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닌텐도, 세가...그들의 '숨기고 싶은 과거'

큰 실수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흔히들 '삽질한다'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이런 표현은 개개인의 행동을 넘어 시대착오적인 혹은 이상한 성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들에게도 종종 적용되는 표현이다.

1970년대에 비디오게임 산업이 태동한 이래 약 40여 년에 걸쳐 역사를 쌓아온 비디오게임 산업에서도 이러한 실패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가 긴 만큼이나 다양한 실수가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 산업의 실패한 역사를 살펴보면 익숙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닌텐도, 세가, 소니처럼 현재 비디오게임 시장을 이끌고 있는 친숙한 기업은 물론 비디오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애플의 이름도 눈에 띄는 점은 역사의 재미있는 한 면이라 하겠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이들 기업의 '삽질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 게임기가 갖추면 안 될 것은 모조리 다 갖춘 게임기, 애플의 피핀>

지금이야 스마트 시대를 선도하는 IT 기업으로 명망이 높은 애플. 이런 애플이 비디오게임 시장에 진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애플은 분명히 비디오게임 시장에 야심차게 진출했으며, 시원하게 해당 사업을 실패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96년, 애플은 반다이남코의 전신인 반다이와 손을 잡고 신규 비디오게임기를 출시한다. 66Mhz 파워 PC CPU를 탑재하고 네트워크 플레이를 위한 모뎀을 내장한 신형 게임기, 피핀이 그 주인공이다. 가정용 게임기를 넘어 네트워크 PC를 표방하며 시장에 등장한 피핀은 등장 이전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애플은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 꽤나 강력한 성능을 지닌 CPU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으로, 애플의 CPU가 탑재된 기기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은 게이머들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96년 기준으로도 낮은 성능의 CPU가 탑재됐으며, 네트워크 플레이를 위해 내장된 모뎀 역시 속도가 14.4Kbit에 불과해 실질적으로 네트워크 플레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즐길만한 게임이 없다는 것. 피핀 전용 타이틀의 라인업이 100% 반다이 게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서드파티 확보에 실패해 게임 선택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았으며, 더 큰 문제는 '가격이 비싼 걸 보니 애플 제품이 맞구나' 하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로 고가인 599달러의 가격이 책정됐다는 것이다.

<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념을 탑재한 닌텐도의 버추얼보이>

닌텐도의 버추얼보이는 최근 대세가 되고 있는 3D 입체영상을 실제로 구현한 최초의 게임기로 명성이 높다. 또한 불편한 착용감, 눈의 피로 유발, 휴대기기로 개발됐음에도 휴대가 불가능한 휴대성 등으로 악명을 떨친 기기이기도 하다.

버추얼보이는 디스플레이에 기기를 연결하는 여타 게임기와는 달리 기기에 자체적으로 게이머가 눈을 댈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장착되어 있어, 이 곳에 눈을 대고 게임을 즐기는 형식의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는 기기였다. 문제는 그 부피가 상당히 커서 휴대용임에도 거치형 비디오게임기처럼 실내에서만 즐겨야 했다는 점이다.

또한 입체 영상 구현을 위해 게임읠 발색을 4색 모노크롬으로 구현해 모든 게임의 화면이 빨간 색으로 구현됐다는 점과 건전지가 무려 6개나 들어간다는 점도 기기에 대한 실망감을 유발했다.

결국 3D 입체영상 구현은 제벌 훌륭했지만 착용이 불편하고 눈의 피로를 극단적으로 유발하는 이 기기는 게이머들에게 악평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19개의 게임만이 발매되며 닌텐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단종된 게임기로 이름을 남겼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제품에는 통신포트가 존재했음에도 통신을 위한 케이블이 발매되지 않아 버추얼보이의 통신기능이 상용화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포트를 통해 무엇을 시도하려 했었는지에 대한 게이머들의 추측만을 남기고 이 기기는 사라졌다.

<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안 되고, 16비트에 애드온 한다고 32비트 안 된다. 세가의 슈퍼32X>
16비트 가정용 게임기인 메가드라이브로 나름의 지지세력을 구축한 세가는 32비트 게임 시대를 맞아 1996년에 슈퍼32X라는 특이한 기기를 출시한다. 이 기기는 메가드라이브의 카트리지 슬롯에 장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킹시스템'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띈 것이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대변되는 32비트 게임기의 발매에 앞서 출시된 이 제품을 통해 세가는 새턴이 출시되기 이전의 시장 공백을 매울 요량이었으나, 실제로 판매된 제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메가드라이브 이외에 슈퍼32X 전용 전원과 별도의 비디오 출력 단자가 필요할 정도로 연결이 불편했다는 점, 그리고 메가드라이브와 함께 기기가 고장나는 불량 사례가 판매 부진의 원인이었다.

또한 슈퍼32X 전용으로 출시된 게임들의 품질 역시 3D 전용 게임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퀄리티를 띈 경우가 많아 세가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기기 판매촉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메가CD', '소닉과 너클즈'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도킹 시스템을 이용해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세가였지만 결국 슈퍼32X는 출시된 지 1년도 안돼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 "이게 영화야 게임이야?", CF만 기억나는 게임기 3DO>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어요", 30대에 접어든 게이머라면 배우 이정재가 은색 우주복을 입고 출연했던 LG의 3DO 얼라이브의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3DO라는 게임기는 꽤나 독특한 게임기였다. 현재의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회사에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업에서 3DO 규격을 채택한 기기를 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3DO는 LG는 물론 파나소닉이나 산요와 같은 다양한 기업의 이름을 달고 출시될 수 있었으며, 당시 게임 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소니 역시 3DO 규격을 채택한 게임기의 출시를 고려하기도 했다. 심지어 PC에서 3DO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3DO 블래스터'라는 PC용 카드까지 출시됐을 정도로 3DO는 개방적인 형태를 띄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기기들이 부실한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견디지 못 하고 실패한 것과는 달리 3DO는 300여 개의 서드파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자랑했다. 단지 서드파티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EA, 세가, 캡콤, 코나미 등 서드파티로 등록된 기업들의 면모도 매우 탄탄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3DO가 지닌 최고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도 3DO가 지닌 단점을 매꿀 수는 없었다. 3DO라는 기기를 이끌 뚜렷한 퍼스트파티가 없다보니 서드파티로 참가한 기업들도 몇 개의 게임만을 출시하고 3DO에서 손을 놓는 상황이 벌어졌다. 즉 뒤로 갈 수록 3DO 전용 게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또한 시대의 흐름인 3D가 아닌 2D에 치중한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인해 3D게임 마니아들을 유입하지 못 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너무나 빠르게 후속 기종인 'M2'의 출시를 예고했다는 점이다. 후속 기종이 금방 나온다는 소식에 게이머들은 '굳이 지금 3DO를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3DO는 부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 했으며 결국 'M2' 역시 출시되지 못 하고 3DO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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