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뀐 아머드 코어

김영우 pengo@hitel.net

아머드 코어를 하는 2가지 방향
아머드 코어의 첫 번째 작품이 나온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어느덧 이 시리즈는 PS진영을 대표하는 메카닉 액션 게임으로 자리잡았고,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었다. 아머드 코어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실제 AC(Armored Core : 아머드 코어에 나오는 로봇들의 통칭)을 조종하는 듯한 섬세한 조작 시스템과 수많은 부품들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AC를 만들 수 있는 방대한 커스터마이즈 시스템이다.
이로 인해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다보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되는 2가지의 플레이 방향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AC를 몰고 미션을 수행하는 액션 파트, 그리고 두 번째로 자신이 조종할 AC를 제작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부품 어셈블리(assembly : 조합)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 특유의 높은 액션 난이도 때문에 아무리 합리적인 어셈블리를 통한 우수한 AC를 조합했다 하여도 반사신경이 뒤떨어지는 플레이어는 액션 파트에서 계속 고전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는 이 시리즈를 순수한 메카닉 제작 게임으로서 즐기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일부 아머드 코어 팬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제작사측에서는 PSP로 발매되는 최초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인 「아머드 코어 포뮬러 프론트(이하 AC-FF)」를 시리즈 사상 최초로 액션 파트를 제외한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완성시켰다. 액션게임이 아닌 아머드 코어 시리즈, 그렇다면 과연 이 게임이 지향하는 게임성은 과연 무엇일까?


스타일리쉬한 연출이 돋보이는 오프닝 데모. 메카닉물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아머드 코어 특유의 미려하고 정교한 메카닉들은 이 시리즈에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 냈다.


기존 시리즈의 재미를 그대로 계승한 AC제작 파트
「AC-FF」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기존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시대는 몇몇 거대 기업 집단에 의해 국제 질서가 움직여지는 미래이며, AC라고 불리우는 강력한 로봇 병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A.I.(인공지능)가 조종하는 비 탑승형 AC간의 대전을 통해 승부를 가리는 '포뮬러 프론트'라는 대단위 스포츠가 국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게임 중 플레이어에게 전달되는 뉴스와 각종 메시지를 통해
이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포뮬러 프론트'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플레이어는 최대 5대의 AC를 거느릴 수 있다. 각 AC간의 부품 공유는 금지되어 있으므로
5대의 AC는 각각 그 성능과 특징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AC-FF」에서 플레이어는 이 포뮬러 프론트에 참가하여 순위 경쟁을 벌이는 팀을 운영하는 오너이며, 자신의 휘하에 최대 5대의 AC를 두고 리그전에 참가, 치열한 격전을 벌이게 된다.
자신의 팀에 소속된 AC들은 물론 플레이어 스스로 부품을 조합하여 제작하게 되는데, 각 AC들은 Head(머리), Core(몸통), Arm(팔), Leg(다리) 등의 기본적인 부품에서 시작하여 라이플이나 미사일, 캐논과 같은 무기들과 라지에이터, FCS(조준장치), 제네레이터와 같은 내장 부품들까지 총 11부분의 부품들을 조합하여 비로소 1대의 AC를 만들게 된다.


AC의 부품 조합이나 부품 튜닝은 물론, 페인트 적용이나 고유의 엠블렘을 디자인 하는 등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리즈와 마찬가지다.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수백여가지의 부품들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AC를 만들자.
이론상 억 단위에 육박하는 조합이 가능하다.


성능과 디자인이 다른 각각의 부품들은 수백여종에 달하며 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나오는 AC의 경우의 수는 억대에 달하니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AC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조합과 테스트, 그리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성능에 관련된 부분 외에 자신의 AC에 새로운 색상을 적용한다거나 남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엠블램을 제작, 도장하는 등 개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어 플레이어는 자신의 AC에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즐겨왔던 플레이어라면 대단히 익숙한 과정이며, 「AC-FF」에는 지난 시리즈부터 꾸준히 나온 익숙한 부품들은 물론, 새로운 부품들도 대거 추가되어 불륨감을 더하고 있다.

액션성이 배제된 메카닉 시뮬레이션
이렇게 AC를 조합, 제작하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와 크게 다를바가 없지만 「AC-FF」가 다른 시리즈와 다른 점은 본 게임으로 들어가 이 AC들이 전투를 하게 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의 시리즈는 시나리오 상 주어진 미션을 선택, 플레이어가 직접 AC를 몰고 탐색, 파괴, 호위 등의 각종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하는 액션 방식이었지만 「AC-FF」의 경우, 전투는 1 : 1 로만 이루어지며, AC의 조종은 플레이어가 아닌 A.I.에 의한 자동 전투로 이루어진다.


리그 전에 참가하여 모든 라이벌 팀들을 꺾고 1위에 오르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이 된다.



