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즐기는 일본 RPG의 전설, '드래곤 퀘스트 히어로즈'
지난 5월 '굿게임쇼 코리아 2015'에 참가한 SCEK의 부스에서 게이머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 히어로즈: 암룡과 세계수의 성'(이하 '드퀘 히어로즈') 자막 한글 버전이었다. 스퀘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1986년 첫 작품이 나오고 본편 넘버링만 10편, 여기에 더해 수많은 파생 작품들이 나온 시리즈로, 일본에서는 국민 롤플레잉게임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시리즈 최초의 크로스오버 시도 작품, 동시에 최신작인 '드퀘 히어로즈' 자막 한글 버전으로 발매됐다. 지난 2014년 9월 SCEAJ 사장이 컨퍼런스 말미에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아버지 '호리이 유지' 디렉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SCEK 사장이 게임 안에 등장하는 슬라임 모양의 모자를 쓰면서까지 성의를 다해 국내 출시를 발표한 그 작품이다. 여기에 국내 첫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작품의 자막 한글 버전 출시란 의미까지 짊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이 붙어 다니는 만큼 '드퀘 히어로즈'는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될 작품이었고, 실제로 만만치 않은 작품으로 나왔다. 먼저, 저장을 뜻하는 모험의 서, 크리티컬을 표현하는 회심의 일격, 이 회심의 일격 확률을 의미하는 손재주처럼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다면 생소할 고유명사부터 철저하게 지켰다.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주문과 특기 명칭도 전부 수록, 효과 역시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기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단골 콘텐츠인 소재나 장비를 교환할 때 쓰는 작은 메달 시스템, 아이템 합성을 담당하는 연금 가마솥, 파티를 관리하는 장소인 루이다 주점도 등장한다.
이런 부분에서 게이머는 단순히 기존의 OST를 리메이크하고 토리야마 아키라의 일러스트를 수록하는 면피성 이식을 거부한 제작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드래곤 퀘스트 9'를 통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액션 롤플레잉게임에 도전하기 위해 무쌍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테크모의 '팀 오메가 포스'까지 끌어들인 파격을 저지르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일찍이 접하기 어려운 조건을 뚫고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즐겨왔던 국내 게이머라면 감격할 부분이다. 시리즈 전통의 몬스터 수십 종을 '드퀘 히어로즈'에 맞게 다시 디자인해서 수록한 정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드퀘 히어로즈'의 가장 큰 개성과 이어진다. '드퀘 히어로즈'의 전투는 특정 대상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동료의 AI가 못 미덥다 해서 게이머가 파티에 소속된 캐릭터 4명을 번갈아 사용하기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몬스터 코인이다. 필드에서 몬스터를 물리쳐 일정 확률로 등장하는 몬스터 코인을 얻으면 해당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까지 동료로 조종할 수 있다. 본편, 파생작 안 가리고 몬스터와 협력하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방향성과 일맥상통한다. 이 몬스터 코인으로 부른 동료 몬스터는 능력치 회복이나 특정 공격 효과를 주며 조작 캐릭터를 돕는 어시스턴트 타입, 자리를 지키며 직접 적들과 싸우는 나이트 타입으로 구분해 활용할 수 있다. 능력이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몬스터가 강력할수록 코인 인벤토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몬스터 코인의 사용법은 게이머의 고민거리인 동시에 즐거움으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드퀘 히어로즈' 공개 직후 입에 오르내렸던 일명 '드퀘 무쌍'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전장과 베이스를 오가는 단순한 이동경로, 두 가지의 공격 버튼으로 연계 패턴을 만드는 전투 방법, 텐션 게이지를 모아 필살기를 사용, 주둔지와 전투 필드를 오가는 모습을 보면 무쌍 시리즈의 플레이 패턴과 비슷하다. 그러나 스킬 포인트를 모아 능력치나 기존 기술의 강화할 수 있을 뿐 기술 패턴이 다양해지진 않고, 공격을 맞으면 롤플레잉게임처럼 피해 수치가 화면에 나타나는 점이나 일반 기술의 조합보단 메뉴를 열어 버튼 조합으로 발동하는 MP 소모형 특기가 더 편리한 점에서 게이머는 무쌍 시리즈와 다른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투 중에는 개인 행동으로 개개의 미션을 클리어하기 보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파티 구성원이 협력해야 하며, 역경을 이겨내고 하나둘씩 동료를 모아가 클라이막스로 향해가는 왕도적 스토리도 원작의 재현에 중점을 두는 무쌍 시리즈 게임에선 생소하다.
