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G의 정석 매직더개더링, 좀 더 대중에게 가까워지다
이 세상의 게임은 디지털 게임이 전부가 아니다. 디지털 게임을 다루는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나 디지털 게임이 태어나기 전부터 게임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시간과 장소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오프라인 게임이 함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둑이나 체스, 현대에 와서 꾸준히 새로 나타나는 보드게임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게임들이 디지털과 온라인 환경의 장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게임 규격을 유지한 채 디지털과 온라인 환경의 장점만 가져오려는 시도가 꾸준하다. 매직: 더 개더링 - 플레인즈워커의 결투(Magic: The Gathering - Duels of the Planeswalkers. 이하 DotP) 시리즈 역시 그런 시도 중 하나고.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이하 MTG)이란 보드게임 제작 회사인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 이하 WoTC)와 미국의 수학자 리처드 가필드가 합심하여 1993년에 7월에 공개한 세계 최초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Trading Card Game. 이하 TCG)이다. 첫 발매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될 성 부른 떡잎을 보인 MTG는 2012년 현재에 와선 80개국 1300만 명 이상의 게이머가 즐기며 한 번의 오프라인 행사에 세계 각지에서 1500명 이상이 참가하는(2012 GP Yokohama) 세계인의 게임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에선 1990년대 후반에 처음 들어와 IMF 경제위기 여파로 1998년에 시장에서 철수했다가 2011년 코리아보드게임(이하 코보게)이 판권을 사들여 다시 판매하고 있다. 재발매 초기엔 영어 카드를 직수입했으나 현지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2011년에 발매한 기본 판본 Magic 2012를 시작으로 확장 판본 이니스트라드 블럭(이니스트라드, 어둠의 강림, 아바신의 귀환) 전체를 한글 카드로 발매했으며(1998년 국내에서 철수하기 전 발매한 확장 판본 템페스트 이후 14년 만이다) 2012년 7월 13일에 정식 발매한 기본 판본 Magic 2013도 한글 카드로 발매됐다. 이렇게 지속적인 현지화 상품을 내놓으면서 대한민국의 MTG 게이머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 MTG 현지화 작업은 오프라인 카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MTG의 디지털 게임 중 하나인 매직: 더 개더링 - 플레인즈워커의 결투 2013(이하 DotP2013)가 현지화 작업을 거쳐 등장한 것이다. DotP 시리즈는 1993년 첫 공개 이후 지금까지 발매한 MTG 카드들 중 일부를 추려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최대한 동등한 조건하에 게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디지털 게임으로서 DotP2013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최신작이다. MTG가 시작부터 급속도로 대성했듯이 2009년 Xbox360(XBLA)로 시작한 DotP 시리즈도 DotP2013에 이르러선 PC, Xbox360, PS3, 아이패드까지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 게임으로 급성장했다. 이것은 DotP 시리즈가 MTG의 입문서로서 뛰어난 동시에 오프라인 MTG의 특색을 최대한 살려내 여러 MTG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은 덕분이다.
전장에 들어올 때 매직 더 거덜링이란 악명을 추방한다
세계 최초의 TCG이자 대명사인 MTG이지만, 유명세만큼이나 제약이 많다. 게임을 하려면 최소 60장을 사용하는 하나의 서고(이하 덱)을 준비해야 하는데 '덱 완성에 필요한 카드 수집=돈'이란 공식부터 시간과 장소 확보를 위한 투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규칙과 노하우 습득에 이르기까지 투자비용이 엄청난 게임으로 명성이 자자할 정도. 그래서 함께 MTG 입문의 길을 걸어갈 동지들과 자주 MTG 게임을 즐길 인프라가 주변에 없다면 입문 과정이 매우 고달프다. 오죽하면 기껏 MTG에 돈을 썼다가 (적극적인 신규 게이머 유치와 별개로)자비심 없는 기존 게이머들에게 카드와 실력 차이로 눌리고 규칙 적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태도에 압도당하여 지갑도 마음도 거덜 난 사람들이 MTG에 붙인 별명이 매직: 더 거덜링. 