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홀릭] 최고에게만 허락된 영광. 자신의 이름을 게임에 새긴 선수들
스포츠게임 좋아하시나요? 우리는 농구, 야구, 축구 등 쉽게 다양한 스포츠게임을 경험해볼 수 있는데요. 스포츠 게임 분야를 대표하는 피파 시리즈나 위닝 시리즈, 그리고 NBA 2K 시리즈나 MLB 더쇼 시리즈 등의 스포츠게임은 출시에 앞서 지난 한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표지 모델로 선정해 1년 농사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선수를 표지 모델로 선정해 해당 스포츠 분야 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과거에는 매년 표지 모델이 변경되는 현재의 게임 시스템 보다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이름을 딴 게임들이 더욱 많이 출시됐습니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의 이름을 그대로 게임에 넣은 것인데요. 심지어 몇몇 게임의 경우 현재도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인 본인의 이름을 딴 게임의 출시. 어떤 게임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 조던 이전엔 그가 있었다. ‘매직 존슨의 패스트 브레이크 >
열이면 아홉은 농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로 마이클 조던을 언급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던 보다 조금 앞서서는 NBA의 전설적인 포인트 가드로 유명한 매직 존슨이 있지요.
매직 존슨은 NBA의 최고 선수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고,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그의 플레이를 한 신문의 기자가 ‘마술같다’라고 평가한 뒤부터 그의 본명인 어빈 존슨 주니어 보다는 매직 존슨이라는 이름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대학을 마친 뒤 LA 레이커스에 입단한 그는 신인 이었을 때부터 NBA 파이널 MVP를 수상하고, NBA에서 5번이나 우승을 경험합니다. 래리 버드와 같은 라이벌들과도 좋은 경쟁을 펼치기도 했지요. 갑작스러운 HIV 양성 판정 이후 다시 돌아와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 매직 존슨의 패스트 브레이크, 한 팀이 2인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죠. >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거쳐 루키 시즌부터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매직 존슨은 당연히 게임 제작사 입장에서도 탐이나는 선수 였습니다. 매직 존슨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시절인 1989년 그의 이름을 담은 ‘매직 존슨의 패스트 브레이크’라는 농구 게임이 출시됐습니다. 패미컴의 북미판인 NES와 코모도어64, ZX스펙트럼 등 다양한 가정용 게임기를 통해 출시된 이 게임은 농구 게임임에도 5명이 한 팀이 아니라 2명씩 한 팀을 이뤄서 경쟁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게다가 NES 버전의 경우 보조 수단을 이용해 최대 4인 플레이까지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 농구황제의 농구 게임 '마이클 조던 인 플라이트' >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농구 게임도 있습니다. EA가 1992년에 출시한 '마이클 조던 인 플라이트'가 그 주인공 입니다. 농구 황제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마이클 조던을 젼면에 내건 농구 게임으로 패스트브레이크보다는 조금 발전된 3:3 경기가 게임의 중심입니다. 게임의 시점 구성도 3D에 가까운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 특징이며, 당시 NBA 소속팀이 아닌 출신 대학을 중심으로 구성된 팀 구성도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 받는 마이클 조던의 농구 게임 '마이클 조던 인 플라이트' (출처-유튜브캡쳐)
마이클 조던은 설명이 필요 없는 NBA의 역사적인 인물로 NBA는 물론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1984년에 데뷔해 2003년에 은퇴하기까지 그는 전세계 스포츠 스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뛴적도 없던 마이애미 히트가 그의 등번호인 2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정도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seol님의 제보에 감사드리며 마이클 조던의 '조던 인 플라이트'를 추가했습니다.
