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본능과 함께 하는 광란의 질주. 트위스티드 메탈
트위스티드 메탈이란?
트위스티드 메탈은 Eat Sleep Play가 제작하고 SCEK에서 정식 발매한 PS3 전용 액션 게임이다. 본 게임은 1995년에 PS와
PC로 발매된 초대 트위스티드 메탈을 비롯하여 스핀오프 작품을 제외하고 8개 시리즈 총 1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게임으로, 3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독특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스토리 모드와 오프라인으로 최대 4명, 온라인으로는 최대 16명까지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
기능 등이 탑재됐다.
찰진 한글화의 쫄깃한 맛
지난 3월 23일 국내에도 정식 발매된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모든 텍스트가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맛깔 나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타이틀 메뉴부터 설정, 팁, 튜토리얼 뿐만 아니라, 스토리 모드의 미션과 미션 사이에 삽입되어 정신 나간 주인공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게 되었는지(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세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CG 무비의 자막들까지 철저하게, 아주 집요하게 한글화
되어있다.
최근 정식 발매되는 게임들이 한글화를 아예 포기하고 몇 페이지 안 되는 매뉴얼만 간단하게 번역하거나, 게임 진행상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핵심 줄기 중에서도 가장 엑기스 부분만을 정리한 대사집을 동봉하는 것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비록 자막뿐이지만 시선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의 모든 표현까지 빠뜨리지 않고 한글화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파괴, 혼돈, 망ㄱ…
다행히 본 게임은 단순히 한글화된 게임이라는 의의를 갖는 선에서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1080p를 지원하는 고해상도 그래픽과 적절한 광원과
수중 효과, 그리고 적절한 블러 효과 등은 저예산 단기간에 만들어진 파괴지향적 B급 게임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이 게임에
제공한다. 그 때문인지 속도감 있고 화면 흔들림이 심한 게임에서 쉽게 느껴지는 3D 멀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를 뛰어넘는 화려하고 정교한 배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사실은 통짜 사각형 프레임 덩어리에 그럴 듯한 텍스처를 입힌 것이 전부였던 모 3인 1조 MMORPG 등과 달리, 트위스티드 메탈은 건물 내부도 제법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대형 마트 안에는 각종 상품이 진열대 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박물관에는 무심한 관람객들 사이에서 각종 역사적 유물들이 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열심히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다. 지하도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실은 지하철이 어두컴컴한 터널을 왕복하며, 한밤중의 오피스 빌딩에는 주인 잃은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정교하게 묘사된 이 모든 내부 장식물들은, 그러나 단순한 장식물로만 남지 않는다. 파괴되기 때문이다. 때려부술 수 있는 것이다. 마음껏, 원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유린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이름 모를 가족이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을 거리의 작은 주택도 박치기 한 방에 박살낼 수 있다. 게이머들이 트위스티드 메탈을 통해 일상에서 익숙한 대상을 때려부수면서 범죄적인 상쾌함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이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게이머들은 그저 폭탄침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트랜스포머가 하늘을 나는 황당무계한 잔혹액션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쉽고 단순한 조작 역시 이런 범죄적인 상쾌함에 한몫 거들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데 필요한 모든 동작을 친절한 우리말 설명과 함께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주는 튜토리얼 모드를 한 번만 플레이 하면, 막힌 부분을 진행하기 위해 일일이 매뉴얼을 읽거나 여러 가지 조작을 조합해 남을 이기기 위한 자신만의 컨트롤을 연습할 필요가 없어진다. 영원히.
실제 게임은 더 단순하다. 말마따나 달릴 줄 알고, 부스터 쓸 타이밍을 고를 줄 알고, 드리프트 돌 줄 알며, 맵 곳곳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주워먹고 이걸로 나 때린 놈 끝까지 쫓아가서 총알 한 방 날려줄 근성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브레이크는 있지만 없다고 생각하라. 멈출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멈추면 곧 십자포화에 노출돼 그대로 지옥행 특급열차에 올라타게 된다. 제작사 이름에서 오는 단순함처럼, 먹고, 달리고, 쏘면 되는 심플함이 게임의 상쾌함을 더해준다.
사용자 지정 게임의 경우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정도이며, 갓 온라인 멀티 플레이에 입성한 초보자들을 노리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세계 각국의 고수들과 온라인 대전을 벌이는 경우라면 대개 5~6분 전후로 게임이 끝난다. 10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쏘다 보면 10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기 때문이다. 적 AI가 유난히 공격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맹공을 견뎌가며 미사일, 로켓, 각종 특수 무기를 이용해 적들을 물리치다 보면 여자친구가 모니터 속에서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쓸쓸하게 혼자 게임을 플레이 하는 처지라고 해도 그다지 심심하지는 않다.
이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8개의 맵을 이용할 수 있다. 빙판 길을 신나게 미끄러지면서 모든 솔로들의 적이자 크리스마스 상법의 최대 고객인 커플들을 들이받을 수 있는 눈 내리는 도심 맵부터, 순간의 실수로 계곡 밑 천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는 구불구불한 계곡 도로, 다양한 살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전용 경기장에, 마천루 옥상을 넘나들며 달밤에 사투를 벌이는 LA 상공 지역까지 선택의 기회는 다양하다. 각 맵은 여러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플레이 범위 설정을 통해 맵의 일부 지역만 골라 플레이 할 수 있다. 같은 맵이라도 다양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셈이다.