전투는 1 : 1로만 구성되며, AC의 모든 조종은 A.I.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전투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기존의 시리즈에서도 1 : 1의 AC대전을 치루는 '아레나(Arena)'라는 게임 모드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보너스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전투의 조작은 역시 플레이어가 직접 해야했다. 하지만 「AC-FF」의 경우,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 자체가 대전을 반복하여 1위에 오르는 것이며 플레이어가 전투의 직접적인 조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것이 기존 시리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화면 안의 AC가 알아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마냥 구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러한 게임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한 요소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승리의 열쇠는 냉철한 전략수립
「AC-FF」는 액션성이 빠진 대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AC의 A.I.를 튜닝, 조정해주는 요소가 새로 생긴 것이다.
A.I. 튜닝은 크게 '베이스 캐릭터' 설정과 '퍼포먼스' 설정, 그리고 '오퍼레이션' 설정의 3가지로 나뉘어진다.


베이스 캐릭터 설정은 AC의 이동, 공격, 전술 등의 기본 행동 패턴의 우선 순위를 지정해 주는 A.I.튜닝의 기본이다.



퍼포먼스 설정에서는 현재 AC에 장착된 Head파트의 용량에 맞춰 A.I.의 성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베이스 캐릭터'는 AC의 기본 행동패턴을 정해 주는 설정으로서, 각 행동의 우선순위를 지정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투 중 공격을 우선 할 것인지 아니면 방어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인지를 설정해 줄 수 있으며, 원거리 전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접근전에 우선을 둘 것인지 등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퍼포먼스'설정은 각 AC에 장착된 Head부품의 종류에 따라 할당된 용량에 맞춰 A.I.의 성능을 강화하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지형 분석에 많은 용량을 할당하면 각 전투장의 구조와 특성을 우선적으로 분석, 전투에 임할 것이며, 무기 제어에 많은 용량을 할당한다면 각 상황에 따른 무기를 보다 적절하게 선택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오퍼레이션'설정은 보다 구체적인 A.I.튜닝의 방법으로서, 전투시간의 경과에 따라 AC가 실행할 특정 행동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 설정은 30초 단위로 이루어지며, 각 시간에 AC의 행동을 제어하는 '오퍼레이션 칩'을 장착하게 된다. 칩은 총 48종류가 존재하며 각 칩의 종류에 따라 어떠한 칩은 적과의 거리를 두는 행동을 하게하고, 어떠한 칩은 점프 이동을 자주하게 만들며, 현재 장착한 무장을 해제하게 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오퍼레이션 설정에서는 각 시간마다 AC가 실행할 구체적인 행동을 지정해주는 오퍼레이션 칩을 장착시킨다.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 AC의 성능과 지형의 특성을 분석, 아군 AC의
부품 구성과 A.I.특성을 적절히 대응시켜 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적들과의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부품 조합으로 완성된 아군 AC와 적절한 A.I.튜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등장하는 적들은 랭킹마다 그 특성이 다르므로 아군이 한 번 승리했다 하더라도 다음에도 꼭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틑테면 사정거리가 짧은 무기로 접근전을 주로 하는 적 AC를 상대하기 위해선 A.I.튜닝에서 아군 AC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전투를 하는 기본 행동을 정해준 후, 부품 조합에서 장거리 무기를 주로 장비해 주면 쉽게 승리할 수 있겠지만, 원거리전을 특기로 하는 적AC를 상대할때는 정 반대의 A.I.튜닝과 부품 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AC-FF」에서의 승리의 길은 적 AC에 대한 연구에 따른 아군AC를 구성하는 부품들과 A.I.의 설정을 철저하게 대응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는 지금까지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의 재미를 한 단계 발전 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모든' 팬들이 아닌 '일부'팬들을 위한 게임
물론, 지나치게 매너리즘에 빠져 비슷한 내용의 후속작들만을 양산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시리즈물인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게임성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기존의 팬들에게 약간의 위화감, 혹은 저항감 마저 가지게 할 수 있는 다소 위험한 선택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 확고하게 그 기본 시스템과 뼈대를 갖추고 있으며 팬들 역시 그것에 익숙해진 상태이다.
「AC-FF」의 그래픽은 지금까지 PS2로 나왔던 아머드 코어 시리즈와 비교해 보더라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이며, 전투시에 보여주는 다양한 카메라 앵글과 화면의 각 부분에 표시되는 자세한 각종 수치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상당한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A.I.의 튜닝을 공들여 했다 하더라도 A.I.가 조종하는 AC들이 플레이어가 원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긴 힘들며, 이는 특히 기존의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 충분히 익숙해져서 상당 수준의 조작 실력을 갖게 된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대단히 답답한 점일 것이다.


「AC-FF」의 그래픽적인 퀼리티나 카메라 앵글등은 수준급이다.
마치 PS2판 아머드 코어 시리즈의 리플레이 화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AC-FF」가 이러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액션 게임을 잘 하지 못하는 기존의 팬이나 신규 유저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제작사로서 새로운 하드웨어인 PSP에 진입하기 위한 시험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PSP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하드웨어이다. 때문에 「AC-FF」와 같이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들어있는 신선한 게임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유저들로서는 다소 적응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제작사의 모험은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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