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엔씨소프트 연대기 4화 : 리니지2의 성공과 리차드 게리엇
[게임동아에서는 2015년을 맞이하여 게임 기업의 탄생부터 성숙기까지 더한 연대기형 특집 '기업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회사는 엔씨소프트로, 엔씨소프트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하여 정치, 인사, 경제 등 가능한 폭넓은 분야를 토대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 기사 내 대화는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각색한 것으로 현실과 다소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리니지2'의 성공은 엔씨소프트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내 게임업계 전체에게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국내 최초의 3D MMORPG를 상용화에 성공시켰다는 사실에 더해 동시접속자가 8만 명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후 불같이 일어난 한국 3D 온라인 게임의 붐을 만든 기폭제라 아니할 수 없었다. 또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도 '리니지' 이후 난립하던 각종 MMORPG를 뚫고 '리니지2'를 성공시킴으로써 요행이 아닌 진짜 실력을 갖춘 게임 개발사로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리니지2' 성공은 결과론적으로 엔씨소프트에게 큰 행복과도 같았지만, 탄생 전까지는 내부적으로 우려와 염려도 많았다.
우선 당시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는 '리니지2'가 이정도로 성공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리니지2' 사업계획서에 동시접속자 목표가 4만 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던 것이 이를 대변하며, 게이머들의 DB가 개별로 이루어져 있는 등 지금 기준으로는 개발 또한 최적화되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회사 분위기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리니지2' 출시 전부터 회사 내에서 '망하면 큰 일이다' 라며 리니지의 흥행이 길어질수록 불안에 떠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래서 당시 김형진(현재 상무, 좌) 씨와 배재현(현재 부사장, 우) 씨가 더 악에 받혀서 개발에 임했다고 한다.
"'리니지2'의 개발 멤버들이 그 당시에는 제대로 인정을 못받은 멤버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천재 프로그래머로 불리우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그정도로 단기간에 그만한 게임이 나올 수 있었죠."
"MMORPG에 적합하지 않은 언리얼2 엔진을 처음 쓰면서 그 프로그래머들이 없었으면 휴유.. 이건호 씨, 정연태 씨 등등.. 지금까지도 전부 한 프로그램 한다는 사람들이에요. '리니지1'보다 비교적 새로 영입한 개발자들에게도 소스가 잘 전달되는 것 또한 장점이었구요."
당시 엔씨소프트의 사업팀 소속이었던 담당자는 '리니지2'의 개발자들이야말로 천재에 가까웠다고 회상하며 그들이 있었기에 게임이 출시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리니지2' 개발팀이 완벽한 건 아니었다. 서비스 중간에 고객들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로그에 남겨지게 하는 등의 치명적인 버그가 생겨서 엔씨소프트 팀원들 전체가 전국 PC방을 찾아다니며 수습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엔씨소프트의 핵심 개발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김택진 대표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 또한 혼연 일체로 개발에 임했었다는 사실이었다.
"개발만 잘 된 것은 아닙니다. '리니지2'의 핵심 중 하나는 사업실이었어요. 국내 온라인 게임사에 '리니지2' 사업팀 또한 당연히 언급되어야 합니다."
'리니지2'는 풀3D 였으면서도 사양이 높아 당시의 보급형 그래픽카드로는 제대로 게임이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에 '리니지2' 사업실에서는 엔비디아 마케팅팀과 손을 잡고 '리니지2 PC' 마케팅을 펼쳤고, 이는 '리니지2'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에 국내PC게임 시장은 ATI가 더 선전하던 시장이었는데, '리니지2' 이후 엔비디아가 급속도로 점유율을 차지하기 시작해서 당시 마케팅 담당자였던 케이타 씨가 향후 에이펙 지사장까지 승진했다고 한다.
"사실 '리니지2' 서버나 시스템은 AMD를 썼지만, 이상하게도 그래픽카드를 AMD 것을 쓰면 정탄 터지는 효과 등이 엉망이었어요. 엔비디아 것을 쓰면 칼에서만 잘 터지고.. 지금 생각해도 참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죠. (웃음)"
여기에 '리니지2' 사업팀은 메이저 음료인 코카콜라와의 제휴 마케팅 등 '리니지2' 사업팀은 계속해서 사회에 이슈를 만들어내며 '리니지2'의 성공에 이바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여러가지 제휴 마케팅이라는 게 굉장히 흔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없던 혁신이나 마찬가지였던 터라 마케팅적으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리니지2'의 개발 전후로 엔씨소프트는 큰 사건과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리차드 게리엇의 영입, 그리고 뒤이은 송재경 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의 사퇴였다.
우선 엔씨소프트는 앞서 밝힌 그대로 '리니지2'를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갑론을박 개발 방향에 대한 토론이 난립하는 가운데, 결국 '리니지2'는 배재현, 김형진 씨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고 '리니지2'에 대해 다른 개발 방향을 제시하던 송재경 부사장은 북미 시장을 총괄하며 떠나게 된다.
이렇게 북미에 나가 있던 송재경 전 부사장은 리차드 게리엇이 EA와 결별했다는 사실을 김택진 대표에게 알리며 엔씨소프트로의 영입을 시도하게 되고, 결국 2001년 자사의 미국 현지 법인인 엔씨 오스틴 개발 총괄이사로 리차즈 게리엇을 임명하게 된다.
사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만큼 큰 사건이었는데, 이유는 당시에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엔씨소프트라는 회사로 리차드 게리엇 같은 거물이 이직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차드 게리엇은 당시 '울티마'의 아버지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입된 리차드 개리엇은 '타뷸라 라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고, 송재경 전 부사장은 '타뷸라 라사' 프로젝트 초기에 고문 겸 어드바이저로 참여하다 3D 쿼터뷰 타이틀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2002년 '리니지 포에버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과 미국에 개발팀을 꾸리게 되었다.
'타뷸라 라사'와 '리니지 포에버' 이 두 작품은 '리니지2'와는 별개로 엔씨소프트의 차기작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2002년 도쿄 게임쇼에서 김택진 대표는 2003년 '타뷸라 라사'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엔씨소프트는 2002년 12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의 핵심 개발자로 구성되어 있는 미국의 아레나넷을 인수하면서 장기적인 해외사업 레이스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며, 이는 향후 '길드워'로 이어지는 북미 시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엔씨소프트의 북미 지역 비즈니스가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송재경 전 부사장은 '타뷸라라사'를 리처드 게리엇에게 일임하고 ‘리니지 포에버’ 프로젝트에 전념키 위해 귀국한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송재경 전부사장은 김택진 대표와 '리니지2' 개발 이견 등으로 갈등을 겪었고, 결국 2002년 송재경 전부사장이 자신의 본인의 보유 지분 0.73% 매각하며 엔씨소프트와 결별 수순을 밟아 2003년에 정식으로 사임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엔씨소프트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가운데에도 주가가 오히려 더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반대로 '리니지2'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며 그 해 게임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는 등 다양한 변곡점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 5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