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시디언 최초의 오리지널 게임, 알파 프로토콜
지난 2010년 6월 1일,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하고 세가에서 발매한 알파 프로토콜이 발매됐다. 발매된지 2개월 정도 된 게임인만큼 국내외 게이머들이 남긴 다양한 리뷰를 각종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본 게임의 소감이 하나 같이 "별로다"로 통일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자도 직접 플레이 해본 바, 심각할 정도로 별로인 게임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미묘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최초의 오리지널 타이틀인 알파 프로토콜은 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이러한 혹평을 받는 것일까?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알파 프로토콜
잠입 액션으로서 C급
알파 프로토콜은 정해진 스토리 안에서 자유롭게 임무를 선택하여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미션 선택식 게임이다. 한 개 챕터 안에는 약
3~4개 정도의 기본 미션이 준비되어 있으며,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추가 미션을 플레이 할 수 있다. 정규 미션만 플레이 할 경우 약
12시간 정도면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고정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임무를 수행하지만, 중반에는 타이페이(대만), 모스크바(러시아), 로마(이탈리아)등 3개 도시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지역과 미션을 골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엔딩을 보려면 모든 지역을 클리어 할 필요가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GTA 같은
프리 미션제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만 풍 미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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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모든 미션을 클리어 해야 하므로,
자유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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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설명만 놓고 보면 그럴듯한 액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이런 기본 골격 외적인 부분이 매우 허술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알파 프로토콜의 전투는 주로 엄폐물을 이용해 공격과 회피를 동시에 하는 커버 슈터 방식(비슷한 방식의 게임으로 타임 크라이시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으로 전개되는데, 액션 아이콘이 떠있는 제한된 장소에서만 엄폐물을 임의로 뛰어넘을 수 있는 등 커버 슈터의 주요 요소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알파 프로토콜은 커버 슈터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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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곳에서만 월담할 수 있는 커버 슈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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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대체로 이런 느낌
또 매뉴얼을 보면 마치 플레이 여하에 따라 불필요한 전투를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되어 있지만, 적의 시야 거리가 매우 길고, 스텔스
스킬을 구사해도 회피할 수 없는 강제 전투 이벤트가 게임 중반을 전후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잠입보다는 전투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는
느낌이다(대신 기본으로 배치된 적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 통상 플레이라면 어느 정도 잠입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적들의 AI는 알파 프로토콜의 게임 완성도를 매우 의심스럽게 한다. 적들은 평지에서 20~30m 이상 떨어진 게이머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지만, 높낮이가 다른 장소에 있거나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게이머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또 일반적인 문은 쉽게
여닫을 수 있지만, 특수한 조작이 필요한 문은 바로 열지 못하고 벽 너머에 있는 게이머를 멍하니 응시할 뿐이다. 방탄 유리를 사이에 둔
경우, 바로 옆에 문이나 통로가 있어도 방탄 유리 앞만 맴도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능한 AI는 액션 파트에 임하는 게이머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플레이 의욕을 저하시킨다.

옆 창문이 깨져있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적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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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낮이가 다르면 어디 있는지 발견조차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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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커스터마이징 자유도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을 플레이 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혹은 파티 플레이를 할 때 다른 게이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필수 스킬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수 스킬을 찍지 않을 경우 효율적인 사냥이 불가능해져 레벨업이 남들보다 더뎌지거나, 혹은 다른
게이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솔로잉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알파 프로토콜에도 이런 필수 스킬이 존재한다. 알파 프로토콜에 마련된 스킬 수는 약 130여 종으로, 조합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게임 진행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스킬 조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게임 클리어에 필요한 캐릭터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어느 한 가지로 통일된다.

