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2015 게임업계 상반기 편
많은 사람들의 한숨을 유발하는 시기. 평소엔 자신의 행적에 관심이 없던 이들 조차 한번 정도는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기. 연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올 한해 국내 게임업계는 여러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뷔페에 가면 먹을 것이 잔뜩 있지만 유난히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고, 걸그룹 멤버가 모두 예쁘더라도 유독 내 눈에 더 예쁘게 보이는 멤버가 있기 마련이듯, 올해 국내 게임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식 중에도 유난히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소식이 있기 마련이다.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나는 사실 뷔페에서 만두를 집중적으로 먹는 편이야.
조영준 기자(이하 편드는 놈): 중국 출장 갔을 때 호텔 뷔페에 비치된 만두 선배가 집중적으로 집어먹어서, 주방 관계자들이 선배만 보면
수근거리면서 만두 만들기 시작했다면서요.
조광민 기자(이하 말리는 놈): 갑자기 무슨 자기 입맛 이야기를 하고 그래요. 게다가 만두를 얼마나 먹었길래 요리사들이 선배만 경기
일으키듯이 만두를 만듭니까?
까는 놈: …중국집에서 만둣국에 물만둔, 군만두 시켜서 만두로 자기 뱃속을 만두 속 채우듯이 꽉꽉 채우는 사람이 할 소리냐?
편드는 놈: 만두 얘기 그만하죠. 이러다가 만두로 분량 다 채우겠어요. 오늘 상반기 결산하기로 한 것 아니었어요? 상반기에 이슈가 얼마나 많았는데 언제까지 만두 얘기만 할 거에요 -_- 그리고 예시로 걸그룹 얘기도 했는데 무슨 남자들이 걸그룹 얘기는 하지도 않고 만두 얘기만 하고 있어.
까는 놈: 만두는 내가 손 내밀 때 항상 곁에 있고, 우리 집 냉장고 속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지만걸그룹은 그렇지 않거든? 만두가 걸그룹보다 대단해.
그건 그렇고… 네 말대로 올해 업계에 일이 많기는 많았지. 각자 상반기에 있던 일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볼까? 나는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갖고 펼쳐진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이 가장 기억에 남네. 경영권 분쟁이라는 게 항상 시끌시끌한 이슈이긴 한데, 그 주체가 국내 게임업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들이니 아무래도 관심이 더 갈 수 밖에 없었어.
편드는 놈: 기억을 되짚어보기 위해 간략하게 사건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월 27일에 넥슨이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엔씨소프트의 주식 15.08%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것을 공시했어요.
그리고 약 3주 후인 2월 16일에는 엔씨소프트가 CJ E&M 넷마블의 주식 9.8%를 인수했고, 그 다음날에는 자사가 갖고 있는 자사 주식 8.9%를 넷마블에 넘겼죠. 이 과정을 통해 넷마블이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가 됐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우호지분 18.9%를 만들었죠.
까는 놈: 상반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하반기에도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끌었어. 10월 15일에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블록딜 형태로 전량 매각했거든. 사실상 둘이 결별한 거지. 둘이 손 잡은 지 3년만에 벌어진 일이야.
말리는 놈: 업계의 거물이 서로 함께 하고, 짧은 기간 동안 지속적인 불화설을 남기다가 결국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 하고 갈라서는… 헐리우드 스타 커플의 일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보는 듯한 사건이었어요.
까는 놈: 개인적으로는 게임 그 자체에 관심이 있고, 게임업체들의 행보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기는 한데… 그런 나도 관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겠나 싶어.
말리는 놈: 3월에 발의된 게임산업법 개정안도 상반기 최대 이슈 중 하나였어요. 어째 1월부터 3월까지 화제가 빼곡했네요.
편드는 놈: 흔히 말하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 이야기네요.
까는 놈: 3월에 발의된 법안이 지난 11월 24일에야 상정됐으니, 아직 시행여부도 불투명하고 시행 시기도 제법 많이 남았지만 게임업계의
매출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이며, 게이머들이 굉장히 큰 불만을 지니고 있는 부분을 직접 건드리는 법안이라 기업과 게이머들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았지.
