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와 뽑기만 보이는 모바일RPG,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모바일RPG 전성시대다. 현재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구글플레이 스토어의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50위 내에 있는 게임 중 모바일RPG가 총 23개로 5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장르는 전략이 6종, 퍼즐이 5종, 스포츠가 4종 등으로 모바일RPG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모바일RPG들은 타 장르에 비해 훨씬 더 매출 상위권을 오래 유지하고 있으며, 새롭게 출시되는 게임들 역시 모바일RPG가 타 장르에 비해 훨씬 더 많아 당분간은 모바일RPG의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타 장르보다 복합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RPG가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도 있었던 당연한 흐름이지만,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의 RPG 편중 현상은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이것저것 다양한 성장의 즐거움을 맛보는 진정한 의미의 RPG라기 보다는 강화와 뽑기 중심의 수집 게임으로 변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모바일 RPG는 크게 여러 캐릭터로 파티를 구성해 한턴씩 공격을 주고 받는 세븐나이츠, 서머너즈워 같은 형식의 턴제RPG와 캐릭터 혹은 장비를 육성해서 실시간 전투를 즐기는 몬스터길들이기, 블레이드 같은 형식의 액션RPG로 나뉜다. 턴제RPG는 여러 캐릭터가 소유한 스킬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고, 액션RPG는 액션게임처럼 직접 조작하면서 호쾌한 손맛을 느끼는 것이 재미의 핵심인 만큼 같은 RPG라고 하더라도 각기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현재의 모바일RPG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바로 게이머의 편의를 위해 삽입한 자동전투 시스템 때문에 각자의 핵심적인 매력을 게이머들이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장르의 차이가 직접 조작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다보니, 그것을 배제하면 캐릭터 혹은 장비를 뽑기로 획득하고, 그것을 강화를 통해 상위 등급으로 육성하는 것만 남게 된다. 즉, 게이머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뽑기 운과 강화 운을 시험하는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더구나, PVP나 PVE의 순위를 기반으로 차등 보상을 지급하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 더욱 더 과소비를 자극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새롭게 출시되는 게임들 역시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소재가 판타지, 무협, SF 등으로 바뀌고는 있으나 핵심 플레이 요소는 거기서 거기다. 게다가 기존 게임들은 계속해서 신규 캐릭터와 장비를 추가해 게이머들로 하여금 끝없는 소비의 무한루프로 이끌고 있다. 신규 모바일RPG들이 기존 게임을 제치고 매출 상위권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에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의 개발사들은 뽑기의 마력에 빠져버린 한국 개발사들과 달리 정통 RPG를 추구하고 있다.
작년 넷마블이 선보인 드래곤가드나 넥슨이 선보인 삼검호 등은 인스턴스 던전, 파티 플레이 등 온라인 MMORPG에서 즐길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를 즐길 수 있어 그래픽과 인터페이스 부분은 한국 게임에 비해 투박하지만 즐길거리는 훨씬 더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경험했듯이 콘텐츠 양이 RPG의 수명을 좌우하는 만큼 게이머들이 강화와 뽑기에 지치는 시기가 온다면 세련미가 조금 떨어질 수도 있더라도 콘텐츠가 더 많은 중국 게임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해 역시 에프엘모바일코리아의 오스트크로니클, 추콩코리아의 신세계:암흑군단의 침략 등의 게임이 출시됐으며, 웹젠의 뮤 오리진(전민기적), 넥슨의 천룡팔부3D, 퍼펙트월드코리아의 소오강호 모바일 등 중국산 모바일MMORPG들이 연이어 등장할 예정이다.
한국 개발사들이 계속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뽑기와 강화에만 집중한다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에 안방을 내줄 수도 있다. 지금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을 위협하는 것은 슈퍼셀 클래시 오브 클랜의 막대한 마케팅이 아니라 타성에 젖어버린 개발자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