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탈 부분유료화 움직임. 새장에 갇힌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풀어주길

블루홀의 스팀 진출작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가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로 업계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정식 출시가 아닌 얼리엑세스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3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단순히 매출만 높은 것이 아니라 해외 유명 웹진에서 90점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최후의 한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겨룬다는 배틀 로얄 장르의 게임인 만큼 인터넷 개인 방송 소재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기가 예상되고 있으며, 향후 e스포츠화도 노려볼 만한 상황이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틀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은 환호 그 자체다. 그동안 한국 게임이라고 하면 돈을 많이 쓴 사람들이 이기는 pay to win 게임 뿐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며 국산 게임을 비하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배틀 그라운드가 그것을 보기 좋게 깨트렸기 때문이다.

물론 배틀 로얄 장르의 창시자인 브랜든 그린을 영입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긴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장르에 과감히 도전을 선택한 블루홀의 김창한 PD와 이를 승인한 블루홀 경영진의 선택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해외에 자랑할 만한 메이드 인 코리아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 외에 이 게임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의미는 개발의 다양성이다. 그동안 한국 개발자들은 이미 수익이 검증된 부분유료화 게임 외에는 다른 게임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취미로 개발자를 하고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투자를 받아서 개발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매출 구조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는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에 있어 매출 구조는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결제를 한 사람에게 돈을 쓴 만큼 만족감을 줘야 하기 때문에, 밸런스 조절이 매우 어려우며, 장르 선택폭도 넓지 않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에서 출발해야 하는 플레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는 부분유료화 요금제를 선택했다면 아예 나올 수 없는 게임이다. 물론 부분유료화 모델 중에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고, 캐릭터 꾸미기나 편의 기능에만 과금을 시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게임들은 의미있는 매출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리그오브레전드가 이런 방식이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인 게임 결제 보다는 PC방 유료화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배틀그라운드 이미지
배틀그라운드 이미지

그동안 뽑기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부분유료화에 치중하다보니 국내 개발사들에게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이런 게임만 만들어온 것은 아니다. 국내 게임 시장 초창기에는 패키지 게임도 많이 개발됐으며, 피쳐폰 시절에도 수준 높은 RPG가 굉장히 많이 등장했었다. 다만, 시장의 흐름상 부분유료화에 대세로 정착되다보니 국내 시장 상황이 그런 게임만 만들도록 강요한 것이다.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김창한 PD도 게임을 개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해외에 안 통하는 도박 같은 뽑기 게임들만 만든다고 욕을 먹고 있긴 하지만, 개발자들 역시 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시절 슈퍼마리오, 드래곤퀘스트, 울티마 같은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개발자의 꿈을 키웠었다. 부분유료화라는 새장을 벗어날 기회가 제공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사실 국내 대작 MMORPG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해외 유명 대작 게임들과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배틀그라운드 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이트데이를 선보인 로이게임즈, 키도:라이드 온 타임을 선보인 넥스트플로어,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출시할 예정인 네오위즈게임즈, TS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게임테일즈 처럼 콘솔 패키지 게임 시장에 도전한 회사들도 있고, 모바일 분야에서도 부분유료화가 아닌 유료 게임을 발매하는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부분유료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넥슨은 유료 게임 애프터 디 엔드를 출시한데 이어 이번에는 신작 로드런너원을 수익성을 배제하고 완전 무료로 출시하기도 했다. 데브캣 스튜디오가 이제는 고인이 된 개발자 더글라스 스미스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로드런너원은 마케팅 및 홍보를 일절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시 3일 만에 국내 애플 앱스토어 전체 무료 앱 1위, 일본, 싱가폴, 홍콩 등 10개국 무료 게임 앱 TOP5에 진입하고,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을 돌파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로드러너원
로드러너원

다만, 이런 시도들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개발자들의 도전이 무모한 선택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일이다. 이전에도 색다른 시도들이 있었지만 게이머들이 외면하면서 결국 국내 시장은 확률형 뽑기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물론 국산이라고 무조건 편들어주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걸음마 시도를 하는 개발사들을 해외 대형 개발사들의 작품과 비교하면서 비하하지만 말아달라는 얘기다. 지금 당장은 미약한 움직임이지만 게이머들의 응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더 참신한 시도들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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