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게임人을 게임人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3부 :불합리한 정부 규제와 영향]
7화. 게임人을 게임人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인터넷이나 TV를 보다보면, 가끔 '영화人'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당장 포털사이트에 '영화인'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줄지어 나온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나 작곡가들은 음악인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문학인, 시인 등으로 불리운다.
하지만 이상하게 '게임인'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한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없고, 또 '게임인'이라고 검색해봐도 그런 용어가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주변에는 게임업계에서 종사하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게임의 사회적 위상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반증인데, 같은 문화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는데 왜 이리 다른 걸까.
< 사건이 터지면 게임을 지목.. 책임전가 소재로 '전락'>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서 게임이 '책임 전가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게임의 인식을 추락시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사건 책임자가 끼워맞추기 식으로 게임이 원인이라며 물타기를 시도한다는 것. 실제로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지난 6월에 발생한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부대 내의 왕따 행위로 인해 촉발된 이 사건에 어느 순간 주요 원인이 게임 때문이라는 얘기가 섞였다.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이 이 사건의 원인을 게임과 연관지어 공개 발언했던 것. 이 발언은 일파만파 커져 호된 역풍을 맞았고, 인터넷 포털에는 "또 게임탓으로 돌리냐"는 식의 댓글이 수백개 씩 이어졌다.
교육부에서도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가 불거지자 게임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생각없이 왕따와 폭력 대책으로 게임을 규제하는 '쿨링 오프제'를 제시하는 등 학교내 폭력 문제의 책임을 게임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또 MBC에서는 PC방의 전원을 갑자기 내린 후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억지' 실험을 해서 빈축을 샀다.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전제를 두고 만들어진 이 보도는 대대적인 역풍을 맞았고, KBS 개그콘서트에서 공개적인 웃음소재가 되는 등 파장이 컸다.
이외에도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나주 7살 여아 성폭행 사건, 2001년의 동생 살해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은 하나같이 게임이 원인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은 사건들이었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게임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사건이 터지면 꼭 댓글 중에 '이번에도 게임탓 하려나. 만만한 게 게임이지'라고 붙을 정도로 '게임 책임전가'는 심각한 수준이다.
법무법인 로텍의 이헌욱 변호사는 "아이를 방치했다가 살해한 아버지, 총기난사 사고를 일으킨 군인 등의 사례를 보면 문제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사회적 편견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며 "사건사고의 원인은 심리적 좌절이나 낮은 자존감,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에서도 여론몰이.. 게임은 '마약과 같다'>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게임에 대한 평가절하와 낮은 시선도 게임의 위상을 추락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게임을 아예 '사회악'이라고 규정하고 계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전 새누리당 대표 시절 "이 나라에 만연된 이른바 4대 중독, 즉 알콜, 마약 그리고 도박, 게임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을 이해, 치유하고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하여야 한다."라고 발언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게임이 마약이나 도박에 비견되는, 네 손가락에 꼽힐만큼 지독한 중독 물질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또 지난해 4월30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일명 '신의진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은 황우여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며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법안은 중독 예방, 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 완화에 관한 사항을 심의,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국가중독관리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해 중독의 원인 규명과 예방, 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 완화 정책 등의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권에서의 '게임 사회악 규정'이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의진 의원은 KBS 일요진단 '게임중독법 논란, 규제? 진흥?' 프로에서 정확한 실태 조사가 없었으며, 오히려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기본법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독물질로 일단 규정부터 하고, 데이터를 모으자는 얘기다.
이러한 정치권의 행보는 게임업계의 인식을 저하시키는데 한몫했고, 더욱 국내 게임산업을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학부모들과 학생들 인식차 커..게임사들도 자구 노력해야>
이러한 책임전가와 정치권의 공세를 기반으로 실제로 게임의 인식은 극도로 안좋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모바일 리서치 업체 오픈서베이(www.opensurvey.co.kr)가 전국 900명(중-고등학생 각 300명, 학부모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부모와 자녀 간 학교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의 가장 큰 원인으로 '폭력성을 부추기는 각종 미디어 및 게임'을 지목했다. 이렇게 지목한 학부모가 무려 전체의 46.77%나 됐다. 반면에 학생들은 절반에 가까운 46.50%가 '가해 학생에 대한 적절한 처벌의 부족'을 꼽았다. 학부모들은 티비나 게임이 학교 폭력을 부른다고 인식하고, 학생들은 정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학교 폭력이 생겼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어 학부모들은 '부모의 자녀에 관한 관심 및 지도 부족(37.26%)'과 '피해학생 보호 체계의 부재(37.26%)를, 학생은 '피해학생들 보호 체계의 부재(34.00%)',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 사회 환경(33.50%)'을 꼽아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또 게임업계 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게임사들 또한 게임의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자구적인 노력이 너무 미비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게임이 수조에 이르는 큰 시장이 되었지만 게임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게임사들 또한 더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더 많이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외부적인 규제와 탄압이 심하지만, 결국 업계 자체가 중심을 잡고 해나가지 않으면 인식을 올리고 게임인이 탄생하는 것도 요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