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는 더쇼, 일본 프로야구는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3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3(이하 PS2013)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로 유명한 코나미 산하 파워프로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스포츠 게임 시리즈의 최신 작품이다. 본 시리즈는 스토리 모드를 중심으로 데포르메된 선수들을 조종해 만화 같은 분위기의 경기를 진행하는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와 달리 실사 풍 그래픽과 실제 경기 중심의 진행 방식을 주요 콘텐츠로 내세운 작품으로, 시리즈를 통틀어 일본 프로야구 시즌 개막 전에 발매된다는 별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타자는 강해지고, 투수는 약해졌다
PS2013에서 눈에 띄는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는 전반적인 경기의 흐름이 타고투저 양상을 띠게 됐다는 점이다. 전작에서는 제구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는 커맨드 입력 정도에 불과했으며, 버튼 누르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제구력 랭크에 상관없이 다양한 구종을 뿌릴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은 넓었고 타격 판정은 엄격했으며, 공의 비거리가 짧게 설정되어 있어서 홈런이나 외야 안타를 때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한 마디로
극단적인 투고타저 게임이었던 셈이다.
이번 작품은 다르다. 투구 난이도 상승으로 원하는 공을 원하는 위치에 꽂을 수 없게 되었으며, 세밀한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4구가 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공의 비거리도 늘어나 시원시원한 타구를 쉽게 볼 수 있고, 공이 방망이에 맞았을 때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타종이 발생해 출루 가능성도 높아졌다. 때문에 체감 난이도는 전작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며, 보다 캐주얼한 느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대호!이대호! 추가
짜릿한 손맛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를 듣는 즐거움도 한층 커졌다. 관중석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응원소리와 실감나는 타격음 등은 게이머로
하여금 실제 경기장에서 경기를 구경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 충분하다. 투수 기용 시 불펜의 모습을 비춰주는 불펜 시스템과 타격 시 공의
움직임을 잡아주는 카메라 워크는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게이머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선수 별 응원가도 대폭 늘어났는데, 그 중에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활약 중인 이대호 선수의 전용 응원가도 포함되어 있어 국내 팬들을 미소 짓게 한다.
비서육성게임이 된 매니지먼트 모드
그러나 장점이 뚜렷하면 단점 역시 분명한 법.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PS2013의 신규 모드인 매니지먼트이다. 매니지먼트는 프로야구의
구단주로서 구단을 경영하여 일본 챔피언을 목표로 하는 모드인데, 자금이 적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1주일 단위의 팀 관리를 최대 5년
동안 실행하게 된다.
모드 자체는 프로야구 매니저나 풋볼 매니저 스타일의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되며, 게이머는 최대 5명의 여성 비서를 고용하여 이들을 통해 팀 관리에 필요한 각종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문제는 모든 행동이 비서를 통해 이루어지고, 비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서가 성장하지 않으면 추가 커맨드도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구단주 입장에서 팀을 관리하는 기분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게이머와 선수 사이의 직접적인 접점은 거의 없으면서 여성 비서들과는 데이트를 하거나 과외 수업을 받는 등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나올 법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어, 팀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이 아닌 육성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느낌마저 든다.
좋아하는 팀을 간접적으로나마 육성한다는 데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실력 있는 비서를 고용하여 한 가지 분야에 특화 시키면 별 문제 없이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난이도 때문에 손맛 역시 떨어진다. 총 5년, 실제 시간으로 6~8시간에 불과한 짧은 플레이 시간도 불만 요소. 구단 재정도 윤택해지고 이것저것 좀 할만해지나 하는 순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모드 구성은, 한창 화면에 집중하며 팀을 운영하던 게이머들의 맥을 탁 풀리게 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다.
거인의 별은 높기만 하고
팀 밸런스도 전작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다. 강한 팀은 너무 강하고, 약한 팀은 무엇을 해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 스포츠 게임의 매력은
게이머가 조작하기에 따라 약팀으로도 강팀을 이길 수 있다는 데에 있는데, PS2013에서는 게이머가 약팀이고 CPU가 강팀일 경우 보통
난이도 이상만 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들의 염원(?)인 체크 스윙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구현되지 않았으며, 선수들의 각종 모션은 전작에 비해 대체로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랑프리 모드에서의 감독 플레이 시에
한해 수비 모션이 단조로워진다는 문제점을 보인다. 게임성의 변화, 화려한 연출 등 게이머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표면적인 부분에서는 다양한
콘텐츠가 추가되고 변경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깊이는 조금 부족한 느낌. 전작과 비교해서 양적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만큼의 질적 향상은 없는
셈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은 계속된다
물론 변화하고자 하는 모습, 새로워지고자 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10년 가까이 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의 경기 중계를 담당하여
게이머들에게 다소 식상함을 안겨줬던 아나운서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으며, 온라인 상으로 일본 프로야구 시합 결과를 예상하거나 이와 관련된
퀴즈를 즐길 수 있는 프로야구 링크 모드도 이번 작품부터 새롭게 추가되었다. 스타 플레이어 모드에 미션이 추가되어 보다 쉽게 선수를 육성할
수 있고, 카드 배틀의 난이도가 낮아져 손쉽게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경기 진행 양상에 따른 업데이트로 보다 실제에 가까운
데이터 야구를 즐길 수도 있다. 사실적인 야구를 지향하면서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최대한 추구하는 자세. 보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섬세함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나름대로 평가할만하다.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평이 갈린다
전작보다 플레이 하기는 쉬워졌지만, 한 번 파고들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는 PS2013. 이번 작품은 게이머 본인의 취향이
캐주얼하게 경기만을 즐기는 타입인지, 질적으로 완성도 있는 게임을 찾아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타입인지에 따라 선택의 여지가 남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팬층이 확실한 게임인 만큼 평가가 어떻듯 매년 사는 사람은 계속 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