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 ‘게이머는 진화하고 있다’
1) 변화의 시대 I
지난 30년 동안 게임에 관련된 사업 계층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그들은 과거의 폐쇄된 놀이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로 변화를 주는데 성공했고, 특별하고 획기적인 기술에 넉넉하게 보상을 해주는 사회 속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항상 노력하는 만큼 벌고 있다고 너스레 얘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 이상의 부를 축척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의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부유해진 사람들이 여유를 느끼며 생활의 질을 우선시하고 여가를 즐길수록 게임의 상품적 가치가 올라가게 되었고, 점차 사회의 재무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로 게임의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갈수록 게임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래서 안정적인 사업가이면서 우수한 돈벌이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전제 아래 '게임계의 리더'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변해갔다. 이들은 과거 세속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업무 종사자로서 편협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은 전에 부당한 압박을 가하던 기득권 계층에 도전하던 과격파였고,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도전 정신에 가득 찬 젊은이로서 사회에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자신들도 기득권 계층이 되어 명성과 세속적인 성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거 그들은 타 업계의 고명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대등하게 나서서 허리를 세운 체 손을 마주잡고 악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와 줄곧 농담을 받는 것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금전적인 거래 외에는 아무것도 더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게임회사의 고위 간부로 일하고 있는 한 신사는, 과거 자신이 말단 사원일 당시 게임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을 이웃에게 숨기는 것을 당연시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게임회사에 찾아온 한 어린이에게 자신이 속한 회사가 얼마나 자율적이고 즐거운 분위기인지, 또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위해 매우 헌식적으로 봉사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인식시키려 노력한다.
또 다른 특성으로 오늘날의 게임 회사들은 포괄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모두에게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회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상하가 없는 회사 체계라든지, 그리고 참신하고 희한하다 못해 엽기스러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집하는데 기꺼이 큰 돈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요사이의 작은 게임 회사들 조차 한 가족처럼 조화롭게 업무를 행하는 반면 이익 창출을 위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타인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혹은 뚜렷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사 회의실에는 둥글고 여러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두꺼운 책상이 놓여져 있으며, 이곳에서 그들은 흡사 자신들의 회의 내용과 일절 관계가 없는 '갤러그' 게임의 유래라든지, 미국의 인권 유린 게임이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생겨났는지 등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는데 열을 올린다. 물론 이러한 것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기성 세대들의 탁월한 교육 효과 보다는 오히려 자신과 그런 자신감 위주의 사회를 영위한 사람들이 가진 특성으로 보는 게 옳다.
게임회사의 취직 배경도 크게 달라졌는데, 과거 게임회사들이 토익 점수가 몇 점인지, 외국에 유학은 몇 년을 갔다 왔는지 혹은 고향이 어디인지에 따라 입사 여부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게임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열정이 있는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혹은 남자이면서 뒤로 넘길 만큼 긴 생머리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의 대답 여부에 따라 회사의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회사의 격식적인 사무 분위기도 자유스럽게 바뀌었는데, 예를 들어 점심시간 전부터 농땡이를 피면서 커피를 한 잔 하는 젊은 신입 사원이 지나가는 사장님에게 프로레슬링 백드롭 기술을 당하거나 이소룡 무술의 시범 스파링 케이스가 되는 것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2) 변화의 시대 II
