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판이 되어 돌아오다. 라그나로크 오디세이 에이스
필자는 어떤 게임이든 해당 작품의 확장판이 나올 때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PS2 시절부터 잊을만하면 터진 확장판의 찬반논란이 생각난다.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찬성 의견부터 우려먹기다, 미완성작 팔아먹고 확장판을 빙자한 게이머 우롱 행위다 비판론까지 갑론을박이 성행했다. 지금 와서 보면 어차피 할 사람은 욕하면서도 살 것이고, 안 할 사람은 말없이 안 살테니 판매량으로 승부가 날 일인데 뭐 그리 열을 내면서 떠들었을까 싶다. 결국 잘 만든 확장판은 안 사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리하여 확장판 발매는 이제 시장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이제 와서 라그나로크 오디세이(이하 오디세이)가 1년 만에 확장판 라그나로크 오디세이 에이스(이하 에이스)로 돌아와도 대수롭지 않다. 그런 거다.
라고 이성적으로 넘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작의 데이터를 이어서 추가 콘텐츠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작의 본편과 DLC를 전부 포함하는 동시에 후일담 추가, 새 던전, 에이스 스킬과 용병 등의 신 시스템, 조작 캐릭터 및 몬스터 밸런스 조정까지 해버렸으니 전작 오디세이는 소위 말하는 오징어로 전락해버렸다. 더 어렵고 분량 적은 전작을 이제 누가 쳐다보겠는가. 다들 에이스로 넘어가지. 전작을 발매 후 고작 1년 만에 이런 식으로 버리는 패 취급해버린 겅호의 태도가 괘씸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작을 경험한 게이머에게 따라오는 '앞서 재미 본 대가'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 전작과의 연동으로 이어지는 건 장비에 옵션을 부가하는 카드들과 캐릭터 외형뿐. 액세서리도, ZENY도, 무기도 전부 다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DLC 액세서리는 다시 다운로드 해야 한다). 설상가상 고성능 카드는 고코스트라 초반에 코스트 부족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어디선가 "경험이야 말로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니 그냥 카드나 이어 받고 만족하거라 허허허"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오디세이를 해봤던 게이머는 50시간짜리 튜토리얼을 한 것도 모자라 못 건너뛰는 튜토리얼을 다시 해야 할 처지. 이대로 괜찮은 거냐 에이스. 이대로 우롱당한 채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거냐 나. 불과 기동 후 첫 30분 동안 오만 잡생각이 떠오르며 앞으로 플레이가 막막해지고 엄두가 안 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방황이었다.
일단 챕터 퀘스트의 난이도가 많이 낮아져 전작의 과정들은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전작에서 대표적인 첫 장벽으로 이름 날리던 오크킹도, 게이머를 우롱하며 꼬리를 흔들던 개과 하티도, 궁둥이 노리다 깔리기를 십 수 번 겪던 그란델과의 전투도 재도전 한 번 없이 클리어 하는 것이다. 단순히 게이머의 경험이 있어서 체감상 쉬워진 것이 아니라서 게이머의 캐릭터는 툭 치니 억 하고 죽던 약골에서 구르고 굴러도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히어로로 거듭났고, 적들은 패고 또 패도 안 쓰러지는 바퀴벌레에서 진짜 툭 치면 억 하고 죽도록 약해졌다. 물론 텍스트 넘기는 시간, 필드 이동 시간, 로딩, 공격 모션 시간 등등 자잘한 투자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전작을 또 복습해야 암담했던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가볍게 즐겨주면서 후일담까지 달려가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게 또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크리티컬 배율 변화 등 밸런스 조정을 거치고 에이스 스킬과 용병 시스템의 투입으로 인해 복습이 아니라 새 플레이나 다름없다. 전작과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요, 에이스 스킬로 드디어 결정타 내지는 전세역전용 '큰 거'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돼 안 맞고 계속 때리는 데에 집중해야 했던 슈팅게임 같던 공방이 많이 달라졌다. 여기에 온라인 환경이 아니라도 공방 양면으로 도와주는(고기 방패부터 체인 유지까지 말 못 하는 것과 후반에 성능 못 따라가는 것 빼곤 멀티플레이 부러울 것이 없다) 용병들이 있어 더 다양한, 더 과감한, 더 박력 넘치고 액션쾌감 터지는 사냥이 펼쳐진다. 전작의 사람 피 말리는 외줄타기 심신고문은 이제 안녕.
이렇게 하여 챕터 9까지 순조롭게 끝내면 드디어 에이스 챕터와 엑스트라 퀘스트의 정복 시간이다. 여기서부턴 오디세이만큼이나 팍팍한 인심 속에서 하드 플레이를 요구하여 본격적인 후반 콘텐츠다운 태도를 보인다. 허나 이 게임은 오디세이가 아니라 에이스다. 에이스 스킬, 용병, 그리고 새로 추가한 아이템 파밍(바라는 장비를 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냥하는 행위) 전용 무작위 200층 던전 세계수 챕터9 엔딩 후부터 함께하기에 고난이도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심신이 지칠 이유가 없다. 사냥에 최적화된 던전 구조, 발키리 시련을 달성하여 터지는 각종 버프들, 일반 필드보다 압도적인 보상까지 아이템 파밍의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또 아이템 파밍이 취향이 아니라면 할로모나스 웨폰으로 나만의 무기를 육성하여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다. 1보 행복을 위해 2보 고행을 펼쳐야 했던 오디세이의 역학관계가 드디어 2보 행복을 위한 1보 고행으로 바뀐 것이다. 진작 이래야 했다.
자, 이제 게이머는 아직도 무수히 남은 각종 장비들, 의상, 액세서리, 카드 등등 모을 수 있는 아이템들은 전부 모아버리고 정복할 수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해보고 싶은 직업의 운용을 전부 다 해버릴 때까지 계속 에이스를 붙잡을 수 있다. 성에 찰 때까지 말이다. 이건 필드에 뛰어들어 적들의 패턴을 파악하고 그 틈을 노리며 쓰러트리는 이른바 사냥액션장르 게임의 기본 소양이자 최고의 콘텐츠다. 사실상 오디세이에서 이미 질리거나 지쳐버린 게이머들이 아닌 이상 에이스가지고 못 마땅해 할 게이머들은 거의 없으리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왜 지금까지 전작을 플레이 한 게이머를 대상으로만 적었는가 설명하자면 오디세이를 넘기고 에이스부터 시작한 게이머에게는 그냥 추천작이라 부연설명 자체가 사족으로 남아서다. 전작의 장점인 공중 전투와 같은 독특한 액션, 다양한 장비 수집과 캐릭터 숙련, 오만 가지 캐릭터 꾸미기 같은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작의 단점인 적은 보상이나 고난이도, 심지어 본가인 라그나로크 온라인과의 연계성 강화까지 단점이란 단점은 모조리 보완하여서 완전체란 세 글자면 충분하다. PS VITA 라인업 중에서 사냥액션장르의 소위 말하는 종결자란 의미. 같은 컨셉으로 나온 PS VITA용 작품들이 몇 있긴 하나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단 점을 제외하면 어떤 게임도 에이스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 한다. 그 중 한 작품은 벌써 후속 완전판 개발을 공언했고 다른 한 작품은 추가 확장판이 당연한 개발사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건 그때 가서 할 이야기. 지금 당장은 1년 동안 게이머의 의견수렴과 자체 개선을 거친 에이스가 독보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처음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에이스 가지고 실망할 때는 아이템신과 확률신에게 버림받아 무작위에게 희롱 당할 때 뿐. 그런 의미에서 에이스를 하는 모든 게이머에게 행운을 빌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