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주인공들, 그들은 피곤하다

영화를 봐도, 소설을 봐도, 게임을 즐겨도 언제나 주인공은 멋있다. 그리고 강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복하며,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멋지고 강하기 때문에 주인공이고,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들은 강하고 멋지다.

하지만 똑같은 한우에도 등급이 있는 법이며, 같은 걸 그룹 내의 멤버들 사이에도 인기순이 있는 법이다. 게임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두 폼나고 윤기 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고충을 지니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능력에 고뇌하는 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 전 그냥 늙어 보이는 배관공인데 왜 자꾸 공주를 구해 오라 하시나요?

멜빵바지에 빵모자, 20대 중반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콧수염. 이 정도만 설명해도 누구를 언급하는 것인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탄생시킨 세계 최고의 캐릭터, '슈퍼마리오'의 주인공인 마리오다.

1985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시리즈에서 활약을 해온 슈퍼마리오는 인지도와 인기도에서 그 어느 게임의 주인공들보다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준 캐릭터다. 비록 외모는 MMORPG의 마을에 나오는 빵집 주인 NPC처럼 생겼을지라도, 액션 게임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바로 마리오인 것이다.

인기도와 인지도,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마리오. 게다가 한 나라의 공주와 친분도 있으며, 먹는 것이라고는 버섯과 꽃 밖에 없는 친환경적인 인물. 얼핏 보면 '도대체 이 사나이의 어디가 불쌍하다는 것이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다름 아닌 공주와 친분이 있다는 점, 그것이 그를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치 공주는 마리오에게 명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좋은 차를 요구한 적도 없다. 마리오와 루이지를 두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장관리를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 공주는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납치와 감금을 당한 엄청나게 조심성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하러 가는 것은 언제나 마리오라는 것. 한 나라의 공주가 저렇게 자주 납치를 당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공주의 안위를 보호해야 하겠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나라는 공주의 안위를 일개 배관공 형제에게 모두 일임하고 있다. 자신의 본업인 배관공 업무와 국가적 중대사인 '공주 구출'을 떠안은 마리오는 오늘도 피곤하다.


* 이런 고생 할 줄 알았으면 그깟 설탕덩어리 거절할 껄...

운 없기로 소문난 주인공이라면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이하 화이트데이)의 주인공도 빠지지 않는다. 화이트데이는 국산 PC 패키지 게임의 대표적인 개발사인 손노리에서 개발한 호러 게임으로 지금까지도 최고의 호러 게임을 선정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임이다.

적절한 음향효과와 배경음악으로 게이머들이 긴장감은 잠시도 놓을 수 없게 만들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공포 요소들은 어지간히 호러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들도 질려서 게임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다.

게임의 배경은 간단하다.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받기 위해 야심한 시각에 학교로 온 주인공은 학교에 갇히게 된다.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학교로 찾아온 주인공 앞에 나타나는 온갖 귀신과 수상한 일들. 게다가 학교 수위라는 작자는 위기에 처한 학생을 구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쫓아다니면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으니 주인공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호러 게임들의 주인공들은 각종 무기를 사용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에게 대항하지만, 화이트데이의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안전한 지역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것이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 게다가 더 문제는 이놈의 학교에는 도무지 안전한 지역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호러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유난히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화이트데이의 주인공은 그 중에서 유난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공격할 수단은 아무 것도 없고, 귀신과 인간의 합동 공격을 받는 평범한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친구마저도 없다는 설정은 이 게임의 주인공을 더욱 슬프게 만든다.


* 주말 드라마 '철권'이 나온다면 시청률 50%는 무난할 것

최근 몇 년간 한국 드라마의 화두는 '막장'이었다.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 아니며,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어릴 때 생이별한 남매. 그 와중에 드라마 주인공 주변에는 왜 이리도 백혈병과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 한국의 막장 드라마 주인공은 일반인들은 버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반다이남코게임즈의 격투 게임 '철권'이 그 주인공이다. 세가의 '버추어파이터'가 3D 대전 격투 게임의 서막을 연 이후, 후속 주자로 등장한 '철권'은 특유의 타격감과 시원시원한 콤보 시스템으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더욱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격투 게임이다.

그냥 치고 받는 격투 게임이 왜 막장 드라마와 비교 되는가. 그것은 철권 시리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시마 가문'의 집안 내력에 있다. 거대 기업인 미시마 그룹의 총수 헤이하치, 그리고 그의 아들 카즈야와 카즈야의 아들인 카자마 진. 이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자지간에 서로 죽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반인륜적인 면모를 보이는 인물들이다.

1편의 엔딩에서 카즈야는 자신의 아버지인 헤이하치를 절벽에서 던져버린다. 하지만 절벽에서 기어올라온 헤이하치는 2편의 엔딩에서 자신의 아들을 화산 구덩이에 던져버리는가 하면, 철권 3에서는 자신의 손자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며 헬리콥터에서 손자를 밀어버리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들의 집안싸움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들이 가야할 콩가루 집안의 표본을 보여준다. 게다가 철권은 이들의 싸움에 얽혀든 아리따운 아가씨인 샤오유와 카자마 아스카, 카자마 준까지 등장하며 재벌가의 암투, 복수극, 주인공과 미녀의 연애 감정까지 갖추고 있는 드라마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들은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없기에 불행하다.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회에서 상처 받고 결투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가족이라는 것을 주인공들이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 사고는 아버지가 치고 수습은 왕자가 한다

'로맨틱 접착 액션'이라는 다소 해괴한 장르를 주창하며 플레이스테이션 2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괴혼'은 '물체를 굴려 커다랗게 만든다'는 단순하면서도 특이한 게임 시스템과 완성도 높은 배경 음악으로 높은 인기를 모은 게임이다.

특히, 국내에 발매된 괴혼1과 2의 경우는 높은 수준의 한글화를 거쳐 원작의 대사를 더욱 맛깔나게 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게임 한글화의 좋은 예로 아직까지도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윈디소프트를 통해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 서비스 되고 있어 게이머들이 괴혼의 재미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괴혼은 언제나 주인공의 아버지인 '아바마마'가 일으킨 사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주의 권력자인 '아바마마'는 자신의 근력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 주변 사물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는 조심성 없는 인물이다. 술을 마시고 취해 우주의 별들을 때려 부수는가 하면, 지구로 피서 와서는 물장구에 열중한 나머지 주변의 섬들을 모두 파괴한 경우가 '아바마마'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알려주는 좋은 예다.

게다가 자신이 친 사고를 자신의 아들인 '왕자'에게 떠넘겨 자신의 아들이 지구에서 쉴 틈도 없이 덩어리를 굴리도록 하는 무책임한 모습까지 보이는 등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바마마'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아들이 수습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아들이 수습에 실패하면 아들에게 빈정거리거나, 심하게 몰아세우는 등 게임 역사상 가장 뻔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괴혼'의 주인공인 왕자는 왕자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깨는 인물이다. 왕자라는 것은 흔히들 모든 이들이 우러러 보는 존재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괴혼'에는 그저 '아바마마'가 일으킨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왕자라는 이름의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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