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의 인수 합병, 해외의 사례는?

지난 한 주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 최고의 화두는 넥슨과 게임하이의 인수였다. 최근 네오플, 엔도어즈 등의 탄탄한 개발사들을 연달아 인수한 넥슨이 '서든어택'으로 유명한 게임하이를 인수했다는 소식은 게임계는 물론 경제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게임하이 측에서 "넥슨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실사를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인수를 두고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힌 후, 향후의 상황을 더 관망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넥슨과 게임하이의 합병 소식은 게임 업계의 인수와 합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해외 게임 시장에서 게임 업체 간의 인수, 합병이 최근 몇 년 사이 일종의 유행 아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넥슨의 이러한 행보는 그다지 놀랄만한 사실은 아니다. 거대한 기업이 타 업체를 인수, 합병하는 것은 비단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에서는 당연시 되고 있는 비즈니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집어 삼키며 거대해진 EA, 합병으로 EA를 뛰어넘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서양 개발사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M&A를 시도하는 기업이라면 단연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trs, 이하 EA)를 꼽을 수 있다. EA는 9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인 기업 인수를 통해 자신들의 세를 불려왔으며 그 결과로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게임 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들이 흡수한 기업의 면모를 살펴 보면 EA가 단지 많은 수의 기업을 합병한 것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뛰어났던 개발사들을 대거 합병한 것을 알 수 있다. 심시티 시리즈의 맥시스, C&C 시리즈의 웨스트우드, 울티마 시리즈의 오리진, 던전키퍼 시리즈의 불프로그 등이 그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또한, MMORPG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을 제작한 미씩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가 하면, 대표적인 소셜게임 제작사인 플레이 피시를 인수하며 PC 패키지 게임 시장에만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에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EA의 이런 행보는 게임 시장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앞선 문단에서 언급됐던 EA에 흡수된 개발사들의 대표작들이 EA에 합병된 이후 출시가 되지 않거나, 급격한 질적 하락을 겪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EA는 C&C 레니게이드의 실패 이후 제작사인 웨스트우드를 곧바로 해체 해버렸으며, C&C의 핵심 개발자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C&C 시리즈를 계속해서 출시했다. 이후 출시된 C&C 시리즈의 질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던전키퍼 시리즈는 그 명맥이 끊겼으며, 심시티 시리즈의 아버지인 윌라이트는 결국 EA를 퇴사했다. 또한 울티마 시리즈로 잘 알려진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은 EA 상층부와의 마찰로 인해 결국 회사를 사퇴하고 오리진 스튜디오의 명맥이 끊어진 일도 있다.

즉, EA에 흡수된 개발사 대부분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이런 EA의 행보는 게이머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됐으며 결국 EA는 'Eat All', 즉 뭐든 다 잡아먹는다는 뜻의 좋지 않은 별명도 얻게 됐다.


합병으로 서양 게임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례라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기타 히어로 시리즈, 토니 호크 스케이트 보드 시리즈 등 인기 비디오 게임 시리즈를 유통하던 액티비전과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PC 패키지와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블리자드의 합병은 'Big Deal'이라는 말처럼, 단어 그대로 거대한 파문을 불러왔다.

2007년 12월 실시된 이들의 합병은 블리자드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기업 비벤디가 액티비전의 대주주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들의 합병 과정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비벤디의 자회사인 비벤디 게임즈가 액티비전의 자회사로 귀속됐다는 점이다.

비벤디 게임즈는 약 81억 달러 규모의 주식으로 전환되어 액티비전의 신규 주식으로 편입됐으며, 비벤디 게임즈를 흡수한 액티비전은 다시 비벤디 게임즈의 모회사인 비벤디에 흡수됐다. 이 와중에 비벤디 게임즈의 4개 크리에이티브 부서 중 가장 거대한 업체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액티비전과 하나가 된 것이다.

두 회사는 합병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며 수익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합병이 업계 전반에 불러온 지각 변동은 대단한 수준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계 최대 게임업체의 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기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매출은 48억 달러로 EA가 기록한 37억 달러는 제치며 1위로 올라섰다. EA의 순위 하락은 최근 자사가 제작한 게임들의 판매 부진과 맞물려, 미국 내 증시에서 힘겨운 행보를 벌이고 있다.