스토리 모드를 제외한 오프라인 싱글 미션은 사실상 모든 적들이 나만 공격하는 불공평한 데스매치 룰을 설정만 바꿔서 '무한 증원되는 적과 최대한 오래 1대 1로 싸우는' 게임이나 '무한 증원되는 적들과 최대한 오래 1대 다수로 싸우는' 게임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플레이 하다 보면 쉽게 지루해질 수 있다. 이럴 때 최대 16명과 싸울 수 있는 온라인 멀티 플레이는 게임의 수명을 늘려주는 특효약이 된다. 기본 규칙은 오프라인 때와 같지만 상대가 사람이기에 더욱 긴장감 넘치는 데스매치, 표적을 사냥하려는 자와 도망치려는 자 사이에 엎치락뒤치락 점수 경쟁이 벌어지는 사냥 모드, 상대를 붙잡아 잔인하지만 통쾌한 최후의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핵폭탄 모드 등 마치 PC방 전원을 내렸을 때 관찰할 수 있음직한 폭력성과 광기 넘치는 각종 모드가 트위스티드 메탈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해준다.
American's 신경쇠약
해외 유명 게임 웹진인 IGN에서 10점 만점에 9점의 리뷰 점수를 준, 게임의 '즐긴다'는 속성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이 게임에도 그러나
단점은 있다. 몇몇 사소한 요소들로 인해 스토리 모드가 후반전으로 갈수록 계단 모양 그래프를 그리며 급격하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트위스티드 메탈의 스토리 모드는 사용자 설정 게임과 달리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을 괴롭히는 다양한 제약 요소가 추가된다. 일정 시간 동안 전기 철책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체력이 줄어들거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특수 차량이 일정 시간마다 맵에 적을 투입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언뜻 보면 게임을 더욱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는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 마치 사기도박이라도 하듯 게이머가 운전하는 차량만 집중 공격하는 AI의 특성이 버무려지면 쉽고 다루기 편했던 사용자 설정 게임의 상쾌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짜증만이 남게 된다.
좁은 도로에서 12명이 목숨을 건 경주를 펼치는 디아블로 협곡을 예로 들어보자. 이 미션은 좁은 협곡 도로 끝에 있는 고스트 타운의 터닝 포인트에서 차량에 설치된 폭탄을 가동시킨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폭파 발판을 먼저 누르는 사람이 이기는 규칙 하에 진행된다. 딱 보면 1등만 하면 되니까 쉬울 것 같지만, 협곡이라는 이름답게 도로 난간 바로 옆으로 떨어지면 150 가까운 낙하 대미지를 입는 천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모든 AI가 게이머만을 공격하는 1대 11의 불리한 싸움을 펼쳐야 한다. 1위의 적 AI 차량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차량 중에 가장 속도가 빠른데, 이걸 최대 속도로 운전하면서 관성과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앞질러 나간다. 그리고 나머지 10대의 차량은 게이머가 1위를 할 수 없도록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와 특수능력을 이용해 방해공작을 펼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달리면 1위를 탈환할 수 있는데 뒤에서 자석으로 잡아당긴 뒤 협곡으로 튕겨나 버렸을 때의 황당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런 식의 경쟁 게임에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이 한통속이 되어 자기만 공격한다면 어지간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방송금지용어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모든 스토리 미션을 통틀어 AI가 다 이런 식이다. 안전지대가 마련되어 있는 맵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게이머가 안전지대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해하며,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던 중에도 게이머 차량이 지나가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기어코 피를 보려고 한다. 이런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온/오프라인 코옵 플레이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하드코어한 것을 좋아하는 북미 게이머들 입맛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액션 게임에 캐주얼 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기준에는 다소 맞지 않는다고 할까.
해도 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해도 된다. 남자라면 두 번 해라. 국내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데다 소리소문 없이 불쑥 튀어나온 감이 없지 않기에 혹시 돈만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 게임의 최대 단점인 높은 난이도의 스토리 모드는 안 내키면 그냥 안 해버리면
그만이다. 스토리 모드를 플레이 하지 않는다고 온/오프라인 상에서의 멀티 플레이나 사용자 지정 게임에 악영향이 가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는 차량도 일부 있지만, 트위스티드 메탈의 상쾌함을 느끼는데 이러한 히든 차량이 필수요소인 것은 아니다.
정교한 그래픽과 1080p를 지원하는 해상도, 그리고 마음껏 때려부수는 데 따른 상쾌함과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단순한 조작감은, 복잡하고 할 것 많은 콘솔/온라인 게임의 물결 속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필요한 만큼만 즐길 수 있는 가격 대비 최고 성능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유명하지 않아도 명작이 될 수 있다. B급 냄새는 좀 나지만, 마셔보면 진국이다. 자비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격파한 차량에서 튀어나온 운전자와 동승자를 깔아뭉개는 잔인함과, 그 모습을 옆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을 가족 등 주변인물들의 따가운 시선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