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만화를 죽인 정부, 게임을 사지(死地)로 몰다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4부: 세계가 바라보는 게임]
4화. 만화를 죽인 정부, 게임을 사지(死地)로 몰다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원피스요, 나루토요, 헌터*헌터요, 드래곤볼이요!"

최근 한 중학교에 가서 '어떤 만화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대답이다.

지난해부터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웹툰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한국의 만화를 봤다는 학생들이 없었다. 다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해외 만화들이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던 것. 한국의 만화들이 왜 국내 시장을 하나도 선점하지 못하고 해외의 만화들에게 시장을 내주고 말았을까?

만화 정화
대회
만화 정화 대회

< 만화의 유해매체 지정.. 한국 만화의 몰살>

국내의 만화 규제는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됐다. 그리고 규제의 선봉에 서울 YWCA(기독교 여자 청년회)와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이 섰다. 이 단체들은 만화계를 조사하고 언론에 부정적인 내용을 발표하는가 하면, 만화 불매운동 등을 벌이다 급기야 96년 9월에는 문화부를 움직여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7년에 청소년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만화 업계는 본격적으로 규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당시에 청소년 보호법에서는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등의 애매모호한 법 조항을 다루었고, 때문에 정부에서는 만화에 대해 자의적으로 유해매체 지정이 가능했다.

당시 1천7백여 종의 만화가 유해 매체로 결정됐고 10여 명의 중견 만화가들이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때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가 사라졌으나, 위원회는 계속 수거/파기/시정이란 준 사법권으로 계속 만화업계를 괴롭혔다.

만화탄압
기사
만화탄압 기사

이렇게 만화업계가 공격받게 된 것은 당시에 정치권을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이 만화를 뚜렷한 근거없이 사회악으로 몰고갔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만화를 지목했다. 97년도에 신한국당은 '학교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만화를 모든 혐의의 주범으로 지목했고, 만화방, 소매상, 도서대여점 모두 압수수색영장 없이 단속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학원폭력대책회의를 주재했을 때에도 만화가 지목됐고 전 언론이 만화를 공격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러한 정책-정부의 규제와 여론의 공격 아래 국산 만화는 더이상 발 붙일 곳을 잃고 자생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 일본과 한국의 만화에 대한 시각..결과는 '천지차이'>

반면에 일본은 만화에 대해 일찌감치 진흥으로 고개를 돌리며 해외 시장을 석권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일례로 일본 정부에서는 '드래곤볼'이라는 만화를 그린 토리야마 아키라를 위해 만화가의 집부터 공항까지 일직선으로 도로를 놔주기도 했으며, 만화 연재를 중지하려 하자 일본 문화부 장관이 직접 찾아와 연재를 중단하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각종 지원이 이어졌다.

그러한 정부의 지원 아래 '드래곤볼'은 해외 판매량이 2억 부를 넘었고, 애니메이션을 40개국 이상 수출했다. 프랑스에서는 애니메이션 시청률이 90%에 이르기도 했으며, 2001년 전세계 인터넷 검색어 순위 4위, 2002년과 2003년에는 2년 연속 1위, 2004년 전세계 검색어 순위 3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의 콘텐츠가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결과가 한국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만약 '드래곤볼을 한국에서 한국 만화가가 그렸다면' 폭력 만화의 주범으로 몰렸을 것이라는 것. 한 전문가는 '드래곤볼'을 두고 "콘텐츠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의 만화산업이 규제로 인해 자생력을 잃은 사이 정부의 힘을 등에 업은 일본 만화는 아주 수월하게 한국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한국은 수십, 수백억 원을 들여 일본 등의 해외에서 그려진 만화를 수입해와야 했으며, 한국 학생들은 외색이 짙은 만화를 보고 자라게 됐다. 한국 만화를 압박해 자생력을 잃게 한 결과다.

콘진원
콘진원

< 다음은 게임 죽이기..세계는 기회 틈타 한국업체 '러브콜'>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이 나라에 만연된 이른바 4대 중독, 즉 알콜, 마약 그리고 도박, 게임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을 이해, 치유하고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하여야 한다."라고 발언하며 게임 규제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지난해 4월30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하면서 게임죽이기의 선봉에 섰다. 법안에는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일단 게임은 중독물이며, 그래서 광고나 유통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게임산업을 탄압하는 동안, 한국 게임은 자생력을 잃고 있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이미 40% 이상 해외 게임사들에게 잠식됐고, 모바일 게임 분야 또한 해외 기업들의 자본잠식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화 산업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국가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해외에서는 앞 다투어 한국의 게임 개발사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열린 지스타 2013에서 독일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한.독 게임산업 세미나'를 개최하고 한국 게임사들이 독일에서 게임 개발을 하면 1억 4천만 원 가량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고, 영국도 아예 영국외무성(FCO)와 무역투자청(TIGA)이 지스타 2013 현장에 자리해 한국의 게임사들의 영국 이전을 독려했다. 중국 또한 상해 지역에 한국 개발사의 입주를 바라고 있다. 국내 정치권과 정반대의 행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해외에서는 게임산업을 잘 키워 미래의 주요 먹거리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반면, 한국은 이미 수출의 역군인 게임산업을 죽이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국내 게임산업이 자생력을 잃게 되면 해외의 유명 게임들을 수십억 원을 들여 수입해오고, 더 폭력적이고 외색이 짙은 게임을 아이들이 즐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왜 정부는 규제로 생겨난 여러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가."라며 "정부에서 하루 빨리 게임산업에 대해 규제에서 진흥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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