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작이 PC로 포팅되고 게임도 복사…인공지능이 바꾸고 있는 게임 시장 질서
인공지능이 게임 산업에 침투하면서 고용 쇼크와 같은 변화 외에도 이용자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어로 즐길 수 없던 고전 게임에 한국어 패치가 붙고, 플랫폼 홀더의 의지와는 별개로 특정 콘솔에 묶여 있던 작품이 PC로 옮겨오고 있다. 신작을 발굴하는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는 지난 6월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체험판이 몰리는 등 신작이 쏟아지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아이디어 도용을 우려해 체험판 공개를 꺼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기존에 우리가 알던 게임 시장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영역에서는 변화를 넘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모습마저 나타난다.
이용자가 가장 쉽게 체감하는 변화는 한국어화다. 기존에는 개발사가 정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하거나, 번역과 개발 지식을 갖춘 이들이 모인 한국어화 팀이 이른바 '한글 패치'를 공개해야 한국어가 없는 게임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었다. 원하는 게임을 모두 한국어로 즐기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한국어 패치나 기존 패치의 업데이트가 올라오고 있다. 과거 콘솔로 즐겼던 게임들의 한국어화도 이어지고 있다. 레트로 게임기와 한국어 패치 정보를 제공하는 레트로DB에서는 과거 콘솔용 게임의 한국어 패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패치 제작에 속도를 더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단순히 외국어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의 프로그램 구조를 분석하는 등 한국어 패치 제작 과정 전반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번역과 개발 지식을 모두 갖춰야 했던 작업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롬·디스크 구조 분석부터 텍스트 추출과 재삽입, 한글 폰트·인코딩 설계, 포인터 수정, 에뮬레이터 검증까지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단계별 작업을 돕도록 안내하는 공개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자신이 즐기던 추억의 게임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직접 한국어화하는 사례도 나온다. 다만 한국어 패치의 제작과 배포 과정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플랫폼의 경계를 넘는 비공식 이식에도 인공지능 활용이 늘고 있다. 과거 닌텐도64로만 만날 수 있었던 게임을 다른 플랫폼용으로 재컴파일하는 도구와 역공학 기술에 인공지능의 지원이 더해지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깃허브 등을 통해 공개된 리버스 엔지니어링 도구에 클로드 코드와 코덱스 같은 인공지능을 연결해 게임을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기존 도구와 개발자들의 작업에 인공지능의 코드 분석·수정 능력이 더해지면서 비공식 이식의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2007년 Xbox 360용 '더 심슨 게임'을 PC에서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제작자는 초기 작업에는 인공지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후 조사와 버그 수정, 기능 개선 과정에서는 챗GPT와 클로드의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포르자 호라이즌'과 '우마무스메'를 역설계해 '호라이즌 세계관 속에 차량으로 우마무스메들을 등장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디지털 게임의 소유와 보존을 둘러싼 논쟁도 겹쳐 있다. 소니는 지난 7월 1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2028년 1월부터 플레이스테이션에 출시하는 모든 신작의 물리 디스크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실물 디스크를 소유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있다. 디지털로 구매한 게임을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실행할 수 있느냐는 우려 속에서, 게임 보존과 소유권을 명분으로 에뮬레이터 개발과 비공식 이식에 나서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 전용 게임이었던 '블러드본'과 '갓 오브 워 3 리마스터'를 PC에서 실행하는 비공식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있다. 개조된 플레이스테이션5에서 이식 프로젝트와 에뮬레이터 등을 설치 및 업데이트하는 비공식 마켓도 등장했다.
물론 게임 보존이라는 명분과 핑계로 무단 복제와 불법 유통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용자의 소유 요구와 권리자의 통제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AI를 활용한 다양한 작업이 게임 시장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게임을 만드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신작을 유통하고 알리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스팀 넥스트 페스트는 이용자들이 출시를 앞둔 신작의 체험판을 즐기고 구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행사다. 개발사에는 게임을 알릴 기회를, 이용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올해 10월 행사에는 약 8,200개의 체험판이 몰렸다. 지난 6월 행사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문제는 선택지가 늘어난 한편,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만든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이 신작 발견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용자들은 저품질 콘텐츠에 벌써 지쳤으며, 스팀 넥스트 페스티벌이 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을 정도다.
동시에 눈길을 끄는 것은 수많은 신작 체험판이 등장하는 가운데 오히려 공개 계획을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라이언스 아츠는 지난 10월 16일 '드렁큰 가디스 리플럭스'의 공개 체험판 계획을 취소하고, 제한된 인원이 참여하는 비공개 온라인 플레이 세션으로 바꾼다고 공지했다.
회사는 체험판의 표현과 게임플레이를 인공지능 등의 도구로 빠르게 모방한 작품이 본편보다 먼저 출시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실제로 이 같은 우려를 키우는 사례도 나왔다. '이스케이프 더 월스'는 개발 영상 공개 이후 화제를 모았지만, 정식 출시 전부터 로블록스에 유사한 게임들이 등장했다. 일부 모방작 제작자는 클로드 같은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개발자의 자작극 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인공지능을 게임을 베껴 먼저 출시할 것이라 협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치지 않고 도시전설처럼 계속해 들려온다.
다양한 홍보 자료를 받는 기자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체감된다. 인공지능으로 제작했다는 게임 소개가 반복적으로 도착하고 있다. 게임을 완성해 공개하는 속도뿐 아니라 이용자와 매체를 대상으로 작품을 알리는 단계에서도 인공지능 제작 게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게임 소개와 홍보 방식마저 서로 닮아 있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게임 제작부터 홍보 자료 배포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묶은 커리큘럼이나 강의가 유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불러온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지고,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변화가 이용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이어질지, 창작과 유통의 기반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