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돌아온 미래 이야기, 신디케이트
블레이드러너라는 영화를 아는가? 지금이야 흰머리 가득한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팔팔한 젊은 모습을 자랑하던 해리슨 포드 주연의 SF영화다. 198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환경파괴, 인조인간, 국가의 몰락 등 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개봉 당시에는 너무나도 기괴한 내용 덕분에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일부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10년 후 감독판이 등장한 이후에는 SF영화의 정석으로 지금까지도 극찬을 받고 있다.
지금이야 아는 사람이 드문 고전인 신디케이트는 영화 블레이드 런너를 생각나게 만드는 게임이다. 1992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디케이트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진 미래에 거대 기업들 간의 전투를 그린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게이머는 기업에서 고용한 용병이 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상대 기업을 무너뜨려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 만큼이나 열성팬이 많은 편이다.
이런 신디케이트의 후속작이 20년의 공백을 넘어 발표됐다. 원래 개발사였던 블프로그가 사라지면서 더 크로니클 오브 리딕의 개발을 맡았던 스타브리즈 스튜디오가 개발을 맡았으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장르가 바뀌었다. 시뮬레이션에서 FPS로.
신디케이트 만의 독특한 해킹 시스템
이번에 출시된 신디케이트는 전작의 배경을 그대로 담아 2069년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대 기업들, 즉 신디케이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미래시대, 사람들은 DART라 불리는 신경칩을 이식하고 신디케이트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신디케이트는 자신들의 사업 확장과 다른 신디케이트들의 영역을 빼앗아 오기 위해 개인 사병과 요원들을 운영하여 보이지 않은 암투를 벌인다. 주인공인 마일스 킬로는 Euro Corp라 불리는 신디케이트에 고용된 요원으로 새로운 신경칩을 이식하여 다른 신경칩을 제어하고 해킹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고 이 능력을 이용하여 미션을 수행해 나가게 된다.
신디케이트는 전작을 알지 못하는 게이머도 자연스럽게 게임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독특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신디케이트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신경칩을 이용한 액션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신경칩을 착용한 주인공은 주변 사물 모든 것을 해킹할 수 있으며, 해킹을 통해 손을 대지 않고 문을 열거나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등의 액션을 펼칠 수 있다. 해킹은 게임을 진행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적의 타워를 아군의 편으로 만들어 공격할 수 있고 비행기나 탈것에 장착 되어있는 상대방 무기의 기능을 정지 시킬 수도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 속에서 활용된다.
특히, 적의 신경칩을 폭파시켜 주변에 대미지를 입히는 Suicide, 적의 무기를 해킹하여 폭파시켜 적을 기절상태로 만드는 Backfire, 적의 신경칩을 해킹하여 아군과 적군의 구별을 못하게 되어 마지막 적이 쓰러질 때까지 공격하여 스스로 자살하도록 만드는 Persuade 등의 해킹 액션은 단순히 쏘고 피하는 것만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적을 공략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다른 액션인 Dart Overlay는 기능을 발동함과 동시에 시간이 느려지는 타임 슬로우와 주변의 사물을 모두 투명화 시켜 적이나 아이템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어 많은 적들을 한번에 상대할 때 매우 유용하며 벽 뒤쪽에 있는 적도 해킹이 가능 하도록 만들어 준다.
또한 스토리를 진행 하면서 상대하게 되는 다른 신디케이트 주요 인물의 신경칩을 이식하여 더욱 다양한 능력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얻은 능력을 포인트로 올릴 수 있어, 마치 RPG게임의 스킬처럼 투자 하여 자신에게 맞는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신경칩을 이용한 액션은 게임의 진행을 돕는 것 이상으로 게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다만, 게임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즐거움이 지겨움으로 바뀌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해킹을 이용하여 적을 상대하는 액션은 좋으나 너무 해킹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져 오히려 단순히 총을 쏘고 싶은데도 해킹으로만 게임을 풀어나가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게임중반 등장하는 적 병사의 실드는 일반 공격이 안통하며, 해킹으로 해제를 해야만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챕터마다 계속 반복되다보니 게임의 후반부에 가서는 단순한 총싸움 보다 해킹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일이 벌어져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뛰어난 디테일과 광원효과
신디케이트는 해킹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1인칭 FPS 게임이다. FPS 게임은 총기의 타격감과 효과가 게임에서 매우 민감하게 인식되는데 신디케이트는 이를 훌륭히 재현했다. 총을 발사하고 총구에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규칙 적으로 떨어지는 탄피를 보고 있노라면 현존하는 총기가 아닌 미래세계에 등장하는 총기류 임에도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듯이 느껴진다.
총의 종류도 다양하여 단순한 권총과 단총부터, 상대방을 체크하여 날아가는 유도 기관총, 순식간에 적을 지워버리는 레이저건까지, 현재 존재하는 무기와 미래에 등장하는 가상무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등장 시켰다. 총기의 소리구현도 매우 뛰어나 총기를 발사 하는 소리, 탄피가 떨어지는 소리, 자신의 총탄이 벽에 튕기는 소리를 들으면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사실적인 미래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신디케이트의 뛰어난 그래픽 덕분이다.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은 배경의 구현이 밋밋하거나 같은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신디케이트는 이를 뛰어난 광원효과로 해결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배경의 빛과 어둠의 차이가 뚜렷하여 몽환적인 세계에 온 것 같은 그래픽은 게임의 몰입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하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 뛰어난 광원효과가 아이러니 하게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신디케이트의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신디케이트의 그래픽에 가장 큰 특징인 빛과 어둠의 뚜렸한 광원효과가 너무 크게 강조되어 눈부심이 매우 심하다. 실내에서 진행되는 전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외에서 진행되는 전투는 빛의 눈부심이 너무 심하여 앞을 보지 못할 정도다. 심지어 게임에 등장하는 자판기의 불빛도 너무 밝아 화면을 비출 수 없는 정도이며 사이즈가 큰 모니터 일수록 눈부심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치밀한 스토리와 멀티플레이 하지만...
신디케이트는 자유도를 보장하는 오픈월드 방식이 아닌 일자진행 방식으로 미션을 수행하면 한 챕터가 끝나고 다시 게임을 진행하는 식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게임이 후반부에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플레이 시간이 짧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라인과 해킹 등 개성이 강한 시스템들은 장점이 매우 뚜렷하지만, 그 매력을 충분히 즐길만큼의 플레이 타임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멀티 플레이다. 신디케이트의 멀티플레이는 대전 플레이 방식이 아닌 게이머들의 협동모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10개의 미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개의 미션을 완료 할 때 마다 자신의 무기와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전부다. 매번 다른 게이머들과 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개발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싱글 플레이의 아쉬움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디케이트의 가장 큰 매력은 방대한 세계관이고, 그것의 핵심은 스토리인 만큼 타 FPS 게임처럼 반복 플레이가 주는 재미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디케이트는 기대감에서 출발해 반가움, 신선함, 아쉬움으로 끝나는 게임이다. 멋진 세계관을 최신 기술로 되살린 그래픽과 장르를 변경하고, 멀티 플레이 요소를 도입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게임이지만, 20년 전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모자라다. 사실 열성팬들의 기대치가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눈높이보다 훨씬 더 높긴 하지만, 새롭게 부활한 신디케이트는 일반적인 기준을 놓고 봤을 때도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때는 참신했지만 지금은 구닥다리가 된 시스템 그대로에 그래픽만 업그레이드해서 추억팔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도전정신은 인정할만 하지만, 의욕에 비해서는 준비가 많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