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이치 20주년 프로젝트의 결실, 아르카디아스의 전희
니혼이치 소프트웨어 2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르카디아스의 전희. 연기를 거듭하다보니 20주년과 맞춰서 등장한 동년도 발매작 마녀와 백기병과 달리 처음부터 각 잡고 개발한 작품인 만큼 일단 겉보기부터 부티가 난다. 팝하고 큐트한 일러스트로 전개되는 왕도 판타지의 세계라는 표어가 아깝지 않은 미려한 2D 그래픽과 스크린샷에서 확인할 수 있는 3D 연출의 조화가 확연이 나타나있는데 실제 플레이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또한 플레이 내내 들어야 할 사운드는 때와 장소에 맞춰 때론 발랄하게 때론 박진감 넘치는 BGM, 전 캐릭터 풀보이스, 연출에 맛을 더하는 효과음, 어디 하나 티가 없어, 2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역량을 일러스트와 OST에 총동원하지 않았나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럼 게임 본편은? 일단 주요 진행은 횡스크롤 액션 RPG에 여타 시스템을 접목시킨 형태이다. 거점에서 무기 강화, 병단 강화, 아이템 구매를 하거나 이벤트를 챙겨보고 대륙이 펼쳐지는 메인 맵으로 나가 새로 생긴 스테이지 혹은 기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캐릭터를 육성하고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구조. 스테이지 개당 길이는 3~5분이면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대신 조작 캐릭터로만 싸우는 공주 전투, 병단을 꾸려 직접 싸우는 동시에 상대 병단과의 전투에서 이겨야 하는 격난전, 병단과 함께 보스와 싸우는 초난전 세 가지 배틀 모드로 분리하여 총 50개 이상의 스테이지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난관. 플레이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 스테이지에서의 전투가 너무 싼 티 난다. 종이인형극이 떠오르는 어색한 애니메이션 연출에 고해상도를 제외하면(그마저 일부 확대 연출에서 2D 티 나는 도트 자국이 선명하다) 여타 모바일 기기 내지는 전 세대인 PS2가 생각나는 2D 연출들이 너무 안쓰럽다. 3D 이펙트는 부가 효과가 아니라 2D 연출의 한계를 가려보려는 고육지책에 가깝다.
그나마 보이지 않는, 게이머가 직접 느끼는 부분에서는 사정이 낫다. 기본 조작의 파생 기술부터 추가 스킬, 기술 강화, 딜레이 캔슬 등의 테크닉부터 조작 캐릭터마다 천차만별인 콘셉트와 성능들은 횡스크롤 액션의 기본을 탄탄히 지키고 있다. 액션과 필드에서의 게임성은 합격점. 특히 주인공 프륨의 조작은 니폰이치 주인공 캐릭터 아니랄까봐 판정 우수, 거의 모든 커맨드 스킬 보유, 높은 범용성 등으로 모범형 캐릭터를 표방하여 필드에서 싸우는 재미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이 때 두 번째 난관. 모든 조작 캐릭터들이 주인공 프륨 같지가 않다. 범용성까지는 바랄 순 없어도 특정 상황이나 콘셉트에 맞춰 장단점이 평등해야 조작 캐릭터가 많은 보람이 있을텐데 형평성 문제가 심각해 선택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몇 가지로 줄어들어 버린다. 사용하기 힘든 캐릭터들도 아이템 경직을 줄이는 EX 스탭 스킬을 가진 환영의 피어스 같은 아이템을 활용하거나 조작 실력을 키우면 아주 못 쓸 것도 아니다만 세상은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다른 캐릭터보다 전제조건을 많이 요구하는 캐릭터를 약캐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프륨만 키우자니 병단 육성이 발목을 잡는다. 병단의 성장 레벨은 해당 병단의 리더 캐릭터 레벨과 같은 상한선을 지니므로 병단의 레벨이 절대적인 격난전, 초난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병종이 다른 병단 리더 마다 1명씩 육성은 필수. 여기에 스테이지에 대동하여 클리어만으로 얻는 경험치가 레벨 대비 난이도에 따라 조정이 이루어져 단기간 레벨 업이 어렵다. 결국 적절한 레벨 대의 캐릭터를 적절한 스테이지에서 반복 육성해야하는 노가다가 뒤따라온다.
