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PC게임에서 온라인까지, ‘피파 시리즈 변천사’ 놀랍네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이하 EA)의 축구게임 ‘피파’는 게임 역사상 가장 큰 인기를 끈 축구게임 시리즈다. 1993년 말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은 십수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출시되며 코나미의 ‘위닝일레븐’ 시리즈와 함께 축구게임 계를 대표하는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재미있는 점은 언젠가부터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못 하고 있는 ‘위닝일레븐’ 시리즈와는 달리 ‘피파’ 시리즈는 몇 년을 주기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축구게임이라 하면 피파 시리즈와 위닝일레븐 시리즈 밖에 떠오르는 작품이 없지만, 피파 시리즈의 첫 작품인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 흔히들 피파 94라 칭하는 이 작품이 PC게임 시장에 처음 등장한 이후 몇 년간 시장에는 다양한 축구게임이 존재했다.
당시는 센서블 사커, 매치데이 사커, 킥 오프 등의 2D 축구게임은 물론 3D 그래픽을 활용한 액추얼 사커 같은 게임이 피파와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러한 와중에 피파가 관심을 끈 것은 지금도 피파 시리즈의 최대 강점 중 하나로 꼽히는 강력한 라이선스 확보와 사실적인 움직임이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는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다양하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게이머들에게 선보이며 그 존재감을 뽐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그 당시, 이 게임을 ‘카피’하기 위해 3.5인치 디스켓 세 장을 들고 다니며 게임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제발 복사 좀 해줘”라며 로비 아닌 로비를 한 청소년이 많았을 정도로 이 게임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첫 시리즈의 성공 이후 EA는 자사의 스포츠게임을 매년 출시한다는 정책을 발표하고 CD로 게임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피파95와 96을 거쳐 1997년에는 시리즈 최초로 3D 그래픽을 도입한 피파97이 출시되기에 이른다.
피파97은 3D 그래픽이 활용됐다는 것과 간략하게나마 전술 시스템이 더해진 작품. 이 작품은 게임이 지닌 재미와 판매량보다 축구게임 시장을 뒤흔들어 놓게 될 후속작의 근간이 됐다는 것에 큰 의의를 지닌다.
피파97에서는 다소 엉성하게 그려졌던 3D 그래픽은 후속작부터 당시의 부두, 리바TNT 등의 그래픽 카드를 지원하며 좀 더 강력한 퍼포먼스를 내기 시작했으며, 포메이션에 따른 경기 양상 변화도 이 작품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피파97의 게임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작품인 ‘피파98: 로드 투 월드컵’은 월드컵 지역예선 열기와 맞물려 국내 게임시장은 물론 전세계 게임시장을 완전히 뒤흔들어 놨다.
피파98: 로드 투 월드컵은 월드컵 지역예선을 소재로 각 대륙의 국가들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것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각 나라의 선수들은 물론 경기장 데이터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민성 선수의 극적인 역전골로 깊은 인상을 남긴 한일전 ‘도쿄대첩’ 이후 축구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한 국내의 축구열기 덕분에 이 작품도 화제의 중심에 섰으며, 피파98: 로드 투 월드컵의 형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월드컵98’ 역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월드컵98은 월드컵 본선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나름의 사실적인 데이터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각종 스포츠신문이나 공중파 뉴스에서도 이 게임을 이용해 한국의 월드컵 성적을 점쳐보는 류의 콘텐츠를 제작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이 작품이 얻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큰 인기를 얻은 것 이외에도 이 작품은 이후 한 동안 피파 시리즈의 정체성이 된 ‘핸드볼 축구’의 시류가 됐다는 점에도 의의를 갖고 있다.
다양한 동작을 펼칠 수 있으며 시원시원한 공격 전개를 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수비 인공지능이 부실하고 특히 골키퍼의 인공지능이 매우
뒤떨어져 매 경기마다 축구가 아닌 핸드볼 경기에 버금가는 득점이 나는 피파 시리즈의 특징이 시작된 작품이 바로 피파98: 로드 투
월드컵이다.
이후 EA는 피파 시리즈를 통해 아케이드 성향이 강조된 축구게임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게 된다. 시리즈 처음으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날씨 효과를 부여한 피파99를 거쳐 피파2000과 피파2001을 통해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특히 마르세유 턴으로 수비를 제치며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 후에 헤딩을 노리는 단순한 패턴의 축구 게임이 된 것도 이 시기의 이야기다.
피파 시리즈가 꾸준히 출시되면서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여타 축구게임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통에 PC 게이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축구게임은 사실상 피파가 유일한 상황이며, 평가와는 무관하게 피파시리즈의 판매량은 꾸준히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시장 상황 때문인지 이후의 피파 시리즈는 몇 년간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게임성을 선보이며 게이머들에게 비판을 받게 됐다. 불꽃슛이 날아가는 비현실적인 게임성으로 비판을 받았던 월드컵2002 출시 이후 피파 시리즈는 계속해서 판매량과는 별개로 게이머들에게 지속적인 악평을 한 몸에 얻게 된다.
이러한 악평은 피파08에 이르러 호평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게임의 엔진을 완전히 개편하고 게임성을 일신하면서 지나친 아케이드성에 눈길을
돌렸던 게이머들이 피파 시리즈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피파 08은 새롭게 그려진 선수들의 외형은 물론, 다양한 득점 루트, 수비
인공지능의 향상, 가볍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묵직해진 선수들의 움직임을 선보이며 축구 게이머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인공지능의 활용과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이 아닌 전술적인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긴 했지만 이러한 평가는 피파09와 피파10 그리고 피파11을 거치며 점차 사라지게 됐다. 단점이 보완되고 장점이 늘어나는 덕분에 피파 시리즈는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았다. 아니 예전의 영광 그 이상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판매량은 물론 평가에서도 완전히 압도한 것이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본류라 할 수 있는 피파 시리즈의 발전에 힘입어 지난 2006년 5월, 피파 시리즈는 온라인으로 처음 등장하게 된다. 네오위즈게임즈와 EA 서울 스튜디오가 함께 개발한 축구 온라인게임 피파온라인이 그 주인공이다.
피파온라인은 당시의 최신작인 피파06과 유사한 면이 많은 작품이지만, 본작에는 없는 강력한 네트워크 기능과 2:2 대전 지원, 커리어모드 등의 콘텐츠로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한 피파06의 PC판을 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기에 그 게임성에서도 곧장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점을 인식해서인지 EA 서울 스튜디오는 후속작 개발을 서두르게 됐으며, 2007년 9월에 후속작인 피파온라인2를 서비스하기에
이르렀으며, 피파온라인2는 지난 몇 년간 국내 스포츠 온라인게임 시장을 선도하는 입지를 차지했다.
재미있는 것은 피파온라인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족한 게임성을 드러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피파온라인2가 등장한 것처럼 피파온라인2도 피파온라인이 그랬던 것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점이다.
피파 시리즈 중 가장 스피디한 게임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피파11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피파온라인 시리즈의 최신작 피파온라인3가 지난 9월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엔진의 년식 만큼이나 성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신형 엔진을 탑재한 피파온라인3의 등장은 축구게임 팬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게 됐다.
넥슨에서 오는 12월 중에 피파온라인3의 2차 비공개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피파온라인2를 서비스 중인 네오위즈게임즈는 피파온라인2의 서비스를 내년 3월까지만 진행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축구 온라인게임 시장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피파 시리즈의 게임성을 몇 년 단위로 일신해 온 EA의 정책이 축구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도 드러났다”라며, “기존 축구 게임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버린 EA가 피파온라인3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