이러한 변화 속에, 게임을 처음 즐기고 성장한 첫 세대들이 기성 세대가 되어감에 따라 기성세대와 게이머의 관계는 무조건적인 억압에 초점이 맞추어지던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는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승리자가 있을 수 없었던 두 계층간의 전쟁은 점차 게이머의 승리로 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게임이 점점 보편화되는 시점에 이르러, 과거에 학교 등의 교육기간에서 한 반에 한두 명 정도 우연히 배치되어 그들만의 세계를 영위하던 생활을 해오던 게이머들은, 즉 다른 놀거리를 영위하는 타 인종들로부터 다소 거리감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 전체가 함께 '카트라이더'니, '겟 앰프드'니를 공유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게임에 대한 보편화로 인해 오늘날에는 PC 등의 온라인 체계의 바탕으로 과거의 양극화, 혹은 삼극화되었던 게임사들이 플랫폼의 통일이라는 명목아래(PC의 경우) 전부 상호 공존하고 있고, 과거 과도한 경쟁을 보이던 회사들끼리 협정을 맺어 제휴 업체가 되는 등 너무나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거 소수의 '인종'으로 서로를 존중하는데 마지않았던 게이머들의 상호존중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형편인데, 특히 인터넷은 과거의 올드 게이머와 라이트 게이머간의 언어 표현에 똑같은 무게를 제공함으로써, 올드 게이머들은 라이트 게이머에게 타격을 받으며 세대에 대한 통탄을 해야 하기도 했다. 즉, 과격하게만 보이는 언어폭력이 게이머들에게도 물들어감에 따라, 특별했던 '게이머'간의 독특한 유대관계도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열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긴장을 야기시키고, 또한 그들 과거의 권위 있는 게임계층이 새로운 계층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물론 올드 게이머들도 그러한 분열이 자신의 입장에서 크게 동떨어져 생긴 것만은 아님을, 그리고 라이트 게이머 층이 자신의 취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들의 세계관도 그들과 다른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3) 게이머의 미래, 진화된 게이머들의 출현
그들은 지금 서울의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PC방의 한 구석에 앉아있다. 그들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보면 그래픽을 매섭게 표현해대는 모니터를 볼 수 있고, 또 검거나 흰색의 플라스틱으로 된 키보드와 마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부근에는 웰치스를 여러 개 진열하며 비싼 가격에 팔아 치우는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구석을 보면 며칠 째 집에 들어가지 않은 듯한 전문 다중접속 롤플레잉 게임 중독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윽고 이 PC방에는, 녹색 테에 알 없는 안경을 낀, 한 손에는 PSP를 든 소년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모니터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듯 싶지만 그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자신이 갈 곳을 정해놓았다. 아마도 그들은 PC에 앉아 채팅을 하며 자신과 친한 특정 회원들과의 사이버 공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PC방에서의 모습이 보편화되어 갈 수록,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일상이 게임으로 굳어져갈수록, 게임이 변하고 문화가 변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문화가 잉태되었다. 게임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발전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드디어 게이머들 또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게이머들은 진화를 거쳐 사이버 세계라는 곳을 능수능란하게 헤엄치며 대중과 하나가 되는 교차점을 찾기에 이른다. 그들은 'OO인사이드'에서 파생된 변형된 언어를 쓰는데 익숙하며, 각종 'OO콤비' 'OO우마' 등의 스포츠신문 만화들에 호감의 눈빛을 보내고 한 편으로는 '전지현'이 누구와 사귀게 될까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전혀 '게이머'스럽지 않은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3일 밤낮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경우에 따라 게임을 경멸하는 투의 말을 서슴지 않으며, '수상스키'라느니, 미국의 'M16' 소총에 탄피가 튀는 방향을 설명하는 등 일반인이기도 하다는 걸 강조한다. 하지만 그 가식의 한계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이 게임을 즐김으로써 알게 된 부가적인 지식이라는데 있다.
또한 게이머들은 이제 과거처럼 서커스를 한 대가로 아무 물고기나 마구 먹어대는 물개에서 벗어났다. 그들의 식성은 다양해졌고, 보다 고급화되었고, 조금이라도 더 아양을 떠는 사육사가 아니라면 손짓에 반응할 생각을 일체 하지 않게 됐다. 이제 게이머들은 인터넷이란 도구에 의해 그 얇은 귀를 기웃기웃거리는, 어리석은 모양새를 더 이상 드러내지 않는다. 게임 마케터들이 과거에 아무 먹이나 잡고 휘둘러 대는 대로 그것을 따라 갔었다면, 이제 게이머들은 제대로 게임을 파악해내는 능력으로 점차 마케터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진화된 게이머들은 일개 게이머일 뿐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눈으로 엘리트적인 게이머의 길을 걸어야 하며 올바른 게임시장을 조성하며 제대로 된 문화를 가지는 데 노력해야 할 의무 또한 가지게 되었다. 물론 많은 게이머들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고, 여러 부분에서 그 실적을 확립하고 있지만 그들이 그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게임시장의 조성은 너무나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게임은 충분한 미래의 기술을 선도하는 문화 자체이다. 그리고 이를 즐기는 게이머들 또한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를 흡수하고 있다. 게임의 위상이 커질수록 게이머의 위상 또한 커질 것이며, 그들은 좀 더 독보적인 귀족으로 계속적으로 우위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시장성에 의거한, 거대한 상업적 받침에 포진된 사회, 세상의 고귀한 위치를 그들이 점유하게 되길 바라 마지 않는다. '진화된 게이머'들이여,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