이런 조작 캐릭터의 문제는 세 번째 난관, 기획과 밸런스 조절 실패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천차만별인 건 캐릭터의 조작 난이도만이 아닌 것이다. 당장 상호협력과 전략성 강화를 위한 병단 개입이 오히려 잘 싸우는 게이머의 발목을 잡아 병단도 관리해야 하고(병단이 전멸하면 자동 패배), 캐릭터도 조작해야 하니 주위가 산만해져 게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이런 병단과 병단이 맞붙는 격난전에서 레벨이 3~5 높은 병단이 역상성이고 작전이고 다 무시하고 다 이겨버리질 않나(그런데 이건 또 아이템 사용과 작전 지시 커맨드가 서로 겹쳐서 전투 중에 원활한 작전 지시가 사실상 불가능해 작전에 좌지우지되는 것보다 속 편하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작전을 써보려고 해도 의외로 작전에 충실하지 않아 기껏 결전오의를 포기하고 방어 진형을 선언했더니 거대 보스의 큰 거 한 방에 쓸려나가는 등 병단만 해도 크고 작은 결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 이벤트 발생을 위해 거점을 꽤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 흔한 숏 컷 하나 없어 번거롭고 인벤토리의 아이템 등록이나 상점, 병단에서의 선택 인터페이스 등 직관적이지 않아 게이머가 헤매는 부분이 여럿 있다. 나아가 전투 후 새 스테이지가 안 뜰 때마다 거점으로 꼭 돌아와서 왕좌까지 이동하기를 답습하는 진행 역시 게임을 단조롭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다만 아르카디아스의 전희에서 허술한 점을 장점으로 수용할 수는 있겠다. 레벨과 장비가 깡패인 만큼 액션게임에 약한 게이머도 만만한 스테이지 하나 골라 시간만 투자하면 높은 레벨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병단 강화, 장비 강화를 앞세워 쾌적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 다시 말해 진입 장벽이 낮다는 뜻이다. 병단 전투인 격난전도 레벨을 앞세워 별다른 지시 사항 없이 조작 캐릭터로 날뛰다 간간히 병단 오의만 써줘도 충분하고 각종 사악한 패턴과 무적기, 반격기로 무장한 격난전은 이 게임에서 패배의 패널티라고는 전투 중에 습득한 아이템의 강제 판매 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레벨업 및 경험치 습득은 그대로 이어지며 병단 숫자도 변하지 않음. 또 초난전 아이템 습득은 보스 토벌할 때만 발생한다) 초전박살을 목표로 높은 레벨의 병단에게 공격명력을 내린 후 잡히기 전에 잡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하면 병단 관리할 걱정 없이 이판사판 처음부터 클라이막스다. 모 아니면 도 전술로 나가서 모가 나올 때까지 계속 도전, 도전 또 도전. 이 얼마나 간단한가. 많은 투자로 확실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작위로 장난치는 일부 게임들보단 훨씬 할 맛 난다.
또한 클리셰를 그대로 담은 전형적인, 그럼에도 취향만 맞으면 재미있게 즐기기 편한 캐릭터들의 왁자지껄 이벤트들이 이 게임을 계속 붙잡게 만들 수 있겠다. 여러 의미로 정신줄 몇 개 놓은 4차원 주인공 프륨을 필두로 청순가령, 지략형, 무대포, 이중인격, 음흉, 독설, 흑막 등등 각양각색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인지라 어떤 이벤트도 취향만 맞는다면 계속 쫓아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첫 등장을 제외하곤 바스트 업 그래픽 하나 없이 풀 보이스와 간단한 식자, 이펙트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그래픽의 한계가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만. 제작진들은 정말 이런 묘사로도 충분하다 여겼단 말인가. 이벤트를 보고 있자면 캐릭터가 아깝단 생각마저 든다.
종합하자면 결점은 명백한 게임. 그러나 게이머의 지향점과 게임이 맞아 떨어진다면 재미있게 즐기기엔 충분한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명작, 수작의 경지엔 못 올랐지만 이 글을 보고 해볼 법 하겠단 생각이 든 게이머라면 해볼 가치는 있는 그런 게임. 그리고 재차 강조하지만 그림이 맘에 들었다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그림에만 빠져도 귀가 즐거운 OST가 따라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있다면 기라성 같은 PS3 라인업들 속에서 다른 게임들보다 아르카디아스의 전희를 최우선으로 두기 위한 게이머의 의지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