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전국무쌍2 HD
차세대 기기인 PS4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PS3는 전성기를 지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과도기는 PS1과 PS2, PS2와 PS3에 이어 세 번째인데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앞서 두 과도기 때는 텍스트 게임이나 실사게임처럼 여타 게임보다 제작이 용이한 장르가 두드러졌다면 지금은 과거 작품의 리메이크 혹은 그래픽을 일신한 HD 리마스터링 작품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리메이크 및 HD 리마스터링 시도 자체는 이전부터 있어왔으나 그 빈도나 PS4 등장으로 인한 PS3용 신작 출시의 감소를 감안하면 조만간 이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터. 덕분에 게이머들은 과도기를 어떻게 보낼지 각자 고민이 생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설픈 괴작들이 쏟아지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사정이 낫다고 여긴다만.
어째든 이런 시류 속에서 이번 HD 리마스터링의 주인공은 PS2용 작품으로 등장해 시리즈의 전성기를 자랑한 전국무쌍 2. 진 삼국무쌍 2처럼 시리즈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작품 내외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앞서 게임동아에서도 이 명작에 대해 완벽히 다루었던 바( http://game.donga.com/3137/ , http://game.donga.com/3182/ ). 게임의 내용에 더 적는 건 사족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정식 발매를 거친 맹장전의 경우 지금껏 등장한 맹장전처럼 조작 캐릭터, 고 난이도, 무기, 전투 맵, 시나리오 추가에 무쌍난무 판정을 조정하거나 버그를 고친 정도의 확장판이라 게임의 완성도가 올라갔을 뿐 따로 이야기 할 만큼 큰 변화는 없는 편이고. 이와 관련해서 더 적어볼 거라곤 이번 HD 리마스터링을 거친 with 맹장전에서 과거에 성행한 다중 비기 적용이나 속성공격 후 특정 공격에 속성을 적용하기 같은 편법이 불가능하단 것 정도다(용병연무에서 보주 무한으로 얻는 편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당연히 HD 리마스터링으로 환골탈태한 그래픽 이야기다. 이번 HD 리마스터링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서 그 묘미가 생생히 살아난다. 특히 조작 무장들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한 디테일은 조금 과장해서 무쌍 시리즈의 최신작 무쌍오로치 2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밖에 전장의 배경들도 일신하여 PS3용 최신 무쌍 시리즈의 그래픽보다 약간 모자란 정도의, PS2용 작품 HD 리마스터링으로서는 최적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PS2로 무쌍 시리즈를 할 때마다 치를 떨게 만들던 적병 증발, 안개 현상은 이제 안녕. 여기에 마츠카제를 필두로 한 군마들도 달릴 때 근육 묘사가 눈에 보일 정도니 말 다 했다. 속성 발동이나 분신, 이펙트 등의 효과 또한 PS3용으로 발매한 무쌍 시리즈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그럼에도 로딩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그래픽만 따지면 PS3 초~중반에 등장한 신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PS2 시절엔 게임 모델링보다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을 CG 동영상이 더 옛날 티 난다.
그렇다고 PS3용으로 등장하여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후의 무쌍 시리즈와 동등한 비교는 곤란하다. 지금이야 1천명 격파는 기본에 3천명 격파, 5천명 격파를 즐길 수 있는 무쌍 시리즈지만 이 시절엔 300~500명 격파가 보통, 진득하게 붙잡아야 한 맵에서 1천명 격파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 맵에 등장하는 적들의 숫자가 적었고, 이 때문에 카메라의 시점 높이를 낮춰 화면 안에 담기는 캐릭터의 숫자를 줄이다보니, 현 시점의 무쌍 시리즈에 익숙하다면 답답하단 느낌을 받기 쉽다. 이어서 아군과 적군의 장수 여럿이 뒤엉키는 난전에서 차지공격으로 큼직큼직한 이펙트를 뿌리다보면 1초 내외로 화면이 느려지는 그래픽에서의 한계점부터(한 화면에 캐릭터들이 적게 들어가는 만큼 한 캐릭터가 화면을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데다 더해 그런 캐릭터를 PS3급으로 표현해 발생하는 문제로 추정한다) 군마를 아무데서나 호출할 수 없다거나 미사용 캐릭터의 성장, 전투의 흐름을 끊는 적장 등장&퇴각 이벤트 등 과거 작품이기에 어쩔 수 없는 편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세대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PS2용 전국무쌍 2를 경험하지 못 한 게이머가 이 작품을 시작한다면 이런 점들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대한민국 게이머에게 이 작품을 시작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인 전국 시대 그 자체. 등장 캐릭터 대부분이 임진왜란 전후에 활동했으며 메인 스토리가 임진왜란 발생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임진왜란의 주역들의 권력다툼을 다루기 때문에 국민적 반감이 심할 뿐더러 캐릭터 게임인 무쌍 시리즈에 재미를 붙이려면 사전 지식과 공부가 필수라 전국시대가 생소한 대한민국 게이머에겐 전국무쌍은 다른 무쌍 시리즈보다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문제로 전국무쌍을 시작하지 못 했거나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든 게이머라면 역사상의 인물이 아닌 전국무쌍 시리즈의 묘사가 맘에 드는 캐릭터 딱 하나만 정해 구글신의 힘을 빌려 인간관계의 거미줄을 타보자. 그럼 이모부와 함께 사돈어른과 형수님을 두들기는 아침드라마 전개부터 절대 권력자를 잃고 우왕좌왕 각종 수작질이란 이름의 삽질을 벌이다 고꾸라지는 인간군상들에 이르기까지 전국시대를 이해하면서 게임에 재미를 붙이기 쉬울 것이다. 전국시대가 생소해서 그렇지 결국엔 무쌍 시리즈라 빠져드는 원리는 다른 무쌍 시리즈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일부 게이머라면 예민한 문제 하나 더. PS3 하드디스크 용량을 충분히 비울 것을 추천한다. with 맹장전이 약 4GB, Empires가 약 3GB 인스톨 용량을 잡아먹기 때문에 하드디스크 공간이 아슬아슬하면 시작조차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게임 시작 전 런처로 with 맹장전과 Empires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한 게임만 인스톨을 실시하기 때문에 한 쪽만 즐긴다거나 한 쪽을 다 즐기고(=플래티넘 트로피 따고) 데이터 삭제 후 다른 한 쪽을 즐기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럼 모처럼 합본을 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PS2용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플래티넘 트로피를 위해선 최소 수 십 시간이 필요하므로 되도록이면 플레이 시간을 길게 잡고 즐기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작품의 존재의의가 HD 리마스터링과 더불어 게임 한 개 가격으로 명작 2개를, 플래티넘 트로피 2개, 플레이 시간도 2배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