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퍼피티어 편
시대가 흐르면서 사람들의 취향도 변한다고 했던가. 언젠가부터 액션 게임, 특히나 횡스크롤 액션 게임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시점 전환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연출을 선보일 수 있는 3D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고정 시점과 그에 따른 연출의 제약을 받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은 마치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입장에 처했다.
게다가 시장에서 FPS, 샌드박스와 같은 장르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입지는 날로 좁아졌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라면 슈퍼마리오 시리즈와 레이맨 시리즈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 대부분 그 명맥은 끊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월 5일, 국내에 출시된 퍼피티어는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장르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다.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대중들의 큰 기대를 받지 못 하고 있는 불운한 게임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GTA5가 출시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이기에 상대적으로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지 않은 시점이기도 해, 퍼피티어는 이래저래 저평가를 받고 있다.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소녀시대 컴백하면 다른 신인 걸그룹은 실력과는 무관하게 ‘듣보잡’ 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지.
조영준 기자(이하 모르는 놈): 적나라한 평가네요. GTA5가 소녀시대고 퍼피티어는 신인 걸그룹인가요?
까는 놈: 소녀시대 맴버들의 이미지와 GTA에 등장하는 무서운 동네 형들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인지도는 그 정도 차이가 있지
않겠어?
김형근 기자(이하 달래는 놈):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기대를 했던 작품이야. 오래 전부터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 대한 향수가 있으니까. 물론 퍼피티어가 단순히 향수에 기대는 게임이라는 말은 아니다.
까는 놈: E3 2013 취재를 갔을 때 현장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던 게임이기도 해. 공개된 영상도 꽤나 인상적이었고, 5분간 즐길 수 있는 체험버전 앞에서는 ‘1분만 더 하겠다’고 진행요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어.
<액션: 총질, 칼질이 아닌 가위질도 재미있다 vs 2D 디스플레이에서는 재미가 반감될 수도...>
달래는 놈: 최근 게임시장의 대세는 역시 총질과 칼질이지.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풀어냈느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이런 소재들을 다루지 않은 게임은 드무니까. 어떻게 보면 게임 시장이 상당히 폭력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해.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이끄는 게임들이 갈 수록 거칠어지고 있는 건 부정하기 힘들어
까는 놈: 지난 연말에 개봉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언제부터 게임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된거야?!’ 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으니까.
달래는 놈: 퍼피티어는 이런 시류와는 꽤나 동떨어진 게임이야. 액션게임이기에 상대를 무찌르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상대를 무참히 짓밟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목각인형에 풍선처럼 묶여 있는 영혼을 구해내는 형식으로 액션을 그려냈지.
까는 놈: 하긴 이 정도면 아주 평화로운 게임이지. 게임 설정상 분위기가 조금은 음산하지만 무섭지는 않고,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도 최대한 피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도 폭력적이라고 할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자주 나오는 애니메이션 ‘라바’도 잔인하다고 할 사람들이겠지? 벌레들끼리 치고 받고 싸운다고 말이야.
모르는 놈: 그래도 액션게임인데 액션이 너무 유하게 그려지는 건 단점 아닙니까?
까는 놈: 액션게임이 재미있는 것은 적들이 어떤 모습으로 쓰러지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쓰러트릴 수 있냐에 달렸어. 단순히 잔인하기만 하다고 좋은 액션게임은 아니지.
퍼피티어는 굉장히 아기자기한 게임이야. 가위를 들고 배경을 자르면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동하며 난관을 해치는 재미는 대단히 좋아. 개발자가 자신의 아들 의견을 수렴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실제로 이 게임은 아이들이 즐겨도 좋을 게임인 거 같아.
달래는 놈: 이 게임의 백미는 연출이야. 아마 이런 연출이 없었으면 이 게임은 그저 그런 시시한 게임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출이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있어. 평범한 스테이지에 불과한 지역도 화면 전환 연출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갖게 만드니까.
마치 인형극을 보는 듯한 연출을 하고 있고, 스테이지 전환은 이러한 무대가 즉석에서 바뀌는 마술을 보는 듯한 방식을 택했어. 덕분에 게임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은 지역에서도 게이머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지. 단순히 앞으로 걸어갈 뿐임에도 배경은 90도씩 휙휙 회전하고 있으니 보는 재미가 상당해. R2 버튼을 이용해 사물을 탐색할 때마다 그려지는 배경의 호응도 재미있고.
