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건설해보자...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프랑스 파리입니다. 세계 박람회 1900을 앞두고 파리 광장에서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건축 구조물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나중에 땅속에 파묻힐 터널들이 지금은 도로 위에 여기저기 세워져 있습니다. 파리의 지하철, 메트로를 모두 함께 만들어 봅시다.
2003년 올해의 독일 게임 대상을 수상한 알함브라의 디자이너 Dirk Henn이 지난 1997년도에 만든 메트로의 배경 설명이다. 파리의 지하철을 설계하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함브라 왕국을 건설하는 것에 비해 흥미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는 테마이다. 게다가, 보드만 언뜻 보면 전혀 파리 느낌도 나지 않는다. 그냥 격자 모양이 빼곡한 심심한 보드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서울의 지하철을 건설하려니 하면서 게임에 임하자.
메트로는 내용물이 간결하다. 게임 보드 1개와 지하철을 표시하는 6가지 색상의 열차모형 61개, 점수를 표시하는 점수 마커 6개, 처음 열차를 놓는 위치를 알려주는 초기 배치카드 6장, 그리고 60개의 철도 타일로 이뤄졌다. 내용물을 보면 알겠으나, 메트로는 2인부터 6인까지 가능한 게임이며, 게임은 기본적으로 타일을 놓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게임보드에 격자무늬가 있던 것이다.

메트로 박스

초기 배치카드다. 현재 플레이하는 인원수에 해당하는
숫자 아래를 보라. 거기 적힌 역에 현재 카드 색상의
열차를 놓는다. 지금은 6인용이니, 녹색 플레이어는 6,15,20,24,31 역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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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초기 세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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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시작하는 인원에 따라 적당한 색상의 초기 배치 카드를 건네 받는다. 메트로 역시 내용물을 아끼기 위해서 인지, 열차 모형의 수가 색상마다 달라, 플레이 인원수에 따라 선택 가능한 색에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2명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노랑과 파랑 중에 하나씩 선택해야 하며, 3명이 게임에 참가하면, 여기에 주황색까지 더해져 노랑, 파랑, 주황 중에 선택해야 한다. 뒤에서도 한마디 하겠으나, 열차 모형은 그냥 식빵 모양으로 껍데기만 열차 모양이다.
초기 배치카드를 보아, 현재 참여 인원수에 맞는 지역에 자신의 열차를 배치하는 것으로 초기 세팅은 끝난다. 게임 규칙은 카르카손 이상으로 간단하다. 메트로가 발전해서 알함브라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규칙인데, 자신의 차례에 타일 하나를 가져와 적당한 위치에 놓으면 끝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선 플레이어는 한 개의 타일을 갖는다. 이것을 놓거나,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또 다른 타일을 가져와 이것을 게임 보드에 놓는 형식이다. 즉, 한 개의 타일을 여유분으로 놓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형태인데, 메트로의 전체 타일을 꿰고 있어야 여유분 타일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규칙이 간단한 만큼, 타일을 놓는데 몇 가지 제한이 있다. 여기서 알함브라와 유사한 부분이 몇 보인다. 첫째, 이미 타일이 놓인 지역에 인접해서 두거나, 열차역과 인접한 지역에 놓아야 한다. 다른 타일 놓기류의 게임에서 역시 흔히 보아오던 규칙이니 헷갈릴 건 없다. 둘째, 이 게임에서는 열차역마다 한 타일 안에 출발점과 종착점이 모두 있다. 때문에, 타일을 하나 놓아 열차가 시작점에서 바로 종착점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가능한데, 이렇게는 놓을 수 없다. 최소한 2타일 이상 노선으로 연결되도록 타일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해당하는 지역 외에 놓을 곳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타일을 놓을 수 있음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메트로의 가장 특징적인 규칙으로, 타일의 화살표에 맞는 방향으로 타일을 놓아야 한다. 즉, 카르카손과 같이 4방향으로 자유롭게 타일을 놓는 것이 아니라, 메트로에서는 4방향중 게임보드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타일을 놓을 수 있다. 게임 보드와 타일마다 화살표가 그려져 있어 어렵지 않게 놓을 수 있기는 하다.

