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RPG에 올인하는 모바일 게임업계, 갈라파고스 현상 심화된다
[게임동아 조학동 기자] "RPG 개발 경력이 없으시네요? 아무래도 어렵겠는데요."
최근 만나본 한 게임 기획자. 과거 캐주얼 게임으로 매출 10위도 찍어보고, 다른 게임 기획자들이 '게임 잘 만들려면 어떡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정도로 실력이 있지만 최근 이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한 기획자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을 위해 런 게임과 퍼즐 게임을 개발하고 런칭했던 이 기획자는 '일단 기획서를 제출해보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을 듣고 "좋은 퍼즐게임 만드는 게 하루 아침에 되는 줄 아느냐."며 면접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업계에서 이런 일을 당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모바일 RPG와 관련된 포트폴리오가 없어서다. 타 장르에서 눈에 띌만한 포트폴리오가 있다고 해도 RPG 경력이 없다면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게 현 게임업계의 현주소다. RPG가 아닌 장르를 작업했던 개발자들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던 상황이었지만 최근은 분위기가 확 다르다. RPG 경력이 없으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은 RPG 세상이다. 큰 회사들을 비롯해서 작은 회사들까지 새로운 게임을 기획할 때 '어떤 RPG를 만들것이냐'가 주제이지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이냐'가 주제가 되지 않는다. 주변의 헤드헌터들도 'RPG 만드는 사람만 찾고 있다'고 연락을 해올 정도다.
사실 이러한 시장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 안드로이드 기준으로 게임매출 1위부터 30위 사이를 살펴보면 2/3 이상을 RPG가 차지하고 있다. 상위 1~30위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 빗대어 볼 때 RPG의 위력이 어느 정도 인지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개발사들은 RPG로 장르를 편중시키는 이유로 '부분유료화의 용이성'과 '퍼즐게임 개발의 어려움'을 꼽는다. RPG는 설정을 하기 쉽고 과금 요소를 만들기가 쉬운 반면 캐주얼 게임은 이용자들이 꾸준히 싫증을 느끼지 않고 즐기게 할 만한 아이디어나 과금요소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
퍼블리셔도 일단 국내 매출 중심으로 사업을 해나가는 만큼 RPG 우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개발사들 역시 "RPG가 아니면 투자 문의도 넣지 말라는 투자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RPG로 방향을 틀었다."며 RPG 편중 현상이 어쩔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바일 RPG 열풍이 국내와 중국 시장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시장에서도 RPG에 대해 반향이 있지만 시장이 너무 작고, 큰 시장인 북미와 유럽, 일본 등에는 아직도 캐주얼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어 RPG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RPG를 개발하면 출시할 때 한국 시장과 중국 시장을 주로 노려야 하는데, 일단 중국 시장은 난공불락이다. '몬스터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등 국내에서 인기 있던 RPG도 중국 시장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한때 국내를 석권했던 '블레이드'도 아예 중국 서비스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최근 중국 게임시장의 눈높이가 국내 시장 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한국형 RPG가 성과를 낸 경우는 컴투스의 '서머너즈워'가 유일하며, 이제는 중국에 게임을 가져가도 "이 정도 수준으로 퍼블리싱은 어렵다."며 퇴짜맞기 일쑤다.
결국, 개발사들이 RPG를 개발하는 이유는 국내 시장 올인 전략인데, 하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넷마블, 433 등 대형 퍼블리셔의 메인 RPG들이야 수십억 원의 마케팅비를 써서 괘도에 올려놓지만 중소 업체들 입장에서는 장기간 10위권 내에 게임을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RPG 올인 전략은 결코 좋지 않다. 한국 시장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글로벌로 가면 이미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되는 있는 상황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캐주얼 게임 약소국.. 해외 개발사에 잡아먹힌다>
문제는 또 있다. 해외의 유명 게임사들이 개발한 캐주얼 게임들이 국내 시장을 대규모로 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캐주얼 게임을 무시하는 게 국내 게임업체들의 현주소이지만, 반대로 해외의 캐주얼 게임들에게 잡아먹히는 형국이 아이러니하다.
대표적으로 슈퍼셀은 이미 3개의 게임을 국내 매출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대규모 마케팅으로 이슈가 되었던 '클래시오브클랜'을 제외하고도 최근 내놓은 '클래시로얄' 역시 높은 게임성을 바탕으로 국내 매출순위 10위권 내에 출시와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캔디크러시' 시리즈, 그리고 NHN엔터의 '프렌즈팝'도 상위에서 이름을 떨치는 캐주얼 게임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캐주얼 게임들은 프리미엄 급으로 잘 만들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도 잇따른 청신호를 나타낼 확률이 높다. 컴투스의 '낚시의 신'이 그런 전례가 있고, 과거 게임빌에서 북미 1위를 찍었던 '에어펭귄' 등도 캐주얼 게임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너무 RPG에 올인하는 전략 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캐주얼 게임 시장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카본아이드의 이은상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국내 시장에 캐주얼 게임이 너무 없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이렇게 이미 시장에서도 이같은 갈라파고스 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위기를 알려주는 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