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25년간 이어온 로봇 외길 인생' 슈로대의 발자취- 1화
만약 마징가Z와 겟타로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게임동아 조영준 기자] 과거 로봇 만화를 본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토론해본 주제 중 하나다. 만화를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넌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때 본능에 이끌려 로봇에 환호하는 시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충분히 갑론을박을 벌일 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남자들끼리의 술안주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주제를 실제로 구현해 낸 게임이 있다. 바로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슈퍼로봇대전(이하 슈로대) 시리즈가 그 주인공.
'로봇들의 격돌'이라는 단순한 배경에서 시작한 슈로대는 1991년 4월 20일 게임 보이로 발매된 '슈퍼로봇대전'부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총 90개에 달하는 작품과 누계 출하량 1천 6백만 장(2016년 1월 기준)을 기록한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중 하나다.
슈로대의 인기 요소는 바로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로봇들을 실제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징가Z, 겟타로보, 철인28호 등의 70~80년대를 수놓은 추억의 애니메이션부터 오랜 역사를 지닌 건담 시리즈 그리고 수많은 로봇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아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어린이들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이 슈로대의 특징.
이렇게 수 많은 회사에서 발매된 로봇들을 하나의 게임에 등장시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제작사 반프레스토가 일본 굴지의 완구 회사이자 수 많은 애니메이션의 저작권을 지닌 반다이의 산하 회사이기 때문으로, 다른 회사라면 저작권료 때문에 엄두도 못 낼 작품들이 매년 새롭게 참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막강한 지원에 힘입어 슈로대는 실제 작품에 등장한 성우들이 참여한 것은 물론, 원작 고증에 충실한 화려하게 보여주는 로봇들의 기술 연출과 다양한 작품의 세계관을 크로스오버(활동이나 스타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 걸친 것- 네이버 백과사전)를 통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날 수 있어 원작을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욱 즐거운 콘텐츠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듯 매력인 콘텐츠를 지닌 '슈로대'지만, 수 많은 대사가 등장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임에도 그 동안 일본어로만 출시되어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높은 게임으로 인식되기도 한 것이 사실. 실제로 이 게임을 하려고 일본어를 독파한 사람도 상당수 존재했고, 초창기 작품의 경우 자체 한글패치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많은 슈로대 팬들에게 한글화는 오랜 염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2월 13일.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 공개한 슈로대의 신작 '슈퍼로봇대전 OG 문 드웰러즈'가 시리즈 최초로 자막 한글화로 출시를 발표했다. 오랜 시간 이어온 팬들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비록 오리지널 캐릭터만 등장하는 OG 시리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5년간 수 많은 소년과 이제는 중년이 된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며 '로봇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선보인 슈로대. 과연 이 게임은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게이머들을 열광케 했을까?
슈로대 시리즈는 크게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개발을 맡은 윙키 소프트와 반프레스토가 개발한 2000년대부터 이후의 작품으로 시기가 나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반프레스토는 유통, 기획 전담 회사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닌 일부 직원이 투입된 '반프레소프트'라는 자회사에서 개발을 맡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현재 '반프레소프트'는 반다이 산하 개발팀으로 활동 중이다.)
윙키 소프트에서 개발한 슈로대는 게임성, BGM 부분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지만, 스토리와 밸런스 부분에서 평가가 좋지 못하며, 2000년대부터 반프레스토가 개발을 맡은 슈로대는 스토리와 연출은 호평을 받고 있지만, 게임성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더욱이 워낙 오랜 기간 동안 이어온 시리즈이다 보니 올드 게이머들이 많아 걸핏하면 과거와 현재의 슈로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물론 제 3자가 볼 때는 '옛날 게임 다시 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상관인가?'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슈로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통해서였다. 1991년 4월 20일 발매된 '슈퍼로봇대전' (편의상 '제1차 슈로대'로 표기)은 당시 반프레스토가 개발한 다양한 크로스오버 작품 중 하나로 기획되어 윙키 소프트에서 제작을 맡았다. '제 1차 슈로대'는 로봇 위주가 아닌 여러 작품의 시나리오가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방식이었고, 이마저도 마징가 시리즈에 집중되어 있어 스토리 상으로는 큰 매력이 없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마징가와 건담이 함께 싸운다는 설정과 원작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 다는 것 만으로도 '제 1차 슈로대'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내 높은 판매량를 올리며 속편을 기다리는 이들을 속출하게 만든다.
