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P로 즐기는 최고의 FF. 파이널 판타지 영식
파이널 판타지의 최신작인 13을 필두로 전개되고 있는 파블라 노바 크리스탈리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라인업 중 두 번째 작품으로 TYPE 0(이하 영식)이 출시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전작이었던 13과는 스토리상으로는 전혀 접점이 없는, 세계관과 일부 설정 등만 차용한 완전 신작이다. 제작 발표 당시에는 모바일 플랫폼(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휴대전화 기반)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노선을 바꾸어 타이틀명도 Agito에서 영식으로 변경하였고 출시 플랫폼도 PSP로 변경됐다. 그 결과 오랜 기다림이 이어졌지만, 게이머들은 PSP에서 드문 UMD 2장이라는 압도적인 볼륨을 가진 게임을 만나게 됐다.
역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들이 작품의 주인공 한 명을 필두로 점점 동료를 모아가며 스토리를 진행하고 하나의 거대한 적에 맞서 싸워왔다고 한다면, 영식은 스토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도학원 베리시티리움 주작(朱雀)의 탑 클래스 중 하나인 0반(0組)의 생도 14명을 조작하게 되며 이들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덕분에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0반에 소속된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이러한 요소 덕에 플레이어가 조종 할 수 있는 캐릭터의 다양성이 확보되었지만, 게임 시스템 상으로 미션에 참가할 때는 최대 3명까지만을 파티원으로 설정 할 수 있으며, 다른 캐릭터를 플레이 하려면 현재 사용중인 파티원이 사망 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미션 진행 도중에는 상부로부터 직접 하달되는 미션이거나 원군에 소속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S.O.(Special Order)라는 미션이 존재하는데, 이는 각 미션에서 파생되는 일종의 서브 미션으로, 보통적으로 제한시간 내에 특정 에이리어의 적군을 진압하라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S.O.는 항상 수행할 필요는 없으며, 아예 이러한 명령이 하달되지 않도록 옵션에서 설정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시리즈는 정해진 파티원 내에서 자유로이 캐릭터를 선택을 하여 플레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의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 등은 나름대로 잘 구성된 면도 있어서 한 번 익숙해진다면, 그리고 머리를 잘만 쓴다면 전혀 다른 방식의 전략과 전술로 플레이를 할 수 있으며, 그 경우의 수는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원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다양한 진행 방식을 선택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강점이지만, 그만큼 게이머가 관리해줘야 할 부분이 늘어났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보통의 RPG라면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은 장비만 관리해 주면 동료로 데리고 다닐 때마다 쌓이는 경험치로 자연스럽게 레벨 업을 하여 스킬이나 기술치 등이 상승되는데, 본작의 경우는 그것을 하나하나 일일이 관리해줘야 할 뿐만 아니라, 14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각각 따로따로 관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릭터 전원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점 때문에 미션 진행 중 자신이 주력으로 키우던 캐릭터들이 사망이라도 하게 되었다 치면,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레벨이 낮은 캐릭터만이 남게 되어 미션 진행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때문에 14인의 캐릭터를 골고루 키워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메인 스트림과 엮이는 스토리 미션을 제외한 번외격 전투를 학교 내 투기장과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필드에서는 여느 RPG와 마찬가지로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배회중인 몬스터나 반군의 잔당들을 처리하여 경험치를 얻는 방식이며, 투기장은 실전과 완전히 같은 적과 시츄에이션을 토대로 전투를 펼쳐나가며 경험치를 쌓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도 캐릭터를 육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기게 마련인데, 이러한 아쉬운 점을 해결하기 위해 파티에 참가하지 않은 캐릭터들도 경험치를 일정치 획득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넣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근 2년 사이 출시되었던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서 함내 대기 인원도 일정치의 경험치를 얻듯이 말이다.
일반적인 잠입 미션 이외에도 세계관에 존재하는 주작군과 대치되는 창룡군이나 황국군 간의 마찰이 있을 시 그 사이에 개입하면서 진행을 할 수 있는 제압 미션이 존재한다. 양 군대간의 마찰 개입 뿐만이 아니라 거점 점령, 거점 보호 등의 세부적인 미션으로 나뉘어져서 그때그때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그리고 미션 진행 뿐만이 아니라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로서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서브 이벤트를 꼽을 수 있다. 한 미션이 끝난 뒤 그 다음 미션이 진행 될 때 까지 자유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주어지는 자유 시간은 때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때 위에서 언급하였던 투기장에서의 모의 전투를 하여 부족한 능력치를 보충하거나 아이템 및 장비의 구입, 맵 이동시에 사용 가능한 초코보 육성, 그리고 같은 학교 생도들과의 커뮤니티나 의뢰 및 서브 이벤트를 통한 부수입(?) 창출 등의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교류는 비단 학교 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월드 맵 내에 존재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도 할 수 있으며, 특히 마을 사람(NPC)은 적국에 대한 소문이나 정보 등을 제공해주기도 하니 귀찮더라도 한번 쯤 체크해두면 나중에 미션 진행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된다. 여담이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누구냐에 따라서 똑같은 이벤트나 커뮤니티를 나누어도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꽃이라고 친다면 역시 소환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환에 성공하면 어려운 전투도 조금이나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리스크가 두 가지 존재한다. 첫째는 소환수(게임 내에서는 군신[軍神]이라고 불리운다)를 소환하려면 파티원 내 한명의 HP를 전부 희생하여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그렇게 어렵게 소환을 했어도 소환수 자체에 소환 제한시간이 걸려있어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는 컨트롤에 미스가 나면 안된다는 것.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하기 어렵다 싶은 게이머들을 위한 또 다른 선택지로 삼위일체 공격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는 파티원 중 자신이 조작중인 캐릭터의 어빌리티 게이지를 소비하여 나머지 파티원들의 특수 공격을 같이 발동시킬 수 있는데, 소환수 소환과는 달리 HP가 깎일 염려도 없고, 어빌리티 게이지가 어느정도 채워져 있다면 몇 번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 리스크 없이 미션을 완수하고 싶다면 삼위일체 공격을, 소환수들의 미려한 모습과 강력함을 감상하고 싶다면 군신소환을, 선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게이머의 몫이 되겠다.
