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도 변한다더니', 10년전 게임업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이 두 차례씩 열릴 수 있는 시간이고 대통령이 두 번은 바뀔 시간이며, 인기 걸그룹이 데뷔했다가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만 생각해도 10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녹녹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10년간 대중문화 전반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장이라면 단연 게임시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 시장으로 전환됐으며, 최근에는 온라인게임을 넘어 모바일게임 시장이 대두되고 있다. 기술 발전도 놀라울 정도이며, 시장 판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과연 10년전, 그러니까 2003년 8월부터 9월까지의 게임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게임동아에서는 기억을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역시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PC의 사양일 것이다. 듀얼코어를 넘어 쿼드코어라는 단어가 일반화가 된 요즘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텔과 AMD가 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던 당시 양사를 대표하던 CPU는 펜티엄4 3.2Ghz와 애슬론 XP 3200+였다. 물리적으로 CPU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클럭이라는 3.2Ghz를 내세운 두 CPU는 각각 절대성능과 최적화라는 무기를 내세워 게이머들의 주목을 받았다. 양사는 이들 두 CPU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라인업인 프레스캇과 애슬론64, 옵테론을 출시하며 향후 10년을 이어갈 치열한 경쟁의 서막을 알렸다.
성능만큼이나 가격 역시 놀라웠다. 펜티엄4 3.2Ghz의 최초 출시 가격은 84만 원으로 PC 부품 가격이 대폭 하락한 지금은 게임용 PC의 CPU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고가를 자랑했다. 바로 아랫단계의 CPU인 펜티엄4 3.0Ghz의 가격도 49만 원 가량이었으니 10년간 PC 시장의 가격인하가 어느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시스템일지 모르지만 이런 CPU를 접한 게이머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게임 내 최고 해상도가 1080p를 넘어 1440p를 노리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게임의 최고 해상도응 1280X1024에 불과했으니 이 정도 CPU로도 '화려한' 그래픽을 맛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게임이라면 리그오브레전드, 서든어택, 피파온라인3를 꼽을 수 있지만 10년 전 게임시장에서는 이들 게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던 장르는 단연 MMORPG. 향후 전설이 된 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비공개테스트를 준비 중이었으며, 리니지2는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리니지2는 당시 PC방 점유율에서 17%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며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는 2위를 차지한 뮤와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수치. 지금처럼 특정 게임 몇 개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던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리니지2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해마다 한 두건씩 터져나오는 게임사들의 분쟁소식도 찾아볼 수 있다. 액토즈소프트와 샨다가 미르의 전설2를 두고 벌이던 분쟁에 합의를 본 시점이 이 시기이다. 이 분쟁은 2001년 6월부터 중국 내에 미르의 전설2를 서비스했던 샨다가 불법서버와 기술지원 미비를 이유로 로열티 지급을 미뤄옴에 따라 시작됐으며, 액토즈는 2003년 1월부터 계약해지를 통보하며 시작된 분쟁이었다.
액토즈소프트는 자사의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2를 중국에 서비스하는 샨다와 로열티 분쟁에 대한 합의를 봤다. 이에 따라 액토즈소프트는 샨다로부터 400만 달러의 라이선스 비용과 총 매출액의 21% 로열티로 받게 됐다.
전세계 게임 유통망을 들었다놨다 하고 거물이 된 존재. 스팀이 태동한 시기도 바로 이 시기다. 당시 밸브는 하프라이프, 어포징포스, 팀 포트리스,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을 인터넷을 통해 즐길 수 있다며 스팀 시스템을 홍보했으며, 게이머들은 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스팀이 너무나도 보편화 된 시스템이라지만, 그 당시에는 혁명에 가까운 시스템이었다. CD나 DVD를 통해 게임을 설치하던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 게임 다운로드와 설치 그리고 관리를 인터넷을 통해서 한 번에 할 수 있는 스팀은 혁명과도 같은 시스템이었다.
당시 밸브는 자사를 대표하는 게임인 카운터스트라이크의 최신 업데이트인 1.6 업데이트를 스팀을 통해 배포하면서 스팀의 저변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운터스트라이크 1.6 업데이트에서는 카운터팀에 방패가 추가되면서 게임의 전략이 더욱 다양해졌고, 그 전까지는 멀티플레이만 할 수 있었던 아쉬움을 넘어 최초로 A.I.와의 봇전을 추가해 게이머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스팀은 서비스 초기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겼다. 당시 보편적으로 활용되던 운영체제 중 하나인 윈도우ME에서는 PC가 다운되는 증상이 보고됐으며, 로딩이 너무나 느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스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