그러나 DotP2013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DotP2013의 가장 큰 자랑은 디지털이라 가능한 자동화 시스템이다. 칼 같은 규칙 적용, 알아서 한 눈에 보여주는 게임 진행,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카드 능력의 해설들은 오프라인 MTG보다 훨씬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잔뼈 굵은 MTG 프로게이머들조차 수작업으로 게임을 하다 이따금 "저지!"를 불러 규칙 적용을 물어보는 마당에 시스템이 알아서 게임을 진행한다는 건 기존 MTG 게이머들에게 큰 장점이오, 초보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물론 게임 중에 사용 카드를 고를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미리 계산하는 건 게이머의 몫이다). 나아가 이 장점은 DotP2013의 또 다른 특징인 카드 제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MTG에서 사용하는 카드들은 특징이 뚜렷한 다섯 가지(흑, 백, 적, 청, 녹)의 마나 색깔 중 일부를 부여 받아 그 특징에 맞는 능력을 발휘한다. MTG 구조상 저 다섯 색깔을 전부 다루기란 매우 어려운데다 노리는 바가 명확한 덱일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위해 하나 또는 두 가지의 색깔에 맞춰 덱을 구성하는 편. 마찬가지로 Dotp2013에선 처음부터 쓸 수 있는 적색 덱과 녹색 덱을 포함해 단색 혹은 2색을 사용한 열 가지 덱이 등장한다. 그리고 하나의 덱은 기본 카드 60장(대지 포함)과 캠페인이나 멀티플레이 승리로 해금하는 30장의 카드만으로 구성해야 한다. 카드 조합에 제한을 둬서 덱 작성의 자유도를 낮춘 이 조치에 실망한 게이머들이 여럿 있으나 모든 게이머가 최대한 공평하게 게임을 즐기고자하는 DotP2013에겐 알맞은 제한이다. 하나의 덱마다 마나 색깔에 맞춰 목적이 명확한 카드들끼리 묶여있으니 덱 편성이 쉬워졌고 초보자들은 '왜 이 카드들이 이 덱이 들어있나'를 생각하면서 덱 작성 요령까지 배우니 1석2조, 사용 카드들이 정해져있으니 카드 능력에 따라 규칙 적용이나 이해가 복잡해지는 문제를 해결하니 1석 3조인 셈이다.
이처럼 기존 MTG의 진입 장벽들을 무너뜨린 덕분에 DotP2013는 오프라인 대전보다 더 다양한 게임 모드를 선보일 수 있었다. 2:2 팀플레이를 벌이는 쌍두거인전, 여러 게이머가 생존게임을 벌이는 난타전, 여러 차원 효과에 따라 전황이 바뀌는 Planechase 모두 오프라인에선 규칙 적용이나 준비 때문에 엄두를 내기 힘든 게임 모드이지만, DotP2013에선 언제든지 즐길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춰 1:1 대전에 지친 게이머들에게 손짓한다. 물론 MTG 대전의 메인인 1:1 대전 환경도 완벽하다. 음성 채팅과 카메라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오프라인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여기에 시스템 옵션에서 힌트를 볼 수 있게 하거나 데이터를 불러올 때마다 간단한 팁을 보여주는 등 지속적인 서포트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DotP2013의 백미이자 끝판왕인 캠페인의 도전 모드다. 도전 모드는 주어진 상황과 카드만으로(DotP2013에 등장하지 않는 카드들도 나온다) 주어진 목표에 도달하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카드 능력 이해, 서고 순서, 상대의 카드 파악, 카드 사용에 따른 응용력 등 MTG를 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딱 목표에 도달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 DotP2013으로 MTG에 적응 좀 했다거나 실력이 생겼다고 자신하는 게이머들에게 최종 관문에 해당한다. 답에 도달하기 전까지 온갖 수를 사용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이윽고 손에 닿아 마법(Magic)처럼 풀릴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지단 시작에 플레이어는 적응 카운터 하나를 얻는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도 정작 실전에서 활약하지 못 하면 소용없는 법. DotP2013가 기존 MTG의 단점들을 극복한 것과 별개로 결국 MTG 자체를 얼마나 재미있게, 정확하게, 공평하게 재현하느냐에 따라 DotP2013의 가치가 달라진다. 우선 대전 중심의 게임인 만큼 밸런스가 중요한데 게이머가 사용할 열 가지 덱들의 파워 밸런스는 균형이 잘 맞는다. 상성과 운에 따라 강세와 약세가 분명하게 보여서 그렇지 각 덱에 다른 덱을 견제 할 수단과 판세를 뒤엎을 카드들이 꼭 들어있고 해금 카드들이 덱 컨셉을 유지하는 범위 하에 여러 전략을 보장한다. 그래서 덱 밸런스 문제로 재미가 떨어질 일은 없다.
