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기획력 부족. 트랜드 따라가기만 급급한 한국 게임사들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1부 : 점점 어려워지는 한국 게임 시장]
9화. 기획력 부족. 트랜드 따라가기만 급급한 한국 게임사들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게임을 두고 종합예술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를 구체화 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콘텐츠가 바로 게임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디어와 기획은 게임이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아이디어와 기획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게임의 대다수는 빼어난 아이디어와 기획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아이디어, 기획력은 국내 게임시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면 그와 같은 장르의, 유사한 요소를 지닌 게임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 국내 게임시장에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맥락의 지적은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다. 스페셜포스, 서든어택의 성공 이후 유사한 게임성을 지닌 작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시기도 있었으며, 반복 작업을 통한 레벨 상승과 아이템 파밍에 중점을 둔 MMORPG나 액션성을 강조한 MORPG가 연속적으로 출시되어 시장을 가득 채운 적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모바일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더욱 도드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게임에 비해 게임 개발기간이 대폭 짧아졌고 게임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 탓에. 작품 하나가 성공을 거두면 머지 않은 시기에 비슷한 게임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팡2
애니팡2

애니팡의 성공 이후 비슷한 매치3 형태의 퍼즐게임이 시장에 연이어 출시됐다. 매치3 형태의 퍼즐게임에 게이머들이 지루함을 느낄 즈음 출시되어 성공을 거둔 포코팡 이후 같은 색상의 블록을 손가락으로 드래그하는 방식의 퍼즐게임이 대거 출시되기도 했다.

완전히 똑같은 게임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의 차별화 요소를 넣기는 했지만 앞서 발매된 게임들과 큰 차이점을 만들지는 못 했다. 애니팡으로 성공을 거둔 선데이토즈는 애니팡의 이름값에 페이스북에서 큰 성공을 거둔 캔디크러시사가의 게임성을 더한 애니팡2를 출시하는 행보를 보여 업계 관계자들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게임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요계에서는 후크송이 유행을 하자 너도나도 후크송을 들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섹시 콘셉트의 걸그룹이 성공을 거두니 대다수의 걸그룹들이 섹시 콘셉트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코미디가 성공을 거두자 이와 흡사한 요소를 지닌 영화가 연이어 상영되기도 했으니 이러한 분위기를 ‘시류를 타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한다는 이들도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당장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서 ‘이미 검증된 게임성을 차용하는 식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게임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시장에 팽배하다면 이는 결국 시장의 질적저하를 불러오게 된다. 앞서 언급한 걸그룹 섹시 콘셉트 경쟁과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의 범람을 두고 시장의 질적저하를 불러왔다고 지적하는 해당 업계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게임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별한 개성 없이 시류에 편승해 출시된 게임들, 이른바 ‘양산형 게임’들이 국내 게임시장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양산형 게임’들의 완성도는 그들이 따라한 게임들의 그것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 게임은 많은 데 할 게임은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최근 다양한 모바일게임이 출시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할 게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새로 출시된 게임을 즐겨도 결국 이전에 하던 게임과 똑 같은 느낌이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분량은 기존에 출시된 게임이 더욱 월등하니 결국엔 원래 즐기던 게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출시되는 게임의 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에 비해서 모바일게임 시장의 양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한국 게임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한 중국 게임사들의 개발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도 국내 게임시장의 불안요소로 꼽힌다. 한때는 한국과 중국 개발사들의 실력이 10년 이상 격차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지만, 이제는 개발력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한 수준으로 그 차이가 좁혀졌다.

아직까지는 중국 게임사에 비해 한국 게임사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우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가는 이러한 입장이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국내 게임업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중국 게임사들 사이에서는 ‘한국과의 개발력 격차는 거의 다 따라잡았다’는 분위기가 번져나가고 있다.

메이플스토리2
메이플스토리2

그나마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을 이끌고 있는 대형 게임사들은 기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탑제한 게임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넥슨은 기존의 메이플스토리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성을 지닌 메이플스토리2를 준비하며 업계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엑스엘게임즈는 PC 패키지게임 시장에서 턴제 시뮬레이션의 교과서라 칭송받는 문명 시리즈를 원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장르인 MMORPG로 개발하는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타 장르의 장점을 흡수해서 ‘이종교배’시킨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하고, 기존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아서 버전업을 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이러한 긍정적인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각 오픈마켓의 인기순위를 살펴보면 다양한 장르와 특징을 지닌 게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이 게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하고 있다. 한때는 팡류를 위시한 퍼즐 게임과 런닝게임이 대부분이었던 구글플레이의 최고 매출 순위는 2014년 9월 1일 현재, 몬스터길들이기(RPG), 모두의마블(보드), 블레이드(액션), 클래시오브클랜(SNG), 피파온라인3 M(스포츠 매니지먼트), 영웅의 군단(턴제 SRPG)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장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게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특한 개성이 없으면 더 이상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메시지까지 전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소규모 개발사들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성공한 게임의 그림자를 뒤쫓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규모 개발사들은 시장에 초창기 온라인게임이나 비디오게임 수준에 비견되는 완성도의 게임을 차츰차츰 선보이고 있는 시절이다. 모바일게임 시장에 MMORPG나 MORPG, SRPG 등의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분위기 전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게임사들은 덤벼들다시피 성장하고 있는 중국 게임들과 경쟁을 해야 하며, 급변하는 게임 시장의 흐름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발맞춰 전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라며, “단순히 분위기에 편승한 게임만을 지속적으로 내놓다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게임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 하고 그대로 급류에 휩쓸리듯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명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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