첫 게임부터 대박을 기록한 기세에 힘입어 1991년 12월 윙키 소프트는 두 번째 작품인 '제2차 슈퍼로봇대전'을 패미컴 버전으로 발매한다. 휴대용 게임기가 아닌 거치용 게임기로 등장한 '제 2차 슈퍼로봇대전'은 파일럿이 등장한 것은 물론, 다양한 효과를 주는 '정신' 시스템이 도입되어 더욱 전략성을 높였으며, 훗날 마장기신 시리즈로 분류되는 오리지널 유닛인 사이버스터, 그랑존이 추가되는등 사실상 시리즈의 기틀을 잡은 게임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이 때문에 시리즈의 시작을 이 '제 2차 슈퍼로봇대전'으로 보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할 정도.
이렇듯 많은 공을 들인 기념비 적인 게임이었지만 사실 '제2차 슈퍼로봇대전'은 저조한 판매량으로 시리즈 중단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부진했다. 무려 전편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판매량이 줄었는데, 거치형 기기인 패미컴으로 출시되어 판매량이 낮아진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극악의 게임 밸런스'였다.
슈로대는 크게 강력한 대미지와 방어력을 지닌 마징가Z 등의 슈퍼로봇과 높은 회피율로 전장을 헤집는 건담 등의 리얼로봇으로 나뉘는데, '제2차 슈퍼로봇대전'은 리얼로봇의 효율이 너무 좋아 슈퍼로봇은 거의 찬밥 취급일 정도였다. 더욱이 적들의 HP와 레벨이 너무 높았고, 심지어 최종 보스전에 등장하는 '그랑존'은 게임 역사상 역대급 사기 보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말도 안되는 능력을 보여줘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한 게임이기도 했다.
이는 윙키 소프트에서 개발한 슈로대 시리즈에서 지속적해서 지적된 단점 중 하나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해 게임을 일부러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큼 이 시기 슈로대의 난이도 밸런스는 사실상 실패에 가까울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이렇듯 판매량이 반토막 난 '제 2차 슈퍼로봇대전'은 1995년 6월 시리즈 최초의 리메이크 작품의 소재가 되는데, 이 작품이 바로 시리즈 사상 가장 낮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제2차 슈퍼로봇대전 G'다. 이 '제2차 슈퍼로봇대전 G'는 G건담, V건담이 최초로 등장했으며, 게임 내 등장하는 적들의 능력치가 굉장히 낮아 그야말로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정도였다. 높은 난이도로 악명을 얻은 게임의 리메이크가 시리즈 역사상 가장 낮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G'는 자체 한글화가 진행된 게임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이 게임으로 슈로대에 입문하는 국내 게이머들도 많았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으로 실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든 윙키 소프트는 그야말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개발에 몰두하여 2년뒤 1993년 7월 슈퍼 패미컴으로 '제3차 슈퍼로봇대전'을 출시한다. 이 게임마저 실패하면 사실상 시리즈의 명맥이 끊기는 상황이었지만, '제3차 슈퍼로봇대전'은 1편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높은 판매량을 견인해 히트 시리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역대 가장 뛰어난 슈로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제3차 슈퍼로봇대전'은 이전까지 슈퍼 패미컴에서 보지 못한 뛰어난 모델링과 연출, 지금 봐도 무난할 정도의 감각적인 캐릭터 디자인 등 여러 모로 발전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울러 이 게임은 본격적인 참전작 예고, 잡지, 커뮤니티 사이트 등의 홍보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게임의 판매량가 점차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인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윙키 소프트는 본격적으로 마장기신 등 오리지널 스토리를 메인 시나리오로 삼은 외전 격의 작품 '슈퍼로봇대전 EX'(1994년 3월 발매)를 거쳐 1995년 3월 마지막 슈퍼 패미컴의 작품이자 'X차' 시리즈의 완결편인 '제4차 슈퍼로봇대전'을 선보인다.
그리고 닥쳐온 CD-ROM의 시대. 더욱 커진 용량과 이전보다 진화한 성능을 지닌 기기가 등장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윙키 소프트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1996년 1월 '제4차 슈퍼로봇대전S'를 발매한다. 이 '제4차 슈퍼로봇대전S'은 여러모로 이전보다 큰 발전을 거둔 작품이었다. 시리즈 최초로 전투 음성(!)이 등장하여 성우들의 참여가 슈로대 판매에 한 축을 담당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오프닝이 추가된 것은 물론, 로봇의 BGM이 턴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계속 울려 퍼지도록 하는 등 현재 슈로대의 모습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새로운 기기의 성능에 고무된 것일까? 윙키 소프트는 야심 차게 모든 유닛을 SD가 아닌 등신대 캐릭터를 등장시킨 '신 슈퍼로봇대전'(1996년 12월 발매)를 선보였지만, 살인적인 로딩 속도와 전혀 감흥이 없는 전투신 등으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이 당시 슈로대는 1990년대 치열하게 진행됐던 플레이스테이션(PS), 세가세턴, 닌텐도64의 전쟁에 큰 무리 없이 적응한 게임사 중 하나였다. 지금의 멀티 플랫폼 발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당시 게임들은 거의 하나의 게임기에만 발매되었고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다른 기종으로 이식되고는 했는데, 슈로대는 이 세 기종 모두에 각각 게임을 출시하면서 이 게임기 전쟁의 시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실제로 '슈퍼로봇대전 F'는 역대 최고의 BGM을 장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7년 세가세턴 버전으로 발매되었고, 1년 후인 1998년 PS버전으로 이식되기도 했다.(그리고 이식된 PS버전은 BGM이 대거 너프되며 역대 최악의 이식 작으로 기록된다.) 이 게임은 당시 불어 닥친 에반게리온 열풍에 힘입어 에바가 전격 참전했고, 마징가Z의 상위 로봇인 '마징카이저'가 등장하는 등 다수의 화제작이 참전했다.
