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영웅을 위한 최고의 작별인사, 언차티드4
[게임동아 김남규 기자] 오랜 기간 게이머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영웅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다. 지난 2007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이제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반드시 구입해야 할 이유가 된 언차티드 시리즈가 이번에 발매된 언차티드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을 끝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모험을 함께 했던 네이선 드레이크(네이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게이머들보다 더 아쉬움이 컸을 너티독이 최선을 다해 만든 그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얼마나 잘 만들었을지 이전 작품보다 더 큰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올해가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GOTY를 논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발매 첫주에 벌써 270만명이나 화답한 언차티드4를 위협할 만한 게임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너티독은 지난 3편에서 아틀란티스를 뒤로 하고 엘레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네이트를 다시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복귀시키기 위해 오래전 사라졌던 형을 등장시켰다. 네이트의 형인 샘 드레이크는 어린시절 네이트에게 보물사냥꾼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존재로, 이후 해적왕의 보물을 찾기 위해 잠입했던 감옥에서 사고로 사망한 줄 알았으나, 사실은 죽지 않고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설정이다. 샘은 감옥에서 악랄한 범죄집단 두목의 도움으로 탈출했지만, 해적왕의 보물을 찾아서 그에게 가져다주지 않으면 죽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퇴하고 안정적인 인양업자의 삶을 살고 있는 동생 네이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게 된다.
사실, 3편에서 네이트의 어린시절에 대해 잠깐 다루기는 했지만, 그가 어떻게 해서 보물사냥꾼의 길을 걷게 되고 엄청난 지식과 순발력, 체력을 가지게 됐는지, 그동안의 과거에 대해 전혀 밝혀진 것이 없다. 영화가 개봉할 때 마다 부모님이 죽는 배트맨이나, 삼촌이 죽는 스파이더맨처럼 과거 얘기를 매번 반복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의 과거가 하나도 밝혀지지 않고 완결된다는 것은 더 문제다. 너티독은 네이트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번 작품에서 그의 과거를 완벽하게 다루길 원했고, 그의 과거를 설명할 수도 있고, 은퇴한 네이트가 모험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만들 수 있는 샘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이다.
물론, 은퇴한 영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다시 복귀한다는 스토리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설정이니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관람객들에게 반가움보다 세월의 흐름과 안쓰러움을 더 느끼게 했던 인디아나 존스4도 존재도 몰랐었던 아들 때문에 다시 모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됐으니. 하지만, 라스트오브어스로 스토리텔링이라는게 무엇인지 진가를 보여줬던 너티독은 네이트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세련되게 묘사해 식상한 것을 식상하지 않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하는 듯 하지만 항상 어딘가를 그리워하며 공허한 눈빛을 보이던 네이트가 형의 등장 이후로 눈에 생기가 돌고, 엘레나에게는 말을 못하지만, 점점 더 보물찾기에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게이머 자신이 네이트가 된 듯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형과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챕터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마냥 밝은 캐릭터인줄 알았던 네이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아 더욱 몰입하게 된다.
매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극찬을 받는 그래픽도 이런 감정의 변화를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네이트의 얼굴만 봐도 하얘진 귀 옆머리와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흰 수염으로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표현했으며, 눈동자의 변화까지 섬세하게 묘사해 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제 배우의 감정 변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특히 엘레나를 속일 수 밖에 없는 네이트의 입장과 그것에 분노하는 엘레나, 둘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설리반 등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던 캐릭터들의 심정이 화면에서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에 더 스토리에 빠져든다.
물론, 이전작들이 워낙 훌륭했기 때문인지 전체적인 그래픽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놀랍지 않다. 1편과 비교한다면야 당연히 차이가 나지만 전작인 3편이나 이번에 출시된 리마스터 콜렉션과 비교하면 좋아진 것은 맞지만 세대가 달라졌다고 느낄만큼 업그레이드된 느낌은 아니라고 할까? 배경 그래픽도 멋지고, 네이트의 액션도 멋지고, 폭파씬도 멋지긴 하지만, 이미 예전에 경험했던 것들이기 때문인지 익숙하다.