플레이 방법 역시 무쌍 시리즈와 다르다. 조작 실력만 믿고 무작정 달려들면 게임 시작 직후에 만나는 드래곤에게 게임오버 당하기 쉽다. 따라서 게이머는 몬스터를 불러들이는 마물문의 파수꾼을 물리쳐 몬스터들의 추가 유입을 막고, 협력 몬스터부터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적마다 설정된 약점 위치나 속성에 맞춰 파티 플레이를 진행해야 원활한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유효 수단은 있을지언정 어떤 공격 수단을 사용해도 효과가 있던 무쌍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만약 무쌍 시리즈가 이런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면 게이머들로부터 속도감 저하, 무쌍 시리즈의 정체성 훼손 등의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드퀘 히어로즈'에 저런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서브 퀘스트나 육성용 반복 전투 없이 엔딩까지 갈 수도 있는 난이도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몬스터를 물리쳐 얻는 아이템 납품, 특정 몬스터 일정 횟수 토벌, 본편과 상관 없는 전투에서 승리, 강적 토벌 등 게임 내 콘텐츠를 자진해서 플레이한다. 그 이유는 스토리 진행만이 아니라 보상과 업적을 얻고, 플레이 시간에 비례해 강해지는 캐릭터를 확인하는 것도 '드퀘 히어로즈'를 플레이하는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게이머는 '드퀘 히어로즈'가 액션게임보다 롤플레잉게임에 더 가깝다고 체감한다.
플레이 동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롤플레잉게임에선 명분이 큰 힘을 발휘한다. 똑같은 강적과 싸우더라도 밸런스가 안 맞아 시가상조로 싸우는 강적인지, 스토리 최종보스인지, 숨겨진 고 난이도 보스인지에 따라 게이머의 태도가 달라진다. 롤플레잉게임의 기본인 역할극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드퀘 히어로즈'의 왕도적 스토리는 그 명분을 충분히 제공한다. 갑자기 하나의 세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게이머는 개연성을 따지는 대신 세계가 혼란에 빠뜨린 악당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명분 하에 게이머는 타워 디펜스도, 연속 전투도, 1대1 이벤트 전투도, 시간제한 탈출극도 전부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주둔지에서의 NPC 대화와 편지를 통해 듣는 스토리, 퀘스트의 후일담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액션이 재미없느냐면 절대 아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제외하면 조작 캐릭터 숫자가 10명 내외이긴 하지만 캐릭터끼리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또한, 격투, 검, 채찍, 도끼, 활 등등 사용 무기가 다르면 액션 시스템 자체가 달라져 게이머는 캐릭터 하나의 운용방법을 숙지하기까지 적잖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물론 해당 캐릭터에 숙달이 되면 그 노력에 상응하는 장점이 반드시 부각된다.
따라서 활용하기 어려운 약체 조작 캐릭터란 건 없으며, 4인 파티가 캐릭터 조합에 따라 다방면으로 바뀐다. 또한, 상당수 게이머들에겐 생소하겠으나 참전 캐릭터 모두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다라 그 특징이 기술과 필살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예를 들어 말로만 최강의 검사던 '드래곤 퀘스트 6'의 테리가 진짜 최강의 검사가 되어 진공베기와 송골매베기로 적들을 유린하며 지고 스파크로 보스를 평정하는 모습에 안 뒤집어진 시리즈 팬이 없다 하더라.
다만 재미와 별개로 '드퀘 히어로즈'가 완벽하진 않다. 먼저 온라인 콘텐츠가 거의 다 사라진 점이 아쉽다. '드퀘 히어로즈'에게 온라인 환경이란 특정 기간에 골드 획득이 20% 늘어나거나 희귀 소재 등장 확률 올라가는 조건에 불과해 업데이트와 DLC 구입할 때나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상점에 팔 수 없는 일부 고급 장비들은 엔딩 이후 2회차 계승이 불가능한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도 게이머들에겐 이런 단점보다 '드퀘 히어로즈'에 거는 기대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드퀘 히어로즈' 일본어 버전을 플레이한 게이머의 경우 해당 저장 데이터를 가지고 자막 한글 버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드퀘 히어로즈'는 일본어를 모르는 게이머가 플레이해도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전투, 알기 쉬운 육성 시스템, 흥미진진한 스토리 연출로 게이머를 사로잡는 수작 액션게임이다. 이 '드퀘 히어로즈'의 자막 한글 버전 출시로 더 많은 게이머들이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