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성공, 혁신 보다 익숙함에서 길(道) 찾아라
과거 애플의 대표를 역임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는 변화와 혁신의 이노베이션을 강조했다.
그 영향으로 IT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가 강조한 변화와 혁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혁신이 아니었다. 그는 생전에 인터뷰를 통해 주변의 장점들을 모방하고 효과적으로 통합해야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되 기존 사용자들의 경험을 중시하라는 메시지였다.
게임 산업도 IT산업의 중심에서 변화와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보다 많은 것과 새로운 것을 원하며, 개발사들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변화와 혁신으로 똘똘 뭉친 것이 아닌 사용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움을 전달하는 것들이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를 제치고 최고 인기게임에 등극한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은 동양적인 미를 강조한 판타지 MMORPG다. 게임이 발매되기 전 김택진 대표는 자사의 블레이드앤소울에 대해 '어릴적 꿈꾸던 무림 영웅들의 세계를 엔씨소프트의 색으로 제작해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10년 이상 MMORPG를 개발해 온 노하우에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그래픽으로 무협의 새로움을 재창조한 것이다.
그 도전은 소비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있던 디아블로3를 제치고 단숨에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아직 상용화 이후 성적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안정적인 서버와 충분한 콘텐츠가 확보된 만큼 디아블로3와의 장기 집권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블레이드앤소울에게 최고 자리는 내주었지만 디아블로3도 12년 만에 후속작이 발매되며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디아블로3 역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기며 발매되었지만 기존의 익숙함을 베이스로 가진 채 새로운 재미를 더했다.
빠르고 역동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은 기본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최신작에 걸맞게 사실적인 물리엔진과 디테일하게 연출되는 그래픽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전작의 큰 인기가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전작의 재미를 그대로 살린 채 새로움을 더한 것이 흥행의 이유로 손꼽힌다.
꾸준한 인기와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는 워크래프트3의 모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사용자들의 익숙함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여기에 다양한 영웅들을 등장시켜 전투의 재미를 강조하고 게임의 밸런스를 잡아나가며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몇 년간 시장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온, 월드오브워크래트, 테라 등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MMORPG는 원작을 가지고 있거나 기존 게임성에 새로움을 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온은 기존 월드를 하늘로 확장해 게임 속 전장을 넓히는 역할을 했고, 테라는 논타게팅 전투로 MMORPG의 전투의 한계성을 넘어섰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기존 MMORPG들의 장점을 결합해 최고의 게임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하반기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는 ‘커뮤니티’와 ‘호흡’을 강조하고 있다. 테라와 블레이드앤소울과 같이 빠르고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용자들 간의 커뮤니티를 강조해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함이다.
이처럼 대작 혹은 성공작으로 가는 게임들은 기존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추구하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다. 너무 변화와 혁신만을 추구해 새로운 시스템을 강조하다보면 서비스 초기 관심을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인기와 관심이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게임 전문가는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게 되면 게임의 베이스 보다 새로움을 강조해 노출되기 마련이지만, 그 근간에는 기존 사용자들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 기반은 안정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게임성으로, 기반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무장해도 결국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라고 이야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