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마! 움직이는 놈이 범인이여!" 이색 한글 RPG '검은 장미의 발키리'
게임명: 검은 장미의 발키리
개발사: 컴파일 하트, 아이디어 팩토리
유통사: CFK
사용기기: 플레이스테이션4 (PS4)
필자명: 구석지기
CFK(사이버프론트코리아)의 요즘 행보는 미소녀, JRPG, 그리고 한글화 등 3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2010년초부터 마니아들을 중점으로 한 게임들을 꾸준히 현지화해 국내 정식 출시하는 등 확실한 타깃 층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많은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엇? 이런 게임도 한글화가 해서 출시하네?”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016년 연말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 PS4용 RPG '검은 장미의 발키리'다. 가상의 일본에 등장한 괴수 '키메라'를 제거하기 위한 특수부대의 활약을 담은 신작 게임이다.
거대 운석의 낙하 사건이 발생한 후 수 십년이 지난 후 발생한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해 이형의 생명체와 싸우게 된 인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특수 부대 발키리'를 창설하게 된다. 게이머는 이 부대의 대장이 돼 5명의 히로인과 함께 싸우게 된다.
히로인은 모습은 기대 이상이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일러스트는 우리에겐 '오! 나의 여신님'과 '체포하겠어!' 등의 만화로 알려진 후지시마 코스케다. 컴파일 하트의 게임으로는 처음 진행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5명의 히로인 중 1명이 배신자라는 설정이다. 이 설정 자체는 게임을 할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한 명을 찾아내는 재미가 꽤나 신선하고 독특해서 여러 차례 게임을 즐겨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때마다 해당 히로인과 대화부터 엔딩이 모두 달라진다.
게임은 T.C.S 라는 대 키메라용 전술 병기를 사용한다. 선택 받은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이 전술 병기는 사용자의 신체에 투입돼 강인한 신체와 힘을 얻게 만든다. 하지만 신체에 부담이 커 장시간 사용이 어렵고 적합자가 아닐 경우는 거부 반응이 발생한다.
이 거부 반응 중에는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심할 경우 사용자를 사망하게 만든다. 적합자라고 해도 부작용이 있고 이 부작용은 성향과 다른 '인격'을 가지게 되는 일종의 인격 분리 증상을 얻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성향을 띄게 되기 때문에 아군에 피해를 주는 형태가 된다.
배신자라는 설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형태이기 때문에 꾸준히 히로인들을 관리하고 살펴봐야 한다. 이 기능인 '면담'은 그래서 싸우는 것 못지 않게 중, 후반부터 게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면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짓말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파악이다. 그래서 게임 내에는 각 캐릭터별 면담 노트 같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존에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살펴 확인하는 식으로 배신자를 가려내야 한다. 이 부분은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다.
게이머는 히로인들과 대화를 통해 핵심적인 거짓말의 증언과 그걸 증명할 증언 2개 등 총 3개를 찾아야 한다. 그게 실패할 경우는 준비된 배드 엔딩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걸 맞출 경우 키메라 바이러스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대화를 많이 건너 뛰는 스타일의 게이머라면 이 부분에서 난감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만 게임 내에는 그런 게이머에게 맞는 다양한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리고 읽는 재미 자체도 뛰어난 편이라서 여유 있다면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길 추천한다.
어쨌든 T.C.S 전술 병기를 사용해 펼쳐지는 전투는 게임 내 대표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동안 게이머는 전투 또는 지원, 협력 등의 다양한 키워드를 선택해 아군에게 유리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턴 방식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캐릭터들의 성능에 따라 턴이 변화하는 형태를 띈다. 전투 시 왼쪽에 위치한 타임라인을 보고 움직임이 빠른 캐릭터를 활용, 적 중에서 턴이 가장 높은 적을 공략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게임 내에선 택티컬 필드 배틀 시스템으로 불린다.
그러나 아무리 빨라도 기본적으로 아군, 적군 모두가 턴을 소비하기 전까지 자신이 턴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실시간 형태이지만 턴제라는 규칙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격 중인 적을 다른 아군이 합류해 공격하는 등 액션 게임 못지 않은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군 역시 그런 상황을 겪을 수 있으며, 공격을 시도하는 도중 해당 캐릭터가 사망하는 등의 일도 발생한다. 그래서 전술 타임 라인에 맞춰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을 압도할 지가 중, 후반으로 갈수록 중요해진다.
하지만 평균 플레이 타임이 40~50시간 정도 걸리는 이 게임 특성상 모든 전투를 직접 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제공되는 '자동 전투' 기능은 이런 부담을 최소화 시켜주며, 엄청나게 많은 전투 상황들을 빠르게 넘길 수 있도록 해준다.
자동 사냥은 단순히 공격만 시도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군의 특성을 반영한 4가지 선택 사항을 제공해 효과적으로 적을 사냥하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부분은 한 두 번의 세팅으로 충분히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구성할 수 있어서 재미를 높여준다.
전투를 자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취소하고 원래의 조작 형태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소규모 전투 같은 경우는 자동으로, 보스전 등 조작의 구성이 필요한 부분은 직접 하는 방식 등을 채택하는 것이 좋다.
이 게임 내에는 또 다른 특이점도 있다. 바로 오픈 필드가 그것. 이 요소는 게임의 재미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게임 내 시간이 밤과 낮 상황에 맞춰 여러 혜택을 받게 해준다. 그리고 필드에 숨겨진 여러 요소들을 찾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밤과 낮은 차이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구분이 된다. 우선 두 가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임무들이 차이가 있다. 그래서 밤이 아니면 완료가 되지 않는 임무 등으로 인해 헛걸음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낮과 밤에서 만날 수 있는 적들의 성능의 차이도 있다.
밤에는 키메라가 상대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에 장비나 레벨이 낮을 경우 패배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일반 적과 보스 모두에게 해당된다. 하지만 밤에는 레어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일부 아이템은 밤이 아니면 획득할 수 없기도 해 모든 필드는 밤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점이 마련돼 있지만 단점도 눈에 띈다. 우선 너무 허전한 오픈 필드. 이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필드 자체의 완성도도 너무 떨어지고 어색하고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사람과 빌딩, 사물의 비율도 이상해서 특정 공간에서는 너무 부족해 보인다.
중, 후반 너무 길어지는 전투 부분도 단점이다. 자동 사냥을 킨 상태에서도 10분 이상 치워지는 보스전들이 상당히 많으며, 마지막 전투는 정말 30분 이상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가볍게 접근하려는 RPG 게이머라면 이 부분은 정말 고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정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들이 정말 쉽지 않고 오랜 시간 반복 플레이를 진행해야 아군들의 전체적인 성능을 향상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좀 더 간소하게 할 수 있게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부분만 좀 더 개선됐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깔끔한 현지화 부분은 칭찬해도 모자란 부분이며 멋진 성우들의 연기들도 귀를 즐겁게 해준다. 다만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후지시마 코스케와 결혼한 부인의 주연급 성우 발탁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참고로 오토기 네코무는 게임 내 '이치노미야 루나'라는 주연급 캐릭터 성우를 맡고 있다. 물론 국내 게이머 입장에선 매우 어색하다고 느껴지지 않겠지만 마니아나 일본 게임들을 주로 즐기는 분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오랜 시간 잡고 달려볼 게임이 필요한 게이머라면 검은 장미의 발키리는 꽤 괜찮은 선택이다. 특히 다채로운 이벤트 일러스트와 복장 파괴 등의 요소는 다소 뜬금 없으면서도 사이사이 양념처럼 재미를 준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즐겨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