하지만, 또 다시 슈퍼로봇의 효율성이 리얼로봇에 비해 굉장히 낮아졌고, 몇몇 유닛을 빼고 쓸 일이 없을 정도로 밸런스가 붕괴되었으며, 일반 적군 HP가 1만이 넘는 등의 높은 난이도까지 겹치며, 게임 자체는 굉장한 혹평을 받았다. 더욱이 후속작으로 나온 '슈퍼로봇대전 F 완결편'은 원작이 없으면 전반적인 불이익을 받는 등 여러 모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며,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하지만 이미 슈로대는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팬들 덕에 기본 50만 장은 판매되는 '하프 밀리언' 시리즈로 거듭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동안 슈로대 시리즈를 개발해온 윙키 소프트는 이 '슈퍼로봇대전 F' 이후 1999년 6월 발매한 '슈퍼로봇대전 컴플리트박스'를 마지막으로 슈로대 시리즈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렇다고 마지막 작품을 잘 만든 것도 아니어서 2차, 3차 그리고 EX까지 이전 작들을 새롭게 리메이크한 '슈퍼로봇대전 컴플리트박스'는 완전히 붕괴된 난이도 밸런스와 극악의 로딩 시간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밸런스를 잡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래도 반프레스토와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닌지 2010년 마장기신 리메이크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윙키 소프트와 결별한 반프레스토는 새로운 개발사 마네기를 통해 새로운 슈퍼로봇대전을 닌텐도64로 출시하니 이 작품이 바로 역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슈퍼로봇대전 64'다. 1999년 10월 발매된 '슈퍼로봇대전 64'는 여러 대의 로봇이 한번에 공격하는 합체 공격을 최초로 구현한 것은 물론, 빠른 로딩 그리고 치밀한 스토리, 뛰어난 주인공 시스템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인 게임이었다. 더욱이 여러 루트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음과 동시에 어느 루트로 가더라도 난이고 걱정을 할 필요 없을 만큼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여기에 휴대용게임기 게임보이 컬러 용 게임 '슈퍼로봇대전 링크배틀러'과 연계되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등 그야말로 이전까지의 슈로대와 비교를 불허하는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게임으로 명작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재미를 선보인 '슈퍼로봇대전 64'를 개발한 마네기는 이 게임을 선보인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마네기가 닌텐도와 허드슨의 공동 출자 + 반프레스토 직원들로 이뤄진 급조된 회사였기 때문.
당시 서드파티의 확보에 열을 올리던 닌텐도는 반프레스토에 협조하는 대가로 게임을 닌텐도64에 출시하기로 했는데, 이 공동 출자에 허드슨이 낀 것이 문제였다. 바로 허드슨이 이후 반다이의 최대 라이벌 회사인 코나미로 인수 합병 된 것. 출자 회사를 인수하면서 '슈퍼로봇대전 64'의 저작권 일부를 가지게 된 코나미가 반다이의 핵심 게임 라인업인 슈로대를 호락호락 놔둘 리가 없었고, 개발은 이내 난항을 겪게 된다. 캐릭터 저작권이 그 어떤 게임보다 중요한 작품에 이 회사, 저 회사가 모두 각각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인 셈.
때문에 역대 최고의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꼽히는 '슈퍼로봇대전 64'은 이후 시리즈에 등장하지 못했으며, 이 작품에 등장한 오리지널 로봇 역시 이름과 외형이 비슷하지만 다르게 출시되는 변화를 겪기도 했다.
윙키 소프트와의 결별과 마네기의 복잡한 저작권 논란에 휘말린 반프레스토는 산하 개발사 '반프레소프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슈로대 시리즈를 발매하게 되는데….
[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25년간 이어온 로봇 외길 인생' 슈로대의 발자취- 1화는 2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