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N에 발목을 잡히다. 브링크

저 옛날 FPS(First-Person Shooter, 일인칭 슈팅 게임)란 장르를 게임에 정착시킨 선구자 울펜슈타인 3D가 등장한 이래 FPS는 불과 10~20년 사이에 매우 가파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 결과 둠 시리즈, 하프라이프 시리즈,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헤일로 시리즈, 배틀필드 시리즈,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등등 이 지면에 전부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FPS 명작들이 시대 혹은 세대 별로 세계 게임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게임 시장 또한 FPS 장르가 장기간 대세를 이룰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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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크는 새로운 FPS를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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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전에는 베데스다의 이름값으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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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S가 보여준 발전 양상도 명작의 숫자만큼이나 다 적기가 힘들다. 단순히 쏘고 피하기만 하던 게임에서 각종 목표 및 특수 능력이 넘쳐나는 게임으로, 혼자 놀거나 개인전 멀티 플레이만 하던 게임에서 아군과 함께 역할을 분담하는 게임으로, 스토리라곤 포르노 영상 수준이던 게임에서 장대한 서사시를 그리는 게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수많은 게이머들로 하여금 FPS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 이쯤 되면 FPS에 "홀렸다"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리라. 그러나 FPS에 홀린 일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 애초에 홀릴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브링크는 어떨까? 브링크의 제작사 스플래시 대미지는 앞서 설명한 울펜슈타인 3D의 계보를 잇는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를 제작한바 있다. 그리고 브링크와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 둘 다 역할의 세분화, 캐릭터마다 다른 능력치, 협동을 중시한 멀티플레이 게임이란 점에서 브링크가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에게 영향을 받았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이 어떤 FPS를 낳았을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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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스플래시 대미지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이름값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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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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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싸움이 아니다. 전쟁이다
브링크는 인공 섬을 무대로 섬의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과 힘으로 섬을 탈출하려는 세력의 힘겨루기를 다루고 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엄연한 다수끼리의 투쟁이기 때문에 상대를 물리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전쟁이 벌어지면 정찰, 진압, 유인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작전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브링크에서 겪는 전투도 마찬가지라 요인 구출과 호위, 시스템 해킹, 기물 파괴, 지휘소 점령, 물건 회수&배달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전투가 벌어진다. 또한 주 목적 외에 부가 목표가 주어져 주 목적과 병행하여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국내에서 FPS라면 흔히 떠올리는 "다 쏴죽이고 보자 식"의 플레이와 동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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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반란군노무 X키들아!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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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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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목표를 위해 다수가 같이 움직이는 경우 반드시 역할 분담이 뒤따라온다. 브링크는 이 역할 분담을 네 가지 클래스로 나눠서 구분 지었다. 게이머는 솔저, 메딕, 엔지니어, 공작원 네 가지 클래스 중 하나를 골라 클래스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솔저는 교전의 핵심을 담당한다. 기본 수류탄이 타 클래스에 비해 2배 가까이 강하거나 폭약 설치, 화염병 투척 등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는 능력들이 많다. 그리고 아군의 탄약을 보충하는 역할을 솔져가 맡기 때문에 혼자 잘 싸운다고 끝이 아니라 팀원을 지원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메딕은 전우들의 생존을 도맡는다. HP 회복은 기본에 능력 강화와 동료 소생까지 메딕 없이 전선 유지는 꿈도 꾸지 못 한다. 브링크에선 전투 중 사망하면 기본적으로 시작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메딕이 재빨리 사망 지점에서 소생시켜줘야만 적에게 밀리지 않는다. 엔지니어는 각종 기계류를 다루면서 주 목표나 부가 목표를 건설, 방어를 위한 터렛 구축, 매복용 지뢰 설치를 담당한다. 아군의 무기 위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엔지니어의 빠른 대처가 아군의 공격력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공작원은 브링크 세계의 첩보원으로 적군을 농락하면서 전황을 뒤집는다. 적으로 변장하여 적의 터렛을 해킹하거나 지뢰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적을 내부에서 흔들어 자멸을 노린다. 게임의 목표는 이 네 가지 클래스가 얼마나 똘똘 뭉쳐서 완벽한 협력 플레이를 펼쳐 제 몫을 다 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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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보이면 싸워서 적군을 털고 보는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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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의 가치를 몸으로 증명하는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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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왜 대접 받는지 알려주는 메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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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사람 심기를 제대로 건드는 스파이

역할 분담과 차별화는 클래스 구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선 체형. 캐릭터를 생성할 때 라이트, 미디움, 헤비 바디 세 타입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데 라이트 바디는 날쌔고 이동 능력이 뛰어난 대신 낮은 체력과 쓸 수 있는 무기 종류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헤비 바디는 이동 능력이 매우 느린 대신에 체력이 높고 화력이 강한 중화기를 사용한다. 미디움 바디는 라이트와 헤비의 중간에 해당하는 평균 바디로 가장 처음 만나는 바디 타입이다(헤비와 라이트 바디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해금). 모든 전투원에게 가장 중요한 총기의 경우 앞서 적은 것처럼 바디 타입에 따라 사용 유무가 결정된다. 라이트 바디는 주 무기, 부 무기 모두 경화기 밖에 사용 못 하고 미디움 바디는 주 무장에 기본 화기와 경화기, 부 무장에 경화기를 장착한다. 헤비 바디는 중화기를 포함한 모든 화기를 주 무장으로 사용 가능하며 부 무장으로는 미디움, 라이트 바디가 사용하는 모든 무기를 사용한다. 이렇게 바디 타입에 따라 능력치와 무기가 차별화 되어 있어 특성에 맞는 역할 분담이 필수다. 여기에 도전 레벨에서 얻는 개조 장비로 무기 성능을 바꾸면 전략성과 선택의 폭이 더욱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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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타입에 따라 겉모습과 능력치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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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겉모습만 차이나는 치장들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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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무기 없이 역할 수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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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바디 캐릭터로 중화기 든 헤비 타입에게