하지만 세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하면 수준 차이를 느끼게 된다. 도라에몽 가방에서 꺼내는 것처럼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를 장비들을 잔뜩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쇠못, 밧줄 하나까지도 모든 장비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밧줄 액션에서 던졌던 밧줄을 다시 회수하는 동작까지 넣은 것이나, 컷신에서 네이트가 방금 주은 총이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장면, 물에 젖었다가 다시 마르는 옷 등 게이머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세밀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구현한 것을 보면 같은 PS4로 만든 다른 게임들이 오징어로 보일 수도 있다. 정말 너티독 본사 지하실에 외계인이 납치당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언차티드 시리즈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모험과 전투는 몇가지 새로운 요소가 도입돼 이전 작품과 약간 다른 느낌을 준다. 먼저 모험 파트에서는 갈고리 밧줄 액션이 새롭게 추가돼 튀어나온 기둥에 밧줄을 던져 걸고 타잔처럼 날아다니는 액션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아무 곳에나 갈고리를 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잡히는 곳들만 활용해야 했던 이전작보다 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갈고리 밧줄 액션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지다가 밧줄을 던져 아슬아슬하게 살아나는 모험 파트가 굉장히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이전작들보다 좀 더 순발력을 요구한다. 이전에도 아슬아슬한 장면은 질리도록 많이 나왔지만, 이번 작품에서 열차에 밧줄을 걸고 매달려 가는 장면이나, 밧줄 하나에 매달려 절벽과 절벽 사이를 오가는 장면은 정말 예술이다.
퍼즐은 많이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쉬운 편도 아닌 적당한 수준이다. 이전 작과 마찬가지로 노트에 해답이 전부 나와 있는 편이라 머리를 써서 해결한다는 느낌이 덜하긴 하지만, 이전과 달리 네이트만큼이나 전문가인 샘이 등장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 배경이 너무 사실적이고, 이전보다 맵이 넓어지다보니 퍼즐을 해결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가는게 것에서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혼자가 아니라 둘이 다니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마다 약간 도움이 된다.
특정 지역에 가면 무조건 적들이 나타나 개싸움을 펼쳐야 했던 총격전은 잡입 요소를 더해 선택지를 넓혔다. 이전처럼 가스통 터트리고 난전을 즐겨도 되긴 하지만, 적의 시선을 피해 다가가 은밀하게 처리하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코만도스나 메탈기어솔리드 본격적인 잠입 액션이라기보다는 적의 수를 좀 줄여놓고 싸우는 것에 가깝지만 무조건 싸움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서 나름 흥미롭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모든 부분이 환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게임이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자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출시될 때마다 논란이 되는 액션 파트와 모험 파트의 밸런스 조절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작품에서는 드라마성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액션에 비해 길을 찾고, 퍼즐을 푸는 파트가 좀 더 비중이 높은 편인데, 화끈한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다. 특히 벽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절벽을 타는 장면이 길고, 자주 나오며, 미끄러지다가 밧줄을 던져 매달리고, 반대편 절벽에 뛰는 패턴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만 신기하지 나중에는 식상한 느낌이 있다.
또한, 네이트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회상 챕터가 게임의 흐름을 끊는 듯한 느낌이 있다. 네이트의 과거를 보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클라이막스를 향해 빠르게 전개되다가 갑자기 회상 장면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긴장감이 이어지지 않는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볼 때는 회상 장면이 설명이 필요한 위치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액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다가 갑자기 잔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 이전 작품들처럼 끝날 때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 클라이막스가 이어지는 강렬한 느낌은 덜하다. 클라이막스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무조건 최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는 것 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엔딩을 봤겠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아직 플레이를 다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테니 스포일러를 하지는 않겠지만, 엔딩을 보면 너티독이 네이트라는 캐릭터를 떠나 보내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에게 최고의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다했는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그는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모험이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아쉽겠지만 게이머들도 지금까지 고생한 네이트를 이제 미련없이 보내줄 때가 됐다. 정 아쉬우면 리마스터 콜렉션으로 다시 복습을 하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