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선택] 봉인된 문을 연 두 개의 엑스컴

과거의 인기 게임을 최신 기술로 되살리는 것은 요즘 많은 개발사들이 선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작보다는 확실한 팬층이 존재하는 게임을 되살리는 것이 개발비나 마케팅비에서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게이머들 역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게임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작보다는 재미있다는 확신이 있는 게임을 구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최근 자주 출시되고 있는 HD리마스터링 게임들이 추억팔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인기작의 리메이크를 선택하면 개발사 입장에서는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계승할 것인가? 보통은 개발비도 적게 들고,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HD리마스터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다 의욕적인 리메이크를 선택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바뀐게 없으면 바뀐게 없다고 욕하는게 팬이고, 많이 바뀌면 원작을 모독했다고 얘기하는게 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발자의 선택에서 다룰 게임은 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개발사의 서로 다른 신작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과 더 뷰로 : 기밀 해제된 엑스컴이다.

엑스컴
엑스컴

유명한 게임이긴 하지만 워낙 오래된 게임이다보니 원작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면 엑스컴 시리즈는 마이크로프로즈가 지난 1994년에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도 팬들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는 인기 시리즈로 지구를 침공해온 외계인과 맞서는 특수부대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턴제 기반의 전략적인 전투 뿐만 아니라 부대원 육성, 기지 경영까지 다양한 장르를 한번에, 더구나 각기 따로 분리시켜도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완성도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게임의 완성도를 뛰어넘는 게임을 찾기가 쉽지 않다.

3편 이후로는 다른 장르로 변신을 꾀했다가 팬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고 시리즈의 명맥이 끊겼으나, 파이락시스와 2K마린이 비슷한 시기에 리메이크를 발표하면서 올드팬들을 열광시켰다.

먼저 문명으로 잘 알려진 파이락시스의 엑스컴은 원작을 최대한 똑같이 재현하는 길을 선택했다. 문명을 통해 오랜 기간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의 노하우를 쌓아온 파이락시스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며, 팬들 역시 이 선택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엑스컴
엑스컴

제목까지도 엑스컴 1편과 동일하게 가져갈 정도로 원작 계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파이락시스의 엑스컴은 원작의 턴제 전투를 현대의 감각에 맞게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행동 포인트를 기반으로 한칸, 한칸 움직이는 형태였지만, 이번에는 최대 이동 구역과 총을 쏠 수 있는 한계 이동 구역으로 나누고, 근처에 물체가 있다면 자동으로 은폐, 엄폐를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턴제 기반의 전투인 것은 원작과 동일하나 최신 그래픽 기술로 표현된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동작이 턴제의 답답함을 덜어주고 있다.

엑스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밀한 기지 운영은 편의성이 강화된 형태로 구현됐다. 외계인의 기술을 연구해 새로운 무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병사들을 레벨업시키면 등급이 오를 때마다 병과의 특성에 맞는 특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전세계를 방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신경써야 할 것은 두배 이상 늘려줬던 추가 기지 건설은 위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해 외계인과의 전투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원작을 계승만 한 것이 아니라 요즘 트렌드에 맞게 한정된 포인트로 부대를 구성해서 다른 게이머들과 전투를 즐기는 멀티 플레이 요소도 도입해 원작 팬 뿐만 아니라 엑스컴을 모르는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는 훌륭한 리메이크의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반대로, 2K마린즈는 바이오쇼크 시리즈로 명성을 쌓은 회사 답게 더 뷰로 : 기밀 해제된 엑스컴을 원작과 달리 분대 전투 기반의 TPS로 만들었다.

심오한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던 바이오쇼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더 뷰로 : 기밀 해제된 엑스컴도 시나리오에 많은 공을 들였다. 엑스컴1의 프리퀄 형식으로 제작하면서 시대의 배경을 원작보다 이전인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로 잡았으며, 특별한 주인공이 없었던 원작과 달리 CIA 요원 윌리엄 카터가 플레이어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더 뷰로:기밀 해제된 엑스컴
더 뷰로:기밀 해제된 엑스컴

게임 플레이 방식도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외계인이 나타나면 주인공을 중심으로 소규모 분대를 조직한 후 현장에 직접 파견돼 TPS 방식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기본적으로 동료들은 AI에 의해 움직이지만 잠시 전투를 중단시키고, 동료들에게 개별 지시를 내릴 수도 있다.

모든 대원들의 움직임을 직접 관리했던 원작과 비교하면 무식한 AI 때문에 다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으나, 턴제 전투였던 원작을 실시간 전투로 바꿨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며, 박진감 부분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작에서 80%의 명중률으로도 외계인을 맞추지 못하는 대원들 때문에 좌절하는 경험을 했었다면 서든어택이나 콜 오브 듀티 등을 통해 업그레이드 시킨 자신의 컨트롤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이 쪽이 훨씬 쾌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지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대원의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의 매력 포인트였던 기지 경영 요소는 거의 사라졌다. 대신 기지 내부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다른 직원들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거나, 외계인을 심문하는 등 어드벤처적인 요소를 즐길 수 있다. 특히,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점점 밝혀지는 진실과 이에 따른 플레이어의 대응이 앞으로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이렇듯 두 회사 모두 원작 엑스컴을 되살리겠다는 목표 아래 신작을 개발했지만 결과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파이락시스는 문명이 대표작이고, 2K마린즈는 바이오쇼크가 대표작인 만큼 엑스컴이라는 원석을 자신의 가장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뷰로:기밀 해제된 엑스컴
더 뷰로:기밀 해제된 엑스컴

두 게임 모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과는 파이락시스의 압승이라고 볼 수 있다. 파이락시스의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은 준수한 판매량을 보여 확장팩 엑스컴 에너미 위딘으로 이어졌지만, 2K마린즈의 더 뷰로 : 기밀 해제된 엑스컴은 과거에 변화를 시도했다가 팬들에게 혹독한 비평을 받았던 엑스컴 엔포서와 마찬가지로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으며, 개발사 2K마린도 이번의 실패로 인해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게임 플레이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외계인과의 전투하는 게임일 뿐 엑스컴을 계승하는 게임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는게 그 이유다. 엑스컴 초창기를 다룬 시나리오나, 부대원에게 지시를 내려 싸우는 전략적인 실시간 전투 등 매력적인 시도가 있긴 했으나, 엑스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지경영 요소가 아예 사라지면서 반쪽짜리 계승이 됐으며, 새로운 시도도 원작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같은 반응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심지어 일부 팬들은 이 게임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은 홍보 영상 뿐이라며, 홍보 영상을 만든 직원들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두 회사의 엑스컴 부활 프로젝트는 파이락시스의 것만 계속 이어지게 됐다. 과거 많은 리메이크 게임들의 실패 경험담처럼 원작의 매력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은 급격한 변화는 팬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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