다만 소수의 덱을 제외하고 대지 카드를 게이머가 임의로 조절할 수 없는 건 매우 아쉽다. DotP2013에선 최소 60장일 때 들어가는 대지 카드가 정해져있고 덱의 총 수량에 따라 대지 카드가 늘어난다. 이 대지 카드가 만드는 마나가 주문 발동에 필요한 자원이고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덱에 넣는 카드에 따라 대지 카드의 선택과 수량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그래서 시시각각 시세 변동이 심한 MTG 카드들 가운데 유독 효율 좋은 대지 카드들이나 마나 생성 카드들이 믿음과 신뢰의 시세를 자랑한다. 믿고 쓰는 부동산). 한편으론 무작위로 섞인 덱에서 원하는 카드가 최대한 높은 확률로 나오도록 최소 수량인 60장에 가깝게 필요한 카드만 넣는 덱 구성이 중요한데 대지를 늘리자니 억지로 안 쓸 카드를 넣어야하고 원하는 카드만 넣자니 정해진 대지 수량을 고려해야 하므로 불필요한 제한이 생기는 딜레마에 빠진다. 덱을 만들면서 가장 달갑지 않은 제한이라 오프라인 MTG와 차별화를 꼭 이렇게 했나 야속할 정도.
이 문제가 다른 덱보다 대지 카드 확보가 쉬운 녹색 덱을 강세로 만들곤 하는데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대지 확보가 쉬울 뿐 밸런스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AI의 서고 섞기 장난질과 모든 MTG 게이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0랜드, 1랜드, 2랜드 스톱(어떤 덱이든 대지 카드 0~2개로 게임을 하려면 매우 고단하다)은 모든 게이머에게 공평하다.
DotP2013의 시스템을 살펴보면 진행 속도 조절이 자유롭고 숫자 계산을 한꺼번에 하는 오프라인 MTG과 달리 카드의 능력이나 규칙 적용을 차례대로 하나씩 해결해 속도감이 떨어져서 그렇지 앞서 설명한 서고 장난질을 포함하여 MTG 대전 양상을 아주 정확하게 재현했다. 언탭단 시작부터 정화단 종료에 이르기까지 턴의 진행 순서, 유형과 단계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는 카드 사용의 묘미, 물고 물리는 상성 관계 등 오프라인 MTG의 그 플레이 양상과 판박이다. 더불어 한 눈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수치, 통계 분석 제공 역시 게이머에게 큰 도움을 준다. 필요 마나에 따른 카드 분포도, 게이머의 마나 색깔 선호도, 온라인 랭킹 등 오프라인에선 정리하기 귀찮은 정보의 제공과 쉽사리 오류가 벌어지는 수치 계산의 정확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오프라인에서 MTG를 즐기는 게이머일수록 공감할 터.
같은 카드를 쓰는 게임이란 전제하에 오프라인 MTG보다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DotP2013에게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즉, 사용 카드의 제한만 아니라면 DotP2013가 오프라인 MTG보다 못날 구석이 없단 이야기(일부 카드의 설명, 수치 오류나 토큰 100개 제한 등 오프라인 MTG와 다른 건 옥의 티).
종료단 시작에 플레이어는 적응 카운터 개수만큼 카드를 뽑는다
DotP2013은 MTG를 재현한 게임으로나 MTG 자체를 즐기는 게임으로나 추천하기에 손색이 없다. 비록 MTG와 궁합이 안 맞는 게이머에겐 DotP2013는 지독하게 재미없는 게임에서 벗어나질 못 하겠지만, MTG를 위한, MTG에 의한, MTG 게임인 DotP2013에게 모든 게이머가 만족하기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DotP2013를 지원하는 모든 기기에 체험판을 같이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장르 자체와 궁합이 안 맞는 경우를 게임 탓으로 돌려봤자 무엇이 남겠는가.
반대로 DotP2013으로 MTG의 재미를 알아버린 게이머라면 더 많은 카드들과 새로운 환경이 기다리는 오프라인 MTG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험이 곧 실력으로 이어지는 MTG 세계에서 DotP2013의 완성도는 어떤 MTG 게이머에게나 유익하고 재미있는 게임이며 반복 플레이로 MTG의 저변을 더 넓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DotP2013가 선사하는 MTG의 재미와 가능성은 오프라인 MTG와 빼닮은 동시에 감질 난다. 오프라인 게임인 MTG를 디지털 게임인 DotP2013로 재현해 다시 오프라인 MTG로 게이머들을 이끄는 이 상호작용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과연 MTG의 재미에 빠지게 된 뒤에도 DotP2013만으로 만족할 게이머가 얼마나 있을지 내심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