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어가 항상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며, 프랑스어·일본어·이탈리아어·한국어 등 여러 언어권에서 꾸준히 높은 참여도가 확인되고 있다. “자신감보다 증거를 믿는 편이 안전합니다.”
■ 마케팅은 증폭기일 뿐, 구원자가 아니다
스튜디오의 마케팅 경험은 이러한 현실주의적 태도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수개월간 데모 배포와 홍보를 진행하며 게임은 일정한 인지 기반을 쌓았지만, 정식 출시 이후 트래픽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출시 전 활동의 규모를 압도했다. 이는 마케팅이 추진력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게임을 실질적으로 확산시키는 핵심 동력은 스팀 알고리즘과 자연스러운 입소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그 전제는 게임의 핵심 경험이 장르에서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수준을 충족할 때에만 성립한다. 개발자는 이 경험을 이렇게 정리했다.
“마케팅은 좋은 게임을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평범한 게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AAA 환경에서는 과도한 기대감이 때로 제품 품질을 가리기도 하지만, 인디 개발에서는 정반대라고 설명한다. 결국 지속 가능한 경쟁력은 외부 포장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실제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 ‘완성할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
슬리피 밀 스튜디오의 이야기는 이상이 아니라 절제의 이야기다. 그들은 환상보다 실현 가능성을 택했고, 야망보다 범위를 우선했으며, 직감보다 테스트를 선택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수많은 어려운 선택을 견디고 값비싼 교훈을 얻으며, 플레이어들이 실제로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 이들의 경험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통찰을 보여준다. 관리 가능한 목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결국 진정한 열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다양한 타이틀을 만들고 싶지만, 이 게임을 개발하며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했고 단순한 작업 그 이상이 됐다”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길은 먼 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듬고 완성해 사랑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경험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멀리 있는 꿈을 좇는 대신, 지금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왕국을 한 칸씩 쌓아 올리는 일. 그것이 인디 개발자가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행복하게 게임을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
기고 : 게임 테스트 플랫폼 플리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