< 마이클 조던 스페셜 에디션과 올해 출시되는 코비 브라이언트 레전드 에디션 >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명성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매된 NBA 2K16는 마이클 조던 에디션을 발매해 전설적인 명장면들을 재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올해 발매된 NBA 2K17에는 또 하나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의 스페셜 에디션이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골프 황제의 ‘타이거 우즈 PGA 투어 시리즈 >
여러분은 골프라는 종목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로 힘들어하던 시절 연못에 빠지기 직전인 공을 살려내며 최고의 샷을 선보인 박세리 선수를 떠올릴 것입니다. 고된 훈련 속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극명히 비교된 그녀의 새하얀 발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 성추행 파문 이후에도 시리즈를 이어온 타이거 우즈 PGA 투어 >
당시만 해도 생소한 골프라는 스포츠를 박세리 선수가 널리 알리며 국내에서도 더욱 유명세를 탄 선수가 있는데요. 바로 골프 황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타이거 우즈입니다. 1975년 12월 30일 출생의 이 골프 선수는 골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그의 재능은 성인이 되면서 더욱 꽃을 피웁니다. 1996년 처음으로 PGA에 입회한 타이거 우즈는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물론,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두번째로 3회 커리어 그랜드 슬램 등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남아있는 유일한 스포츠에 가까웠던 골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전성기에 미국 내 스포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타이거 우즈를 전면에 내세운 N사는 골프 용품 계를 점령하기도 했지요. 여기에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를 선정하면 마이클 조던과 함께 이름을 빼놓지 않고 올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골프 황제라는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은 활약을 펼쳐온 그는 게임 시장에서도 활약을 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타이거 우즈 PGA 투어’ 골프 게임 시리즈인 ‘타이거 우즈 PGA 투어 99’가 처음 등장하며 EA와 호흡을 맞춘 그는 ‘타이거 우즈 PGA 투어 14’까지 EA와 함께하며 골프 게임의 역사를 함께했습니다. 게임 내에는 타이거 우즈에게 도전하는 모드가 별도로 마련됐을 정도로 타이거 우즈라는 선수의 영향력은 컸고, 성추행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시절에도 EA는 타이거 우즈와 계약을 유지했을 정도입니다.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은 로리 맥길로이 >
하지만 은퇴 번복과 부상으로 인상 기량 하략, 그리고 골프계의 세대교체는 피해갈 수 없는 흐름 이었을까요? EA는 오래기간 이어온 ‘타이거 우즈 PGA 시리즈’의 막을 내리고 최강 신예 로리 맥길로이와 함께하는 ‘로리 맥실로이 PGA 투어’를 발매하며 새로운 골프 스타와 함께하는 골프 게임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습니다.
< 원조 골프 제왕 잭 니클라우스 >
타이거 우즈 이전에는 골프의 제왕이라 불리는 잭 니클라우스 선수가 있었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본인의 이름을 딴 골프 메이커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로 남자 프로 골프 세계 4대 대회를 모두 석권한 그랜드 슬램을 3번이나 달성했고, 그가 보유한 메이저 최다승 기록은 이제는 타이거 우즈마저 깨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 원조 골프 제왕 잭 니클라우스의 이름을 딴 골프 게임 >
그의 이름을 딴 골프 게임인 ‘잭 니클라우스 골프’는 이제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의 평균 출생년도보다 앞선 PC 엔진 시절부터 출시되며 골프 게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그의 이름을 딴 게임이 꾸준히 출시됐지만, ‘타이거 우즈 PGA 투어’ 시리즈가 등장한 뒤에는 최고의 골프 게임 칭호를 넘겨줘야 했습니다.
< 최강자 등극의 힘. ‘새미소사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 >
1990년대 말기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두 명의 홈런타자가 펼치는 홈런 경쟁이 팬들 사이에서 연일 화제였습니다. 당시 세인트 루이스의 내야수 마크 맥과이어와 시카고 컵스의 새미 소사의 이야기로 두 선수는 하루를 멀다 할 정도로 치열한 홈런 경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박찬호 선수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저변도 넓어지고 있었던 시기라 국내 패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당시 중학생인 기자와 또래 친구들도 메이저리그의 ‘메’자도 모르면서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중 누가 시즌이 끝나고 홈런왕에 오를까 매일 서로 내기하고 입씨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뭐 물론 결론은 1999년 시즌 65개의 홈런을 때려낸 마크 맥과이어의 승리로 마무리 됐습니다. 하지만 새미 소사도 단 두 개 부족한 63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오히려 득점과 타점에서는 맥과이어를 앞서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2000년 시즌에도 시즌 절반을 날린 마크 맥과이어와 달리 새미 소사는 50개의 홈런을 만들어 여전한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보였을까요? 3DO는 자사의 야구게임 시리즈인 하이히트 베이스볼 최신작의 모델, 아니 게임의 이름으로 새미 소사를 낙점 합니다.
하드볼 시리즈 그리고 트리플 플레이 베이스볼 시리즈와 경쟁하며 좋은 평가를 받아온 하이히트 베이스볼은 2000년 출시된 ‘새미소사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과 함께 날개를 달았습니다. ‘새미소사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그래픽과 실제 야구 중계를 보는 듯한 카메라 워크, 마이너리그까지 다룬 방대한 선수들의 데이터 등의 사실성으로 야구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변화에 실패한 하드볼 시리즈와 게임성이 아케이드 쪽에 가까웠던 트리플 플레이 베이스볼을 제치며 향후 몇 년간 최고의 야구게임 시리즈로 등극했습니다.