스킬 수는 많지만, 꼭 필요한 스킬은 매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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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직업 선택을 통한 역할 수행(롤플레잉)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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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전투의 경우 어설트 라이플 사정거리만큼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설트 라이플 제어 스킬을 찍어두면 게임 진행이 확실하게 쉬워진다. 반대로 스텔스 스킬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면 통상 플레이는 다소 쉬워질지도 모르나, 액션 파트의 중대 전환점이 되는 강제 전투나 보스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보스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격전보다는 장애물을 이용한 접근전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격투와 맷집 스킬, 또는 근거리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샷건 스킬을 동시에 찍어두면 보스전을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반대로 피스톨이나 서브 머신건은 게임 후반으로 갈수록 다방면에서 어설트 라이플이나 샷건에 밀리기 때문에 고급 스킬을 배워도 게임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게임 진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무기, 어설트 라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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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격투 기술은 (적이나 아군이나)매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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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에디트 기능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모양, 수염, 액세서리 등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꾸밀 수 있지만, 데몬즈 소울이나 백기사 이야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정밀한 캐릭터 에디트와 달리 변경할 수 있는 부위가 적고 각 항목 간 눈에 띄는 차이가 없어 캐릭터의 외모를 만족스럽게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호문쿨루스의 나고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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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모 국가평의회 의장님 정도 밖에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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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 퍼즐
알파 프로토콜에는 자물쇠 열기, 경보 해제하기, 해킹 등 크게 3가지의 퍼즐이 등장한다. 각각의 퍼즐에는 제한 시간이 설정되어
있는데(선택한 직업에 상관없이 제한 시간은 일정), 정확한 조작에 실패하면 제한 시간이 크게 줄어들어 게임의 긴장감을 높인다. 문제는 그
난이도와 짜증남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데 있다. 자물쇠 열기의 경우 약 1~2mm 정도 되는 판정 부위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미세한
동작에도 추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한 번에 퍼즐을 풀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적에게 즉시 발각되는 대신 퍼즐을 풀지 않고
문을 걷어차 열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일부 예외 있음).
경보 해제 퍼즐은 처음에는 해제해야 하는 배선의 수가 적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배선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때문에 한 번의 조작 실수가
퍼즐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올바른 순서대로 배선을 해제하는 것 이상으로 전략적인 스틱 컨트롤이 요구된다. 해킹은 알파 프로토콜 퍼즐의
가히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18x9의 난수 패널 중 각각 L3와 R3에 할당된 고정 패널을 찾아 해당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하는 해킹은, 다른 퍼즐처럼 제한 시간이 설정되어있는 것 외에 10초마다 고정 패널의 위치가 달라지며, 커서마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따라서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예리한 관찰력과 2개의 패널을 동시에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나마 피할 수 있는 퍼즐이라는 게 위안
(회피 안 되는 것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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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진행할수록 배선 수는 늘어나고
시간도 촉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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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만든 담당자 나오라고 해!
적절한 순간에 적당히 등장하는 퍼즐은, 그 난이도에 상관없이 단조로워지기 쉬운 게임에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알파 프로토콜의 퍼즐은 한 미션에 7~8회 정도로 비교적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액션 파트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고 긴장의 끈을 놓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몇몇 퍼즐은 무시할 수 있지만, 경험치나 자금 입수로 이어질 때가 많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또 퍼즐 종류가 3개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난이도만 높아지기 때문에 전에 풀었던 퍼즐을 또 풀어야 하는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놈의 잠긴 문이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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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고 또 풀고 또 풀고 또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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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대화
알파 프로토콜의 대화 신은 영화적 연출의 FPS/TPS처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화 도중 약 5초의 제한 시간이 있는
선택 문항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각 선택 문항은 상대 캐릭터의 호감을 증감시켜 미션을 공략해나가는데 도움을 주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발생시킨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대화 신과 제한 시간 있는 답변 선택 문항은 게이머들에게 마치 게임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선물하지만,
대사 읽는 속도가 빠르고 자막 싱크가 현재 대사 내용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입장에서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택 문항이 포괄적인 감정이나 대처 방법 등으로 뭉뚱그려 표시되는 것도 원하는 스토리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한다(한글화도 되지
않았다).

자막 싱크도 안 맞는 대사가 초 스피드로
전개될 때의 절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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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타이밍에 ready는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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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 보이지만...
평균 대사 길이가 5~10분 정도로 상당히 긴 편인데도 대사 넘기기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화 신 전체가 실시간 처리된 게임
시스템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몇 개 되지 않는 실시간 선택 문항을 고르기 위해 멍하니 게임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반복 플레이라도 하게 될 경우, 전에 봤던 대사를 똑같은 시간만큼 두 번 봐야 하는 고역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게임 흐름 상 중요한 장면이 액션이 아닌 대화 신에서 결정된다는 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이다. 알파 프로토콜에서는 빠른 대사와
촉박한 시간 때문에 내용을 채 파악하지도 못하고 결정한 행동이 이후 전개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1시간 가까이 영웅적
플레이를 펼친 게이머가 대사 선택 한 번 잘못했다고 범죄자 취급 받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이 장면에서 거의 5분이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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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18금 이벤트를 못 봐서 이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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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알 수 없는 게임
어떤 게임이라도 익숙해지기만 하면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알파 프로토콜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을 눈 감아주기만
하면, 최소한 B급이나 C급 코드의 액션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파 프로토콜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에 게임
완성도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액션 파트만 놓고 본다면 AI가 멍청한 게임, 양산형 TPS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잠입
액션 기분을 120% 살리기 위해 준비한 퍼즐 파트가 액션의 템포를 저해하고, RPG적 대화 신이 마치 조증 환자처럼 혼자서 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격동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뚜렷한 정체성 없이 혼란스럽기만 한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다.

파괴하면 경보가 울리는 감시카메라가 있는 걸로 봐서
잠입 쪽에 비중을 두나 싶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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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래저래 전투 비중이 높고. 갈피를 못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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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움직임이나 그래픽 모두 PS3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폴아웃 시리즈(2편까지), 발더스 게이트 등을 만든 인터플레이 산하 블랙 아일 스튜디오로, 인터플레이의
재정난을 이유로 거리에 나앉게 된 멤버들이 재결합해 만든 회사다. 명작 폴아웃을 만든 핵심 멤버들은 인터플레이가 건재했을 때 이미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지만, 그래도 현재 옵시디언에는 폴아웃의 기획력과 개발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충분한 개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나 네버윈터 나이츠 2 등 완성품이라고 보기 힘든
게임만을 쏟아내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는 과거의 영광에 비춰봤을 때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익숙해지면 나름 재미있었을 게임이
불완전한 완성도와 제작사에 대한 배신감을 만나자 오래 잡고 있을 가치도 없는 게임으로 평가절하된 듯한 인상마저 든다.

보기보다 행동에 제약도 심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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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처 로딩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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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왼쪽은 min, 오른쪽은 max라고 생각하라는 건가?
이런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듯, 개발사 측에서는 공식 채널을 통해 알파 프로토콜의 후속작은 제작되지 않을 것이며 DLC(다운로드 콘텐츠)제공도 불투명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차기작은 폴아웃 3의 3년 후를 배경으로 한 외전 폴아웃 뉴 베가스이며, 발매일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던전시즈 3도 현재 개발 중이라고 한다. 1년 동안 4번이나 발매를 연기했으면서도 결코 완성된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알파 프로토콜. 플레이를 원하는 게이머들은 각자 지갑 사정을 고려하되, 2개월 동안 먼저 게임을 접한 게이머들의 평가가 명불허전이 아니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옵시디언은 이렇게 역사 속에 (안 좋은)이름을
남기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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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컴퓨터는 한 대쯤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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