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게임 세계에 휘몰아치다

"아.. 걔 옷 정말 못 입더라, 좀 뭐라고 해봐"

"그치? 허우대는 멀쩡해가지고. 센스 있게 입으면 훨씬 괜찮을 텐데 말이지"

길을 지나다보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다. 머리 스타일이나 몸의 체형, 그리고 장소에 안 맞는 어색한 옷차림을 하고 나오는 경우에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패션에 둔감한 사람은 민감한 사람보다 사회 생활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최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의 그래픽 묘사가 점점 세밀해지면서, 게이머들이 게임 캐릭터와 감정이입이 되고 있는 것. 게이머들은 옷이 이상한 캐릭터들을 보면 가급적 대화를 피한다. 이상한 복장의 캐릭터로 게임을 해보려고 하면 여지없이 '좀 꾸미고 오세요'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이렇게 게임 캐릭터의 복장이 게임 생활에 중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게임사들도 바빠졌다. FPS 게임, 캐주얼 게임, 댄스 게임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게임들이 머리 스타일, 수많은 옷, 다양한 장신구 등 '패션 품목'을 갖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패션에 민감한 분야는 역시 리듬 댄스 게임 장르다. '오디션'의 성공 이후 리듬 댄스 차기작들은 하나같이 '패션'을 주요 장점으로 내세우며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지난 9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러브비트'는 요즘 여성들이 좋아하는 '신상(신상품을 뜻하는 은어)'을 테마로 '패션 게임'을 자처했다. '러브비트'의 캐릭터들은 크게 덜 자란 체형과 다 자란 체형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엔씨소프트는 이들 캐릭터들에 맞게 매주 신상 아이템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실제로 '러브비트'는 출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옷의 종류가 수백 벌에 달하고 있으며, '온라인 파티'를 벌이는 동안 게이머들이 '신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곡을 플레이 한 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서 커플을 맺어주는 '미팅 파티' 모드와 커플을 미리 결정한 뒤 들어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로 승패가 갈리는 '커플 파티' 등 대부분의 모드들이 남녀의 만남을 유도하고 있어, 이성의 관심을 받기 위한 게이머들의 '꾸미기 노력'이 현실 못지 않게 치열하다.

'누리엔'도 패션을 테마로 한 리듬댄스 게임으로 정평이 나 있다. '누리엔'은 에픽게임즈의 '기어즈오브워'와 레드덕의 '아바'로 유명한 언리얼 엔진을 사용해 제작한 게임으로, 유명 복장들을 그대로 재현한 복장 아이템들과 다양한 패션 액세서리가 특징이다. 특히 옷감의 질감까지도 느껴질 정도의 사실적인 그래픽과 8등신 모델과 같은 캐릭터들의 모습은 흡사 실제 모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아케이드 게임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버추어 파이터5'나 '철권6' 등 최신 격투 게임에도 다양한 패션 용품들이 등장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꾸미는 '패션' 욕구가 아케이드 센터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다양한 패션 용품으로 치장한 캐릭터는 원래 어떤 캐릭터 였는지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아예 패션을 강화한 게임이 아니라 패션 자체를 테마로 한 게임들도 늘고 있다. CJ인터넷에서 서비스 하고 있는 '바닐라캣'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아바타 꾸미기에 가깝다. 이 게임은 자신의 캐릭터를 예쁘게 꾸미는 게 주 테마인 게임으로, 1만6천여가지의 옷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로 패션에 관해 즐길 거리가 많다.

또 최근에는 휴대용 게임기 NDS로도 패션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출시된 '팝큐티'는 '스트리트 패션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로 주목받는 작품. 이 게임은 풋내기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점점 점포를 키워 자신만의 패션 제국을 만드는 게 목표며, NDS의 무선 기능을 이용해 다른 게이머들과 '패션 배틀'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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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NDS로 나온 '핑키스트리트댄스배틀'도 패션에 테마를 둔 게임이다. 인기 있는 피규어 '핑키 스트리트'의 캐릭터를 게임화 시킨 이 게임은 자신만의 '핑키 스트리트' 캐릭터를 선택해 다양한 캐릭터들과 댄스 대결을 할 수 있다. 간단한 리듬 액션 게임성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캐릭터 꾸미기가 다양해 인기를 얻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이 실제 사람의 욕구를 하나 둘씩 충족시켜가면서 게임과 현실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며 "그래픽이 점점 실사에 근접하게 발전해갈 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또 "패션이 게임 내 중요 요소로 부각되면서 게이머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패션이라는 테마와 부분유료화 시스템은 궁합이 너무 잘 맞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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