말리는 놈: 일단은 게임의 사행성을 줄이고 과소비를 억제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명분이에요. 특히, 랜덤박스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와 각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게이머들의 큰 지지를 받았죠.
편드는 놈: 의도와는 다르게 법안 자체의 내용이 굉장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개선될 부분이 많은 법안이기는 해요.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도 많구요.
까는 놈: 법안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법안이 갖고 있는 부정확한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지, 취지 자체에는 공감을 하는 경우가 많아. 규제 법안에 게이머들이 이렇게까지 우호적으로 나온 경우가 있나 싶어.
말리는 놈: 그만큼 쌓인 게 많았다는 풀이가 되겠죠. 뭐, 게임사들도 법안 발의 소식을 듣고 자정 움직임을 취하고 있기도 하니 나름대로
긍정적인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까는 놈: 퍽이나 자정의 움직임을 표하고 있다. 법안에 따른 규제가 아닌 업체 스스로의 자율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데.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업체들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부터 따지는 게 순서가 아닐까?
자율규제 이야기가 몇 년 전에도 있었는데, 그 결과물이 지금 게임 시장의 ‘랜덤박스’ 형태라면 자율규제를 믿고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어.
말리는 놈: 하지만 업체가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운다면 될 문제가 아닐는지..
까는 놈: 강제로 시키는 자율학습도 땡땡이 치고 도망가던 놈들이 무슨 규제를 자율적으로 하자는 소리를 하고 있어. 자율배식하면 동그랑땡은 다
집어가고 무말랭이는 잔뜩 남겨놓는 게 인간의 본질이야. 결국 자신들에게 득이 가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고.
편드는 놈: 실제로 법안 발의 이후에 업계에 드러난 자율규제 행보는 게이머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기도 했어요. 확률을 공개하랬더니 1% 미만,
5% 미만으로 표기를 하고, 아이템의 종류도 뭉뚱그려서 묶어놓고 말이죠.
까는 놈: 허니버터칩에 꿀 함유량이 0.01%인데, 그걸 포장지에 ‘꿈 함유량 1% 미만’이라고 표기하는 거랑 같은 꼴이잖아. 게임
운영진들도 실소를 지을 걸? 진짜 자기들 월급도 랜덤박스로 받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말리는 놈:그러고보면 확률성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 거의 과자에 들어간 꿀 함유량과 비슷한 수준이군요.
편드는 놈: 이 법안은 법안 자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게임업계에 유행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게이머들이 얼마나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지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었던 거 같아요.
까는 놈: 영준이는 뭐 기억에 남는 거 없나?
편드는 놈: 게임업계에 IP 활용 열기가 후끈후끈 했습니다. 단순히 기존의 인기 IP를 활용한 게임을 개발하는 모습이야 과거에도 많았지만,
올해부터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IP 그 자체를 판매하고, 이를 통해 수익 배분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업체가 많아졌어요.
말리는 놈: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IP 관련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부쩍 많아졌구요. 특히 중국에서 한국의 IP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죠.
까는 놈: 개인적으로는 ‘IP라는 꿀통에 빨대를 꼽았다’라고 평가하는 모습들이야.
편드는 놈: 참… 표현 고급스럽습니다.
까는 놈: 틀린 말은 아니잖아. IP 사용 권한을 개발사에 넘겨주고, 개발사가 게임을 개발한 후에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받는건데… 얼마나 안정적이냐. 때 되면 임대료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건물주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편드는 놈: 웹젠 덕분에 이런 시류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네요. 뮤 온라인의 IP를 통해서 중국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얻고 있으며, 해당 게임을 국내에 ‘뮤 오리진’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해서 한국에서도 수익을 만들면서 좋은 분위기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죠.
말리는 놈: 하지만 이런 시류가 자리잡은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약 1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IP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웹젠과 같은 성공사례가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어요. 물론 여전히 수면 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많은 기업과 게임들이 있지만요.
까는 놈: 그런 게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슈가 아닐까? 다들 새로운 판로를 뚫지 못 해서 고민이 많던 시기에, 이런 길도 있다는 게 알려진 거잖아. 그 길로 간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 특히 요즘처럼 희망을 찾기 힘든 시대에는 말이야.
- [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2015년 게임업계 하반기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