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빠진 일본 게임업계, 이젠 초심까지 잃었나?

매너리즘, 갈라파고스 현상. 이들은 모두 최근 일본 게임업계가 처한 공통적인 문제점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예술 용어와 생물학적 용어가 게임업계에 적용된다는 것이 특이하긴 하지만, 실상 일본 게임업계는 이러한 표현을 듣더라도 별 다른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상황에 봉착한 것이 사실이다.

독특한 게임이 꾸준히 출시됐던 과거와는 달리 언젠가부터 일본 게임업계는 비슷한 기법과 형태를 지닌 게임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 개발사들의 지향점 역시 전세계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대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세계 시장이 아닌 내수 시장만을 노리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그나마 이런 일본 게임업계가 버티고 있던 근간은 여전히 진취적이고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는 몇몇 업체들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업체들 마저 최근에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일본 게임업계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게이머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일본 게임업계의 문제로는 무분별한 DLC(Download Content) 판매를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으로만 즐길 수 있던 비디오게임에 네트워크 기능이 장착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플레이가 활성화되자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플랫폼 홀더들은 자신들의 비디오게임 시장에 독자적인 온라인 마켓을 구축하기 이르렀다.

DLC는 이러한 환경에 발맞춰 등장한 새로운 콘텐츠였다. 업데이트나 패치를 사실상 할 수 없던 과거와는 달리 온라인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이를 이용해 게임에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DLC는 게이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환영 분위기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몇몇 개발사들, 특히 일본 게임업체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분별하게 DLC를 출시하며 오히려 게이머들에게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게임 업체들은 게임의 배경음악, 숨겨진 캐릭터, 캐릭터 색상 등 과거에는 게임의 숨겨진 요소로 포함시켰을 콘텐츠를 별도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게임 디스크에 이미 데이터가 담겨 있음에도, 인위적으로 이를 숨겨두고 돈을 내는 이들에게만 해당 요소를 열어주는 소위 ULC(Unlock Content)까지 성행하자 게이머들의 반발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100% 완성도를 갖춘 게임에 10%, 20%의 추가적인 재미를 부여하는 것이 DLC의 본래 목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일부 업체는 80%의 완성도를 갖춘 게임을 DLC를 통해 100%의 완성도를 갖춘 게임으로 탈바꿈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들 업체는 DLC를 구매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길 수 없는 미완성작을 판매한 셈이다.

DLC에 얽힌 일화는 대단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문제가 된 게임을 꼽자면 캡콤에서 개발한 대전액션 게임 ‘스트리트파이터 X 철권’(스트리트파이터 크로스 철권 / 이하 스크철)을 꼽을 수 있다.

스트리트파이터X철권
스트리트파이터X철권

캡콤은 무려 12명에 달하는 추가 캐릭터는 물론, 각 캐릭터의 복장, 단축입력으로 복잡한 콤보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프리셋 콤보 시스템, 리플레이 애널라이저 등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DLC로 발표했다가 게이머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뒤늦게 프리셋 콤보 시스템과 리플레이 애널라이저 등의 시스템은 무료로 배포한다고 캡콤은 밝혔으나 이미 게이머들의 심사는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황이었다.

“시장 반응이 영 좋지 않으니 뒤늦게 이들 시스템을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아니냐”라며, “프리셋 콤보 시스템이나 리플레이 애널라이저는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애초에 유료로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들 시스템을 공개한 채로 발매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반응이다.

갈라파고스 현상이 심해진 일본 게임 개발사 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기술적으로 앞선 기업이라 칭찬받던 캡콤이 이번 DLC 사태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된 셈이다.

DLC 정책 이외에도 이렇다 할 신작 없이 지속적으로 시리즈의 후속작 혹은 기존 인기작의 리메이크에만 목메는 일본 업체들의 풍토도 일본 게임시장의 경쟁력을 퇴보시키는 행위로 지적된다.

사실 기존 인기작의 리메이크는 게임의 팬들에게는 보너스와 다름 없는 소식 하나이다. 과거에 즐겼던 게임을 현 세대에 맞는 그래픽과 사운드로 다시 한 번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게임이 발매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리메이크 작품이 등장해야 보너스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신작 개발에는 집중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개발이 쉬운 리메이크 작품만 출시하는 것은 게이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수익 사업에만 혈안이 된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다.

물론 신작 게임에 버금갈 정도의 완성도와 원작을 뛰어넘는 부가 요소를 지니고 있는 리메이크 작품들은 게이머들에게 큰 환영을 받는다. 게이머들 역시 이러한 리메이크 작품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는 리메이크 작품들의 수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나 기존 게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해상도와 사운드만 최근 추세에 맞게 개선하는 이른바 ‘HD 리메이크’ 게임에서 이러한 문제가 드러난다.

기존 480i 해상도를 1080p 혹은 720p 해상도에 맞춰 새롭게 출시하는 HD 리메이크 작품들은 기존에 비해 깔끔해진 화면을 제공한다는 점 이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을 어필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들은 다양한 작품을 한 장의 디스크에 담거나, 기존에 존재했던 버그를 수정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 힘을 써 보다 매끄러운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리메이크 작품을 개발한다.

어찌보면 HD 리메이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팬서비스 작품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공들여 개발하지 않은 HD 리메이크 작품은 팬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PS2 시절의 인기 액션게임 데빌메이크라이 시리즈의 HD 리메이크 작품인 데빌메이크라이 HD 컬렉션이 이러한 예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작품의 재미야 원작을 통해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게임 곳곳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HD 해상도로 진행되지만,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나타나는 메뉴 화면은 480i, 4:3 해상도로 그려지는 PS2 시절의 그것이 그대로 나타나며, 폴리곤과 폴리곤이 겹치는 그래픽 버그가 전혀 수정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벤트 동영상 역시 화질이 과거의 수준으로 그려지며, 사운드 역시 중간중간 찢어지는 소리가 나 이 작품의 발매를 손꼽아 기다렸던 게이머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일본 게임 시장이 지속적인 불황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각 게임업체가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DLC나 HD 리메이크 작품의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 사업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기 어려운 수준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매할 경우에는 오히려 게이머들이 해당 업체로부터 아예 등을 돌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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