딱 걸리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배우는 어빌리티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최후의 열쇠다. 총 50가지 넘는 기능이 준비된 어빌리티는 공통 어빌리티와 직업별 어빌리티로 나뉜다. 양쪽 모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올린 레벨(게임내 각종 행동으로부터 경험치를 얻는다. 최고 레벨은 20)의 구간에 따라 결정되는 랭크를 기준으로 배우는 종류가 늘어난다. 최고 랭크를 요구하는 공통 어빌리티도 대단하지만, 직업별 어빌리티는 더욱 대단해서 해당 직업의 정점이 무엇인지 직접 맛 볼 수 있다(메딕의 경우 자체 부활 어빌리티와 체력 회복 증가 어빌리티를 이용해 준 불사신이 될 수도 있다). 한 캐릭터가 배운 어빌리티는 싱글, 멀티플레이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며 한 번 배우면 끝까지 유지된다. 그래도 레벨 1을 희생해 어빌리티를 초기화 시킬 수 있어서 어빌리티를 고를 때 최후의 안전장치는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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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빌리티를 제압하는 자가 브링크를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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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어빌리티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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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까지는 브링크를 재미있게 해주는 시스템이지 브링크가 보여주는 전쟁이 아니다. 클래스 구분과 어빌리티 개념 자체는 과거 제작사가 만든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에서 이미 선보였기에 여기서 발전한 것만으로 브링크를 대표한다고 할 순 없다. 여기서 화룡점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SMART(Smooth Movement Across Random Terrain. 무작위 지형 간 부드러운 위치 이동)시스템이다. 사용법은 그저 물체를 향해 달려가면 끝일 정도로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게이머가 경험할 SMART 시스템은 간단하지 않다. 많은 FPS들이 이벤트가 아니라면 발을 닿는 곳만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브링크는 다르다. 손이 닿는 곳은 모두 스포츠클라이밍에 쓰는 인공 홀드고 발이 닿는 곳은 전부 디딤대다. 따라서 SMART 시스템을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하여 적의 허를 찌르는 전투야말로 브링크에서만 맛보는 역동적인 액션이자 아이덴티티이다. 특히 라이트 바디 타입은 세 바디 타입 중 가장 SMART 시스템의 혜택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응용해 벽을 타고 다른 바디 타입이 따라하지 못 할 곡예로 전장을 누비는 것이 가능하다. 미디움이나 헤비 바디 타입은 라이트 바디 타입처럼 종횡무진 활동할 순 없어도 SMART 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는 건 마찬가지다(가장 대표적인 기술이 달려가면서 앉기 버튼으로 슬라이딩-사격으로 이어지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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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시 안 부러운 SMART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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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이동만이 아니라 전투에서도 활용법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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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죽는 건 토끼만이 아니다
소니의 PSN 해킹 사태로 세계가 떠들썩했다. PSN 이용자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되면서 소니는 복구 및 해킹 재발 방지를 위해서 PSN 접속을 막았다. 덕분에 트로피 갱신이 막히고 PSN 스토어를 통해야 하는 DLC 공급이 끊겼다. 그리고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죽었다. 대다수의 PS3용 게임이 PSN을 이용하는 만큼 어느 게임이건 피해가 없었겠느냐만 PS3용 브링크는 더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없이는 브링크를 제대로 즐기기 힘들어서다. 싱글 플레이에 해당하는 캠페인을 온라인으로 플레이 할 수 있거나 육성한 캐릭터가 오프라인, 온라인 구분 없이 적용되는 모습에서 브링크가 얼마나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캠페인 모드 외에 자유 플레이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게임 규칙들, 스톱워치 매치, 즉석에서 팀을 모아 타이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유지시켜주며 비공개 음성 채팅 채널까지 제공하는 파이어 팀 시스템 같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 싱글 플레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브링크 리뷰가 끝나고 나서야 PSN이 열렸다. 다른 나라들은 빠르게 복구됐지만 한국은 두달 동안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가 전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복구됐다. 브링크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 되었어야 할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불의의 사태로 되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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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쎄 좀 기다리라니까! 이래서 AI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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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여기에 다 몰렸는데 팀원들은 어디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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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플레이에서 인공지능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다른 게이머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 해주긴 하지만, 그 역량이 사람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친다. 게이머가 인공지능에게 간단한 행동지침 하나 내려줄 수 없어서 인공지능의 움직임을 전부 파악하는 초인이 되거나 운이 좋게 인공지능이 활약해주길 비는 수밖에 없다(메딕이 쓰러졌는데 다른 팀원들이 우르르 적에게 몰려가 다함께 몰살당하고 메딕 부르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반대로 적은 최소한의 할 일은 하기 때문에 불편한 인공지능과 팀을 짠 게이머 진영이 더 불리하다. 그렇다고 게임 밸런스 자체에 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 조금만 더 인공지능에 신경써줬으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다. 결과적으로 브링크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모든 걸 맡기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 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력플레이를 중시한 브링크의 기획 의도 때문이 아니다. 그저 재미있는 게임을 가장 재미있게 즐길 방법이 막혔을 때 필요한 대안이 부족했고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작사인 스플래시 대미지 측에서 직접 제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래저래 "운이 없었다"란 평가 말고는 이 수작 게임을 위로해 줄 말이 없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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