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미학
사실 FPS 장르는 콘솔보다는 PC에 특화되어 있는 장르다. 애초부터 FPS 장르는 PC에 의하여 PC를 위해 탄생한 장르였고, 제 아무리 패드의 조작감이 좋다 한들 키보드와 마우스의 황금 조합을 따라올 순 없기 때문이다. XBOX용 게임인 헤일로의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인하여 이러한 점이 다소 설득력을 잃긴 했지만, FPS 장르의 강렬한 액션과 통쾌함은 여전히 패드보다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황금 조합을 통해서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콘솔용 FPS 장르는 PC의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우수한 조작 체계를 어떻게 패드로 대체하느냐가 게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더라도 어설픈 조작감으로 인하여 게이머들로 하여금 키보드와 마우스의 황금 조합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콘솔용 FPS 장르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조작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화끈하게 결론부터 말하고 들어가자. 블랙은 비록 키보드와 마우스란 최강의 조합을 넘어설 순 없었지만 절묘한 조작감과 적군의 AI를 좌우
회피로만 한정시키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내내 최소한 키보드와 마우스를 그리워하게 만들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콘솔로 FPS를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 중 하나였는데 블랙을 통해서 이 정도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단 생각을 새로이 가지게 되었다. 콘솔로
FPS 장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패드를 통한 조작에 거부감이 별로 없겠지만 PC로 FPS 장르를 즐겨온 사람들, 특히 FPS 장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는 둠(DOOM)시절부터 FPS를 즐겨온 필자 같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패드를 통한 조작에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거부감의 저변에는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조준의 문제가 가장 짙게 깔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블랙은 게임 자체를 패드의 조작에
특화 시킴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실제로 블랙은 빠른 조작을 기반으로 하는 회피 대신 은폐/엄폐를 기본으로 하는 게임 플레이와
좌우로만 공격 회피를 하는 적군의 의도적으로 다운그레이드된 AI 덕분에 게임을 즐기는 내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조준의 문제를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또한 맵 곳곳에 드럼통이나 차량 같이 사격을 통해 폭발시킬 수 있는 오브젝트를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써 굳이 적군을 정확하게
조준하여 쏘지 않아도 오브젝트를 폭발시키는 것만으로도 적을 쉽게 쓸어버릴 수 있게끔 게임 플레이를 구성해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조준해서 쏴야
한다는 압박감을 덜 수 있었다. 점프 동작이 게임 상에서 제거되어 있는데다가 회피 보다는 은폐/엄폐를 기본으로 하는 게임 플레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고 경쾌한 맛이 떨어지긴 하지만 패드로는 키보드와 마우스만큼의 빠른 조작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조작 한계를 감안한 훌륭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으로 이러한 점이 게임의 리얼리티와 긴장감을 살려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맵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오브젝트를 폭발시켜 적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식의 게임 플레이도
반대로 생각하면 정확하게 조준하여 쏜다는 FPS 고유의 재미를 희석시키는 요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어려운 조준의 문제를 덜어주고
있는데다가 화끈하고 박력 넘치는 게임 플레이를 선사해주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또한 매우 훌륭한 설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블랙은 패드에 특화된 치밀한 게임 구성을 기반으로 키보드와 마우스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우수한 조작감을 제공하는 게임이며, 덕분에 콘솔용 FPS 장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은폐/엄폐를 기본으로 적을 사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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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의 폭발을 이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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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그래픽
블랙의 그래픽은 이것이 PS2에서 구현 가능한 그래픽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매우 훌륭하다. 캐릭터와 맵, 그리고 각종 효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부분 빠지는 곳 없이 완벽하기에 감히 흠 잡을만한 구석이 없다. 공격 당한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죽어가는
적군의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블랙의 그래픽이 얼마나 뛰어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예로 난간에 서 있다가 공격을 받고 아래로 떨어지는 적이 살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난간을 붙잡고 버티다가 마침내 추락해 죽어버리는
애니메이션 표현을 목격했을 때는 필자도 모르게 입을 쩍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시가지와 숲 등 다양한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실적이고
세밀한 맵 표현도 이것이 하나의 완성된 3D 공간임을 몸서리 쳐지게 보여주며, 방대한 맵을 로딩 한 번 없이 담아내고 있다는 점도 게임의
맥을 끊어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게임 전반을 뒤덮고 있는 화려하고 박력 넘치는 폭발 효과는 블랙의 백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 말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블랙은 PS2의 한계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픽에 있어선 불만을 가질 일이 없을 것이다.

난간에 매달린 적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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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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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 깔린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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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석양

어둠이 깔린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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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력 넘치는 폭발 효과
완벽한 사운드
관현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블랙의 웅장하고 비장미 넘치는 사운드는 게임의 긴장감과 장대함을 십분 살려주고 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블랙의 사운드는 게임 음악으로는 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내내 불만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블랙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배경 음악을 흘려 보내며 유동적으로 사운드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보통의 경우에는 총기의 발사음과 폭발음, 그리고 병사들의 난잡한 목소리만이 게이머의 귀를 두드릴 뿐이다. 특수한 상황, 대부분
전면전의 상황에서만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게 되는데 덕분에 이 때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배경 음악이 흘러 나오는 그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극도의 긴장을 하게 될 정도다. 이미 익숙한 사운드 활용 방식임에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만큼
블랙의 사운드가 훌륭하고 게임의 색깔을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운드에 있어서도 블랙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당신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만족감을 선사해 줄 것이다.