게임에 이름을 새긴 새미소사도 게임이 발매된 2000년 시즌은 물론 2001년 시즌에도 3할2푼8리의 타율과 64개의 홈런 그리고 160타점을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새미 소사라는 걸출한 선수와 함께 최고의 야구 게임에 오른 하이히트 베이스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수 이름을 넣은 ‘새미소사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을 뒤로하고 이후에는 시리즈 넘버링만 이어가다 2004를 끝으로 쓸쓸히 시리즈의 맥이 끊겼습니다.
< 선수로 안되면 감독으로! ‘토니 라루사 베이스볼’ >
‘새미소사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1’이 당대 최고의 선수인 새미 소사의 이름을 새긴 게임이라면, ‘토니 라루사 베이스볼 시리즈’는 최고의 감독인 토니 라루사의 이름을 딴 야구 게임입니다. 물론 토니 라루사도 야구 선수 출신이었지만, 그는 새미 소사와는 달리 현역 시절에는 별볼일 없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에 불과 했습니다.
현역 선수 은퇴 후 공부를 시작한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며 변호사 면허를 땄습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그는 입사가 보장된 로펌을 뒤로하고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전향합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이 선택은 메이저리그, 나아가서는 현대 야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현대 야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토니 라루사 감독의 이름을 딴 야구 게임 >
그는 오클랜드 감독으로 재직시절 구위가 떨어진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에게 이기고 있는 경기 9회에만 나와서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선택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오클랜드는 1988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기고 있던 경기 9회에만 나와서 공을 던진 데니스 에커슬리도 사이영상 투표 2위를 달성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는 현대식 마무리 투수의 시발점이 됐고, 그는 5선발 체제의 정착, 원 포인트 구원 투수 운용 등 현대 야구 불펜 운용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2728승 2365패라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그의 감독으로서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당연히 그의 이름을 딴 야구 게임 시리즈 ‘토니 라루사 베이스볼’ 시리즈가 출시 됐습니다. ‘토니 라루사’ 베이스볼 시리즈‘는 당시 야구 게임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던 하드볼과 경쟁을 펼치며 양강 체제를 구축했고, 이후 ’트리플 플레이 베이스볼‘에 그 자리를 넘겨 줬습니다.
< NFL이 곧 그가 되다 ‘NFL 매든 시리즈’ >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를 하나만 꼽자면 단연 미식축구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국내 스포츠맨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슈퍼볼’ 시즌만 되면 여러 매체를 통해서 ‘슈퍼볼’이 가진 막대한 영향력이 매번 새삼 강조되는 만큼 잘 알지는 못해도 미식축구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스포츠 팬들은 없을 수준일 것입니다.
< 미식축구계의 전설 존 매든, 그가 곧 미식 축구가 되다 >
이런 미식축구를 대표하는 게임이 바로 ‘매든 NFL 시리즈’입니다. 매든은 미식축구계의 대표 인물인 존 매든의 이름을 따 발매되는 시리즈인데요. 존 매든 역시 선수 경력이 단 1년에 그쳤지만, 감독으로 맹활약하고 NFL의 해설자로 이름을 떨치면서 미식축구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았죠.
시리즈 초창기에는 게임의 이름이 ‘존 매든 풋볼’이었지만, 이후에는 ‘매든 NLF 시리즈’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매든하면 NFL을 떠올리는 이가 많은 정도로 존 매든의 이름을 곧 NFL을 대표하게 됐습니다.
존 매든은 시리즈 초창기에만 해도 본인이 직접 게임의 표지모델로 나서기도 했었는데요. 그가 표지모델에 나서지 않은 2001년부터는 매든의 표지모델에 선정된 선수들이 하나 같이 최악의 성적을 거두거나 큰 부상을 입는 등의 사례가 줄을 이어 ‘매든의 저주’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지요.
<최고의 쿼터백과 함께한 세가의 조 몬태나 풋볼 시리즈 >
지금은 미식축구를 대표하는 게임으로 자리잡은 ‘매든 NFL 시리즈’도 경쟁 작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팀의 전설적인 선수인 조 몬태나 선수의 이름을 딴 ‘조 몬태나 풋볼’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조 몬태나는 슈퍼볼 4회 우승, 슈퍼볼 MVP3회 등 최고의 커리어를 이어왔지만, EA가 NFL과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게임 시장에서는 ‘매든 NFL 시리즈’에 최고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