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피터 몰리뉴는 갓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야 유명한 게임 개발자들이 많아져서 누가 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개발자인가를 꼽는 것이 무의미해졌지만 PC게임 초창기부터 게임을 즐겨온 사람들에게 세계 3대 개발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리차드 게리엇, 시드마이어, 피터 몰리뉴의 이름이 나오기 마련이다. 리차드 게리엇은 울티마 시리즈를 통해 RPG 장르를, 시드마이어는 문명 시리즈로 전략 시뮬레이션을, 피터 몰리뉴는 파퓰러스, 던전 키퍼 등으로 갓게임 장르를 확립시켰으니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전적으로 서양에서 그들에게 유명한 개발자들을 위주로 선정한 결과이니 만큼 미야모토 시게루가 왜 없냐고 따지지는 말자. 그리고 그는 그냥 게임의 신이다).


이 중 시드마이어는 여전히 문명 시리즈로 건재함을 알리고 있고, 최근에는 스타쉽이라는 새로운 신작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개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나머지 둘은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상황이다. 리차드 게리엇이야 다들 알다시피 RPG의 아버지에서 우주먹튀로 전직을 한 상황이고, 피터 몰리뉴는 블랙앤화이트까지만 해도 명성에 걸 맞는 모습을 보였지만 잠시 RPG에 대한 욕심을 부려 만든 페이블에서 지키지도 못할 말만 반복하다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게임 자체만 보면 판매량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게임성도 게임 자체만 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가 초창기에 말한 개발 방향과 실제 결과물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런 그가 페이블 시리즈의 실패 아닌 실패(?)를 뒤로 하고 새로 합류한 인디 스튜디오 22캔스에서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장르(자신이 창조했으니…)인 갓게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플랫폼은 마이크로스프트 퇴사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보이던 모바일. DeNA서울에서 최근 출시한 게임 ‘가더스’가 바로 그 게임이다. 가더스는 PC 스팀 플랫폼에서 모바일로 확장된 것이고, 모바일로 처음 등장한 갓게임도 아니지만, 장르의 창조자가 처음으로 모바일로 출시한 갓게임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퓰러스의 정신적인 후속작이라는 말 하나만 믿고 많은 사람들이 킥스타터에 참여한 것이 아니겠나.
가더스의 시작은 물에 빠진 남녀 둘을 구조하는 것부터다. 갓게임인 만큼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게이머는 근처에 있는 육지를 늘려서 물에 빠진 남녀가 올라올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며, 계속 지형을 움직여 두 사람이 정착할만한 땅으로 인도해야 한다.


넓은 지역이 나와서 집을 짓고 안착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갓게임의 형식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사람수가 일정 수가 넘을 때마다 카드 형태로 만들어진 더욱 더 다양한 능력들을 얻을 수 있다. 처음이야 낮은 지형을 조금 변화시키는 것 정도에 불과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산, 숲, 강을 만들어내거나, 비를 내리고 유성을 떨어트리는 등 르는 등 더욱 전지전능한 힘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카드만 얻으면 바로 전지전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잠금 해제할 수 있는 일종의 열쇠도 얻어야 하는데, 그 열쇠는 땅을 파면 나오는 상자에서 얻거나 여러가지 별도의 미션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신자들이 좀 더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형을 마음껏 변화시키는 것은 게이머에게 주어진 권능(이라고 쓰고 임무라고 읽는)이지만, 이것을 무한정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형을 움직일 때마다 화면 왼쪽 하단에 있는 분홍색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신자들의 신앙수치로 일정 시간마다 신자들이 머물고 있는 집을 클릭해서 수거할 수 있다. 즉,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신의 권능을 더 자주, 더 강력히 발휘할 수 있게 되며, 신자들이 좋아하는 행동(건설에 방해되는 불필요한 바위, 나무 제거 등)을 해도 얻을 수 있다. 뭐 잘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다른 게임에서 말하는 행동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 수를 꾸준히 늘려가다보면 항구를 발견하게 되고, 그 뒤부터는 이 게임의 새로운 재미가 시작된다. 항구에서 배를 클릭해 항해를 떠나면 다양한 섬을 방문하게 되는데, 섬에서는 일종의 퍼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임의 룰은 신자 5명을 신전으로 이끄는 것. 당연히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길이 막혀 있거나, 방해되는 적 챔피언들이 등장하는데, 지형을 변화시켜 신전까지 아무런 사고없이 도달해야만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물론, 자유롭게 지형을 움직일 수 있다면 아무런 재미가 없으니, 미션마다 신앙 포인트가 한정되어 있으며, 신앙 포인트를 적게 쓰고, 더 빠른 시간에 미션을 클리어하면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일정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면 위에서 언급한 특수능력 카드 등 여러가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한정된 시간 내에 머리를 써서 길을 만드는 재미가 있다. 예전에 레밍즈라는 게임을 즐겨해봤던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할만한 재미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그가 만들어온 기존 갓게임에서 추구하던 재미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지만, 실제 플레이해보면 그가 이 장르의 창조주라는 것을 배제하고도 가치를 인정할만한 재미가 있다. 모바일이라는 환경을 제대로 이해한 세련된 조작법 덕분이다.가더스에서는 화면을 가리는 버튼 인터페이스가 거의 없으며, 대신 손가락 두개를 활용해 자유롭게 모든 행동을 구사할 수 있다. 방해가 되는 땅을 끌어당기거나, 밀면 늘어나거나 없어지며, 신자들을 터치하면 그 근처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만약 더 먼 곳으로 이동시키고 싶다면 신자를 터치한 후 원하는 지역까지 끌어다 놓으면 된다. 화면 이동도 간단하다. 손가락 두개를 같은 방향으로 밀면 그 지점으로 시야가 이동하고, 손가락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밀면 원하는 각도로 화면이 돌아간다.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이 게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동작인 만큼 손가락을 사용해서 조작을 하는 것이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손으로 마음껏 조몰락거리는 느낌이다. 만약 이 것을 버튼 인터페이스로 했다면 이것과 똑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모바일에서 필수이지만, 피로감을 줄 수도 있는 소셜 요소도 적당히 만들어져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쉽게 멀티플레이에 연결할 수 있으며, 친구를 자신의 세계에서 일꾼으로 부리고, 친구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게임의 진행 과정을 비교할 수 있다. 또한 게임 진행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과도한 과금체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플레이하면 할수록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힐링게임의 표본이다.
물론, 모든 것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튜토리얼을 통해 안내를 해주고는 있지만 갓게임 자체가 가진 진입장벽을 해소시킬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편은 아니며, 손가락 조작이 많다보니 아직 스마트폰보다는 화면이 큰 태블릿에 더 어울리는 편이다. 더구나 게임이 상당히 무거운 편이라 성능이 낮은 스마트폰에서는 정상적으로 즐기기 힘들며, 게임이 많이 불안정한 편이라 조작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경우가 제법 많다. 게임성 자체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지만, 게임의 첫인상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이라 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장르 자체가 PC 플랫폼 시절부터 매니악한 편이라 요즘 유행하는 for Kakao 류의 게임만을 즐기던 사람들에게는추천하기 힘들지만, 가더스는 오랜만에 보는 플레이하면 할수록 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과 함께 하는 시간 내내 느낀 것은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피터 몰리뉴는 갓게임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