* 2000년대 초, 중반을 뜨겁게 달군 일본 게임업계의 합병 열풍

일본 게임시장 역시 지난 2000년대 초, 중반 대형 게임 제작사들의 합병 소식을 전하며 시장에 지각변동을 전한 바 있다.

2003년 실시된 스퀘어와 에닉스의 합병은 게이머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롤플레잉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제작한 스퀘어와 에닉스는 업계의 대표적인 라이벌 업체였으며, 그런 그들이 서로 손을 잡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실현되는 것이 현실. 파이널 판타지의 3D 영화의 참혹한 실패 이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던 스퀘어와 드래곤 퀘스트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원이 없던 에닉스는 결국 합병을 선언하기 이른다. 또한 이들의 함께 손을 잡은 근간에는 북미, 유럽 시장으로의 진출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는 점도 큰 몫을 차지했다.

전통적인 요소를 고집하는 에닉스와 새로운 요소를 계속해서 게임에 도입하는 스퀘어의 만남을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대부분 상대적으로 긴 불황에 빠져 있던 스퀘어를 에닉스가 흡수했다는 시각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두 업체 사이 빅딜의 주인공인 '와다 요이치' 사장의 시각은 이런 보편적인 시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양사의 합병을 두고 "두 회사가 하나로 되는 과정에서 오는 수익 기반의 강화로 콘텐츠에 대한 구심력을 최대화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번 결정은 장래를 이겨내기 위한 공격적인 합병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더 큰 회사가 열세에 놓인 회사를 잡아먹는 흡수 형태의 합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게임시장의 또 다른 대표적인 합병 사례로는 반다이 남코 게임즈의 예가 있다. 테일즈 시리즈와 철권 시리즈 등으로 비디오 게임과 아케이드 시장에서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던 남코와 각종 캐릭터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지도를 보이던 이 둘의 만남은 지난 2005년 가을에 이뤄졌다.

반다이의 경우 완구 시장에서의 높은 평과와는 달리 일본 내 게임 시장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반다이와 남코의 만남은 다소 어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어색한 모습과 달리 이들의 합병은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냈다. 합병 당시 양사의 매출액은 반다이가 2700억 엔, 남코가 1880억 엔으로 양사의 합산 매출액은 4580억 엔. 이는 당시 세계 최대의 완구사인 미국의 마텔이 기록한 5360억 엔(엔화 기준)의 매출을 목전까지 따라잡은 수치였다.

또한 이들의 만남은 묘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게임의 질은 다소 낮지만, 마케팅 실력으로 이를 상쇄하던 반다이와 게임의 개발력은 뛰어나지만 마케팅 실력은 다소 쳐진다는 평가를 받던 남코의 만남은 서로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주는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이 마냥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도가 지나친 마케팅으로 인해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반감을 일으키는 일도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Xbox360으로 발매됐던 뷰티풀 괴혼에 서비스 된 DLC(Download contents)의 가격 문제였다.

최근의 비디오 게임에서 게임의 추가 콘텐츠를 DLC로 판매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지만, 이들 게임이 비난을 받았던 것은 DLC가 담고 있는 추가 콘텐츠가 게임에 기본적으로 담겨져 있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의 관계자는 "게임 업계도 엄연히 비즈니스의 세계이기에 업체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게이머가 돈을 주고 게임을 구입하면 당연히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콘텐츠를 배제하고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면 결국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대형 인수 합병을 성사시킨 넥슨, 향후의 행보는?

그렇다면 네오플, 엔도어즈 그리고 최근의 게임하이까지. 연이은 넥슨의 인수는 회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아직까지는 확신을 지을 수는 없지만 최종적으로는 앞으로 넥슨의 거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넥슨이 인수한 기업들은 모두 튼실한 개발력을 갖추고 있으며, 인수 이전에도 꾸준한 수익을 거두고 있던 탄탄한 기업들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공격적인 M&A를 실시한 기업들 모두가 게임업계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떨치고 있는 선례 역시 넥슨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원인이다.

대형 업체가 작은 업체를 흡수하는 것을 두고 찬반양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수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기업들의 이러한 행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게임의 질적 상승과 해외 시장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업계 내외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게임 시장의 인수, 합병이기 때문이다.

게임 업계의 잇따른 M&A를 통해 한국 게임시장의 전반적인 규모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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