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재미있는 캐릭터 게임, '진격의 거인'
[게임동아 김원회 기자] 식인을 저지르는 거인들의 세계와 이에 힘겹게 맞서는 인류의 사투, 절망스럽고 긴박한 상황으로 흘러갈수록 몰입되는 스토리, 투박한 그림체와 어울리는 연출, 개성적인 설정을 갖춘 다양한 캐릭터 등 만화 '진격의 거인'은 일본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흥행 돌풍을 몰았다. 작가의 극우 성향 발언이 퍼지면서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이로 인해 플레이스테이션4(이하 PS4) 및 플레이스테이션 비타(이하 PS VITA)용으로 출시된 동명의 액션게임이 국내에 정식 발매, 그것도 자막 한글 버전으로 출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출시 전부터 극우 성향의 작가에게 좋은 일만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액션게임 '무쌍 시리즈'로 알려진 코에이테크모의 오메가 포스팀이 개발을 맡았으니 기대를 걸 구석도 있었다.
이윽고 국내 출시 후 뚜껑이 열리자 발매 전의 소란은 없었던 일인 것처럼 조용히 묻혔다. 플레이할 때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만 어설픈 구석이 많고, 원작 팬들에게도 미묘한 게임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질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먼저, 게임의 핵심인 거인과의 전투는 원작의 특징을 잘 살렸다. 지상에서 직접 이동하거나 말에 탑승했을 땐 넓은 통짜 스테이지를 활보하는 '무쌍 시리즈'와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앵커와 가스 분출을 활용해 공중을 누비는 입체 기동 장치를 활용하면 전혀 다른 게임이 된다. 입체 기동 특유의 속도감 덕분에 레이싱게임처럼 몰입할 수 있다. 각종 타격음과 배경음악,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성우들의 열연도 수준이 높다.
또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속도감만 믿고 거인에게 덤비면 큰코다친다. 종횡무진 움직이는 거인의 목덜미를 잘못 노렸다간 공격에 실패하거나 붙잡히면서 토벌 점수가 깎인다. 최악에는 거인에게 먹혀 게임오버까지 당한다. 그래서 거인의 팔이나 다리를 먼저 공격해 움직임을 막아야 하며, 이를 통해 게이머는 여러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캡콤의 '몬스터헌터 시리즈', 오메가포스가 개발한 '토귀전 시리즈'처럼 치고 빠지며 순서대로 공략하는 조작이 필요하다.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전투 패턴은 캐릭터의 개성으로 보완된다. 거인으로 변신하는 주인공 '앨런 예거'를 비롯해 최강의 능력치와 회전 공격을 자랑하는 '리바이', 우수한 지휘 능력이 반영돼 주변의 아군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아르민', '앨빈 스미스' 등 게이머는 원작의 인기 캐릭터들을 직접 조종할 수 있다. 전투 중 게이지를 모아 필살기의 일종인 '결전의 봉화' 발동시킨 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거인을 물리치는 동료들의 모습도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게임 내 조작 캐릭터들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스킬을 얻어 더 강력해지고, 새로 제작 및 강화한 무기를 장착할수록 전투력이 올라간다. 난이도가 높아질 때마다 앵커의 강도를 비롯해 입체 기동 장치의 가스 보유량 및 분사량, 도신의 범위와 공격력 등이 중요해져서 장비의 비중 역시 더욱 커진다. 이 밖에 전투 중 연막탄을 발사한 아군을 구하고, 전투 중 보급할 가스 연료 및 예비 도신을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다양한 스테이지 콘셉트도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는 것 외에 특정 시간 동안 생존하기, 대포 병기를 활용한 공략법 등 원작보다 더 다양한 패턴의 전투가 게임 내에서 벌어진다. 또한, '기행종'이라 불리는 강화형 거인들은 각자 독특한 공격 및 방어수단을 갖춰 주도면밀한 공략법이 요구된다.
여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그래픽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화풍은 합격점이지만 전투 중에 화면에 나타나는 그래픽은 퀄리티가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또한, 전투 중 카메라 시점이 이상하게 바뀌어 폴리곤이 깨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이 밖에 시간이 촉박할 때 거인의 약점인 뒷목이 건물과 겹쳐지면 게이머로선 방도가 없다. 거인의 사지를 모두 잘라 고꾸라진 거인의 목이 건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마저 존재해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울러 PS VITA 버전은 PS4 버전보다 더욱 열악한 퀄리티를 나타낸다. 다수의 거인이 화면 안에 등장할 경우 본체가 아닌 붉은 표식만 나타난다거나 거인의 피에 물든 복장 묘사가 삭제된 점 등이 좋은 예다. 캐릭터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PS4 버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콘텐츠 분량은 알맹이가 부족하다. 원작 8권, 애니메이션 25화 분량의 스토리를 다룬 '진격 모드'와 각종 자원을 수집해 캐릭터 및 아이템을 성장시키는 '벽외 조사 모드' 두 종류뿐이고,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도 10종류밖에 없다. 특히, '진격 모드'가 끝나면 '벽외 조사 모드'의 보상을 활용해 캐릭터와 장비를 강화하는 것이 전부다. 삼국지 역사를 정주행한 후 플레이 의욕이 떨어지는 '삼국무쌍 시리즈'를 보는 듯하다.
'벽외 조사 모드'는 진행 방식마저 '삼국무쌍 시리즈'의 전철을 밟았다. 간략한 전후 사정이 추가된 스테이지를 골라 주어진 목표 및 의뢰를 달성하면 그만이다. '벽외 조사 모드'에서 육성한 캐릭터 및 장비가 '진격 모드'와 연동되지만 이것만으로 게임을 오래 붙잡을 만큼 '진격의 거인'에 애정을 가진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난이도가 낮아지고 협력 플레이 특유의 재미는 느끼기 어려운 멀티플레이 모드마저 '삼국무쌍 시리즈'와 쏙 빼닮았다.
'벽외 조사 모드' 진행 상황에 따라 게임 오리지널 요소인 짐승형, 갑옷, 초대형 거인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지만 유의미한 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후 난이도가 더 높아진 '진 진격모드'가 열려 그동안 육성했던 캐릭터들이 빛을 발하나 게이머의 플레이 시간을 억지로 늘리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밖에 원작 재현을 중요시하는 게이머라면 '진격 모드'의 이벤트 내용을 보고 실망할 것이다.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서 세세하게 묘사된 캐릭터의 묘사, 전후 사정,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개그 요소 등이 원작의 매력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원작을 모르고 플레이하는 게이머라면 개연성에 의문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다. 캐릭터 게임 중 상당수가 빠지는 함정에 '진격의 거인'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진격의 거인'은 방향성은 올바로 잡았으나 세부적인 퀄리티 관리가 미숙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해 정가로 게임을 구매하기엔 망설여진다. 그래도 '삼국무쌍 시리즈'처럼 단점을 보완한 차기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남는다. 어쩌면 이러한 경향이 오메가 포스의 역량과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