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게임 라이선스 전쟁, 박지성을 박지성이라 부르지 못하고

[게임동아 김남규 기자] 축구 게임의 전통의 라이벌을 꼽자면 누구나 다 EA의 피파 시리즈 VS 코나미의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얘기할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EA의 피파 시리즈가 모든 면에서 앞서면서 옛말이 되었지만, 한때는 피파 시리즈를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놀릴 정도로 위닝 일레븐 시리즈가 앞선 시절도 있었죠. 심지어는 피파 개발진들이 위닝일레븐 시리즈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 자존심을 꺾고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위닝 일레븐은 피파 시리즈를 깔보던 전성기 시절에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벌 피파 시리즈가 국제축구연맹 피파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공식 라이선스를 게임에 적용시킬 수 없었던 것이죠. 때문에, 개별적으로 계약한 팀이나 국가 외에는 공식 라이선스 대신 유사한 이름과 명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지금 보면 배꼽 잡을 만한 이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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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추선, 히무부, 안정패, 구누인… 누군지 아시겠나요? 이는 국내 첫 발매된 위닝일레븐 시리즈인 위닝일레븐6 인터내셔널에 등장한 한국 대표팀 이름입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포지션과 능력치를 볼 때 박지성, 홍명보, 안정환, 김남일 선수인 것 같네요. 이 외의 선수들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라이선스 계약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은 비슷하게 흉내 낸 것도 아니고 선수들이 모두 오렌지001, 오렌지002 등 오렌지 시리즈로 등장합니다. 결국 이름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으니 선수들의 능력치와 포지션을 보고 어림짐작을 해야 해서, 뛰어난 능력치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를 선택해서 플레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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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일레븐7 인터내셔널은 다행스럽게도 한국 국가대표팀 라이선스를 획득해서 선수들이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이영표 선수가 활약했던 토트넘 핫스퍼FC 등은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박지성 선수는 클럽팀에 소속된 파스치통, 이영표 선수는 클럽팀에 소속된 리영고라는 또 다른 분신이 등장합니다. 즉, 하나의 선수가 클럽 버전과 국가대표 버전 두 가지로 등장한 것이죠. 때문에 등장하는 모든 선수들이 섞여서 나오는 마스터리그를 즐기다 보면 같은 선수인데 이름만 다른 두 명의 선수가 각각 활약하는 황당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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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위닝일레븐8 아시안 챔피언십에서도 재미있는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채두래, 홍남보, 설귀형. 누군지 바로 아시겠죠? K리그 라이선스와 한국 국가대표팀 라이선스는 획득했지만, 그 외에 라이선스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명 센스입니다. 또한, 후속 버전인 K리그 위닝일레븐9 아시안 챔피언십에서는 박지성 선수가 파스치통보다는 조금 더 실명과 가까워진 박지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웃음을 선사합니다. 어차피 능력치는 똑같지만 박지성일 때보다 약해진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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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명뿐만 아니라 팀명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EA처럼 한방에 계약을 체결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팀마다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느라 엄청 고생했기 때문이죠.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예전부터 즐기셨던 분들이라면 아제감, 텔피, 리갈스, 맥그러스터 유나이셋라는 명칭이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순서대로 아스날, 첼시,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데, 연상이 되시나요?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이전 버전이 알아보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는지 아스날은 노스 런던, 첼시는 런던FC, 토트넘은 노스 이스트 런던,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레드 등으로 연고지를 연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위닝일레븐이라는 제목이 아닌 프로 에볼루션 사커(PES) 시리즈로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접하신 분들은 이 명칭이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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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닝일레븐이 피파 시리즈의 독점 횡포를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서 J리그의 라이선스를 독점 계약해서 피파 시리즈에 J리그를 못 나오게 만들었고, 브라질 리그의 주요 팀인 코린치아스와 플라멩구를 독점 계약해서 피파가 브라질 리그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월드컵과 더불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챔피언스 리그 라이선스를 독점하고 있어서 피파 시리즈에는 아직까지 챔피언스 리그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유로2016 역시 위닝일레븐 독점이었습니다. EA 입장에서는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재미있는 것은 EA의 반응이에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인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독점계약해서 인기 구단과 개별 계약도 못하게 만들었고, J리그 라이선스는 필요 없다며 게임 속 세계지도에서 일본을 아예 지워버리는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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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곧 출시될 피파17에서는 아직 코나미가 독점으로 가지고 있는 챔피언스 리그는 없지만, 독점 계약 기간이 끝난 J리그 라이선스는 계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코린치아스와 플라멩구 라이선스 계약도 끝나서 이제는 브라질 리그가 등장할 것 같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제 위닝일레븐의 최후의 보루는 챔피언스 리그만 남았네요.

요즘 분위기를 보면 라이벌 관계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피파 시리즈는 날고, 위닝일레븐 시리즈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위닝일레븐 시리즈가 챔피언스리그 라이선스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데, 과연 독점 계약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한때 위닝일레븐 시리즈에 열광했던 팬의 입장에서 참으로 걱정되네요. 이미 승부는 끝난 것 같기는 하지만, 위닝일레븐 시리즈가 좀 더 분발해서 앞으로도 라이벌 관계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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