다양한 무기!!
화끈한 액션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게임인 만큼 블랙에는 실로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M16, AK47, M249, MP5, UZI,
G36C, RPG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 모든 무기들은 실제를 기반으로 총기 발사음이나 반동, 사정거리 등이 구현되어
있으며, 각 총기마다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FPS 장르 게임들이 그렇듯이 블랙의 무기 또한 크게 권총/소총/기관총/샷건으로
그 종류를 나눌 수 있으며, 추가적으로 저격용 스나이퍼 라이플과 유탄 발사기, 로켓 런쳐 같은 무지막지한 무기도 등장한다. 다양한 무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게임 상에서 플레이어는 오직 2개의 무기만을 휴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무기를 버리고 어떤 무기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향후 게임 플레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판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총과 샷건을 휴대하기로 했다면 게이머는
화력전으로 적군과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지만 소총과 스나이퍼 라이플을 선택했다면 적군을 하나씩 저격하며 좀 더 안전하고 은밀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 게임 내에 다양한 무기가 존재한다는 점과 휴대 가능한 무기가 최대 2개라는 점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게이머에게 전략적인 선택권을 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액션의 다양성을 살려주는 측면에서도, 게임의 재미를 살려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란군의 무기로 유명한 AK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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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런쳐!!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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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G의 대명사!! M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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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죽어있다!!
오로지 파괴만이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적을 사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블랙이란 게임의 핵심이자 목표이다. 실제 사람이 등장해 심문하고
있는 상황을 연기한 게임 내 동영상은 마치 블랙이 대단한 스토리와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가진 게임인 것처럼 포장해서 보여주지만 사실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블랙은 미션에 따라 여러 가지 목표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해법은 파괴와 학살일 뿐이며, 다른 방식은
허용치 않는다. 잠입의 느낌을 살리고 있는 미션도 몇 개 존재하나 마지막은 항상 파괴로 결론지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다양한 게임 플레이란
명목으로 치하하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다. 게임이 전혀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에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은 결국 다
때려부수면 그만인 블랙의 단순한 게임 플레이 덕분(?)인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을 바탕으로 한 화끈하고 박력 넘치는
액션이 게임의 시작부터 중반부까지는 게이머들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게 하는 블랙의 커다란 매력이자 재미이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이러한 파괴와 학살을 근간으로 한 단순한 게임 플레이는 되려 독이 되어 지루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좀 더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제공했다면
훨씬 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음에도 원초적인, 그래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파괴의 재미에만 집중함으로써 블랙은 스스로
그러한 가능성을 버리고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우수한 조작감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화끈한 액션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긴 하지만 역시 단순한 게임 플레이에서 오는 아쉬움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뭔가 있어 보이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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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창 바꿔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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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쓸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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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 부수면 그만이다
빈약한 게임의 볼륨
블랙의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게임의 볼륨이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점이다. 블랙의 싱글 플레이 미션은 총 8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1개의 미션을 클리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FPS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결국 싱글
플레이를 완벽하게 클리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봤자 8시간 안팎이라는 것이다. 액션 게임이니까 뭐 플레이 타임이 조금 짧을 수 있다
생각하고 이해한다 치더라도 싱글 플레이를 클리어하고 나면 즐길 거리가 없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별도의 게임 모드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라인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싱글 플레이를 클리어하고 나면 즐길 거리라고 남는 것은 난이도를 올려서 재도전하거나
지도나 서류 등을 찾아내는 서브 미션 목표 완벽 클리어를 향해 달리는 것 뿐이다. 결국 했던 미션 재탕해서 다시 플레이하는 것 외에는 즐길
거리가 없는 셈이다. 좀 더 게이머들이 오래도록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다양한 모드를 제공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멀티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션을 반복해서 즐기는 건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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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미션 목표나 달성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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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액션 게임!!
블랙은 여러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게임이지만 동시에 여러 면에서 장점과 가능성 또한 보여준 게임이다. 지나치게 액션에만 의존하고 있는
단순한 게임 플레이와 오래 두고 계속해서 즐길만한 거리가 부족한 게임의 빈약한 볼륨에선 아쉬움을 남겼지만 패드로 FPS 장르를 즐기는 것도
나름의 재미와 맛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우수한 조작감과 완벽에 가까운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다양한 무기를 바탕으로 뿜어져 나오는
블랙의 강렬한 액션은 이 게임이 이대로 지나쳐버리기에는 아까운 게임이란 것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소 부족한 면모가 있긴 하지만
블랙은 통쾌하고 화끈한 액션을 그리워하고 있는 게이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아쉬움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차후 후속작이 나오게 된다면 이러한 가능성이 새로운 결실을 맺어 훨씬 더 좋은 게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