까는 놈: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 이 게임은 3D 디스플레이를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게임이고, 그에 따라 입체영상 효과를 노리고 만든 연출이 상당히 많아. 화면 앞으로 캐릭터들이 튀어나오고, 구석까지 날아가 쳐박히는 등의 연출 말이야. 스테이지 전환 연출도 이러한 방식을 많이 취하고 있어서 2D 디스플레이에서는 이런 것을 감상하는 재미가 반감돼.
달래는 놈: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서 캐릭터들끼리의 액션이 아닌 화면 전환으로도 박진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엔 부족함은 없지 않아?
까는 놈: 그래. 나도 이런 인형극이 진짜로 있으면 내 피 같은 돈 내고 가서 볼 용의가 있다.
<클래식한 재미를 세련된 모습으로 그려낸 게임 vs 클래식한 게임의 단점도 그대로 옮겨왔다>
까는 놈: 연출이 박진감 넘치긴 하지만 게임 구성 자체는 꽤나 단조로워. 클래식한 게임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 했어. 못 한 건지 그럴 의도가 아예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래는 놈: 그래도 다양한 액션을 펼칠 수 있도록 스테이지를 꾸민 아이디어가 좋지 않아? 나는 특히 보스전은 감탄을 하면서 진행했는데. 단순히 적의 약점을 공략해서 HP를 0으로 만들면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활용한 액션을 유도하고 있고 그게 또 재미가 있었거든.
까는 놈: 하지만 보스까지 가는 과정이 조금은 심심해.
달래는 놈: 스테이지 구성도 재미있고, 연출도 박진감 있고, 절취선 액션을 통해 속도감까지 부여하고 있는데도?
까는 놈: 등장하는 조무래기 몬스터의 디자인이 거의 다 비슷하잖아. 적과 싸우면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액션게임이 아니라 스테이지의 함정을
헤쳐나가는 액션에 무게를 둔 편이야. 취향에 따라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네 말대로 이 게임은 클래식한 게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임이야. 그런 클래식한 게임에 세련된 연출을 더해서 새로운 느낌을 준 것이지.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면모는 높게 평가할만해.
하지만 구간 세이브가 없다는 점, 강제 세이브를 택하고 있다는 점, 게임오버가 되면 처음부터 스테이지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 등 클래식한 게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불편한 점까지 옮겨올 필요는 없지 않아? 게임 하기 불편하다고. 특히 스테이지 하나의 길이가 제법 긴 편인데, 후반부에 죽거나, 헤드 수집에 실패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진행을 해야 돼. 중간 체크포인트 개념만 도입했어도 이런 불편함을 덜 했을텐데 싶어.
<소소한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추천할 수 있는 게임>
모르는 놈: 요즘은 액션 게임들도 성장요소를 많이 도입하는데 그런 부분은 없나요?
까는 놈: 없어. 전형적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형식을 택하고 있어. 그래도 인형극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스토리를
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게임을 아무리 진행을 해도 강해지는 건 조작에 익숙해지는 게이머 자신이지, 게임 속의 캐릭터는 강해지지
않아.
달래는 놈: 그래도 수집요소는 많이 도입되어 있어. 스테이지 곳곳에 숨어있는 헤드를 모으고, 이런 헤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지. 각 헤드마다 보여주는 고유의 헤드액션도 개성 있기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 게다가 이 헤드를 얻는 법이 쉽지가 않아서 자연스럽게 수집을 위해 2회차, 3회차 플레이를 하게 돼. 플레이 당위성을 제공하는 요소와 게임 플레이 그 자체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하나로 녹여낸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까는 놈: 개인적으로 퍼피티어는 ‘액션 동화’라고 평가하고 싶어. 서사 구조 역시 전형적인 권선징악 형태를 띄고 있어. 게임의 구조만큼이나 서사 구조도 단순한 편이야. 하지만 한글화를 통해 전달되는 게임의 스토리는 제법 흥미로워. 캐릭터들의 대사도 재미있거든.
문제는 이 한글화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이야. 번역 그 자체는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음성이 나오는 타이밍과 대사가 나오는 타이밍이 일치하지가 않아. 흔히들 말하는 ‘싱크가 맞지 않는’ 상황인 거지. 게다가 둘이 대화를 동시에 할 경우에도 화면에는 한 명의 대사만이 나오거든. 이런 건 좀 더 신경을 써 줬어야 할 문제야. 기껏 공들여 한글화 해 놓고 욕 먹는 상황은 피해야지.
모르는 놈: 액션 동화라... 재미있을 것 같네요.
까는 놈: 재미있어. 너 그런데 PS3 없잖아? 아쉽겠구만. 이 게임은 명작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수작이라는 평가를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저평가 우량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게임이야. 요즘 게임들이 갈 수록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것 다 젖혀두고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퍼피티어의 큰 장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