최근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기존 RPG 게임들이 항상 채용해 왔던 월드 맵 형식을 버리고 좀 더 간략화된 형식으로 각 세계나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상징이라고도 불려왔던 비공정이나 초코보 등의 이동수단이 퇴색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이번 작에서는 다시금 옛날 방식의 월드 맵 이동 시스템이 부활하였으며, 덕분에 다시금 비공정과 초코보의 비중이 높아졌다.
허나 비공정의 경우는 한 번 탑승하는데에 비용이 추가되고,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지역이어야만 이동 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고, 초코보의 경우는 한 번 육성하면 계속 이용하는 방식이 아닌 소모품 형식으로 전환되어 한번 쓰고 버려야 한다. 거기다가 월드 맵 이동시에 초코보를 타면 다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제한시간이 있어 타고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그리고 월드 맵에서의 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을 잃게 되지 않게 충분한 안내 표지판이나 힌트 등이 주어져야 정상인데, 본작의 경우는 그러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불친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족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지역 간의 오브젝트가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은 거기서 거기 같은 비슷비슷한 그래픽들의 나열일 뿐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목적지가 아닌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는 불상사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본작은 요즘 파판시리즈에 걸맞게 액션 RPG식의 전투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파티원 3명을 지정한 뒤 미션이나 필드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바꾸거나 소환수를 소환하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해서 전투를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다. 14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 캐릭터마다 쓰는 무기들이 다른 덕분에 여러 가지 스타일의 전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캐릭터를 어디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전투가 유리해 질 수도 있고 불리해 질 수도 있는데, 이를 커버 할 수 있는 요소가 킬스트릭 시스템이라는 요소이다. 타겟을 록온 했을 때 일순간에 붉은 색이나 노란 색(평상시에는 파란 색)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공격을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줄 수 있는 대미지의 2~3배 가량 더 높은 대미지를 줄 수 있다. 이를 잘 이용하게 되면 어려운 전투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만, 잘못 이용하다가는 공격 사이에 큰 딜레이가 생겨서 오히려 더 불리해질 수도 있다.
적을 잡은 뒤에는 판토마라고 불리우는 물질을 흡수 할 수 있는데, 판토마를 입수하여서 각 캐릭터마다 갖고 있는 마법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마법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판토마가 여러 개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치 몬스터 헌터에서 자신이 원하는 장비류를 만들기 위해 소재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는 꽤나 만족스러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SP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내서 보여주는 각종 타격 이펙트 및 마법 사용시 등장하는 이펙트 등 하나하나에도 미려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화려함을 잃지 않는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화려한 이펙트를 많이 사용하는 덕분에 가끔 프레임 저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기기 성능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여도 그 단점마저도 커버 할 만큼 극상이다.
또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 있다면 FF12 이후로 지원하지 않았던 (MMORPG방식은 아니지만)온라인 협력플레이의 대응을 꼽을 수 있겠다. PSP의 네트워크 기능을 이용하여 미션 진행 중에 다른 게이머가 난입해 플레이를 도울 수 있다. 비단 게이머의 난입뿐만이 아니라, 게임 자체 내에 저장되어있는 CPU의 캐릭터들이 난입해올 수 있도록 미션 개시 전에 설정해 둘 수도 있다. 자신이 주력으로 밀고 있던 캐릭터가 사망했을 때 어쩔 줄 모르다가 게스트 캐릭터가 자신의 주력 캐릭터로 난입해 준다면 이만큼 든든한 일도 없을 것이다.
UMD 2장이라는 압도적인 분량, 미려한 그래픽, 그리고 2~3회차까지 오래 놀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요소들. 허나 이것들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려는 생각은 안하고 서로 헛돌고 있다는게 이 게임에 대한 필자의 감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화롭게 보이지만, 왠지 영식 안에는 전부 들어가지도 않을 요소들을 억지로 집어넣어 두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플레이 하는 내내 스토리의 메인 스트림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중구난방적인 서브 이벤트나, 신경을 쓸 일이 많아져버린 파티원 관리 등,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을 희석시켜주는 장점들이 존재하고, PSP로 즐길 수 있는 역대 FF 시리즈의 최고점을 자랑한다는 점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출시될 파블라 노바 크리스탈리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라인업의 마지막을 장식할 FF13-2 출시 전에 만나보는 여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눈과 마음에 거슬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