타일의 화살표와 보드의 화살표가 일치하게 타일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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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 역 보라색 열차 노선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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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이 2칸에 걸쳐 완성되었으므로, 2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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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마커를 2점에 옮기고, 점수계산이 완료되었다는
의미로 열차를 90도 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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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역 노란 열차 노선이 완성됐다. 노선은 3타일 안에
있지만, 실제 노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점수 계산을 하기
때문에, 4개 타일에 걸쳐 노선이 있고, 4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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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노선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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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규칙을 준수하며 타일을 놓아, 자신의 열차가 더욱 길게 연결되도록 타일을 놓고, 상대방 열차는 적은 타일만 거치며 종착역으로 되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열차가 종착점까지 연결되면 바로 해당 열차의 점수 계산에 들어가며, 거치는 타일마다 1점씩 얻는다. 카르카손과 달리, 노선이 지나가는 타일마다 점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중복 계산되는 타일도 있다.
그리고, 점수를 두 배로 부풀릴 수 있는데, 바로 게임 보드 한가운데에 위치한 중앙역으로 연결시키면 그러하다. 즉, 현재 열차의 노선이 중앙역에 도착하면, 점수의 2배를 얻는다.
메트로는 평이 갈리는 게임이다. 아마 좋은 소리보다는 그렇지 못한 소리를 많이 들을텐데, 확실히 메트로는 한두차례 플레이로 게임의 재미를 느끼기 힘든 게임이다. 파리 느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안 나는 게임 보드와 창문하나 안 뚫린 심심한 열차 모형, 그리고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열차 타일들까지 콤포넌트부터 정이 안 간다. 게다가, 협동의 요소가 거의 없어, 게임 진행 역시 상당히 조용~하다.
왜냐고? 남이 안 보게 감출 수 있는 여유분 타일이 조용해지는 첫째 이유고, 오픈 된 타일이라도 여러 사람과 토의를 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자신의 전략을 눈치 못 채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타일을 붙이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승리에 더 도움되기 때문이다. 서로 웃고 떠들어야 게임의 재미가 증폭할 텐데, 안 그래도 심심해 보이는 게임에서 말까지 아껴야 좋으니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22번 검은색 열차 노선이 중앙역에 연결되었다.
때문에 점수는 4점 *2 로 8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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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신의 수다. 파란색 플레이어가 8,9번 사이에
놓은 하나의 타일로 주변, 7,8,9,10 플레이어의 역들이
겨우 2,4,2,2 점씩 먹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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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에서는 자신의 열차가 늘어지는 것 못지 않게
상대 플레이어의 열차가 완행 노선이 되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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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 노란 노선을 보라. 노선이 몇 번 꼬이니, 중앙역에
안 붙어도 무려 17점을 얻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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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메트로의 진가는 2 ~ 4차례 이상 플레이 이후에 있다. 초반과 중반, 후반에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다름을 인지하고, 앞으로의 열차 노선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될 때쯤 아마 플레이어의 메트로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절대 얽히지 않는 노선 타일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만큼 흐뭇하다.
그리고, Dirk Henn이 제안한 방향의 제한 없이 아무렇게나 타일 놓기와 손에 쥐고 있는 타일의 수를 늘리는 옵션룰까지 적용하면, 게임의 깊이는 한층 깊어진다.

마지막 수다. 평상시에는 놓을 수 없는 타일이지만, 더 이상 놓을 곳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놓았다.

1,32번 역의 노란색, 검은색 플레이어는 1점씩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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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종료. 파란색 플레이어가 엄청난 점수차로
1등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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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 아쉬운 부분이 메트로에는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위에서도 지적한 너무 조용하게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서로 웃고 떠들며 즐길 수야 있지만, 정말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하는 경우에 서로 얘기할만한 꺼리가 부족하다. 특히, 진지한 분위기를 못 견뎌하는 플레이어가 한두명만 끼어도 아마 끝을 보기 힘들 것이다.
둘째는, 플레이어들끼리의 견제가 게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조훈현을 능가하는 수를 둔다고 한들, 주변 플레이어들이 입가심으로 던지는 견제수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때문에 의외의 플레이어가 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남들 눈에 띄는 수보다는 조용히 남들 눈에 안 띄게 쥐 죽은 듯이 플레이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남들에게 견제 안 당하는 것이 승리하는 첫째 비결이라 말할 수 있다면, 짚고 넘어갈 만한 수준 아닌가.
아쉬움이라고만 말하기엔 너무 치명적인 얘기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다소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한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게임 운영의 묘를 아는 파트너끼리 뭉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끼리 뭉쳐도 분명 흥미로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메트로, 간단한 규칙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흔히 권해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메트로는 초기 플레이의 지루함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잘못 권했다가는 괜히 나쁜 인상만 심어주고 다시는 플레이 안 할 게임 목록에 들어가 버리기 십상인 게임이다. 때문에, 보드 게임의 진득한 재미를 쫓는 중급자 이상의 게이머들에게 권한다. 2 ~ 3번의 진득한 플레이, 이 시간이 흐르면 메트로 특유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