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아프다 못해 불쌍한 결말을 지닌 게임들
하는 일 마다 꼬이고, 뭘 해도 안되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흔히 '팔자가 사납다'라고 한다. 이 '팔자 사나운' 이들은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가슴 아픈 비극의 주인공으로 혹은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스토리의 주연으로써 등장하며, 이들의 아픔은 보통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그려진다.
하지만 선을 이기는 악이 등장하거나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끝내 패배하는 주인공 등 팔자 사나운 것을 넘어 기분이 찝찝해 질 정도로 대중의 희망을 산산이 부수어 놓는 어두운 결말을 지닌 작품도 여럿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게임들이 악을 물리치는 용사의 이야기 혹은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여 결국 뜻을 이루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로 게이머들을 경악 시키는 작품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번 히스토리에서는 고독의 계절로 불리는 가을의 초입을 맞아 일반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처절한 결말을 맞는 게임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이 글에는 다수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주를 살리기 위해 거상과 싸움을 계속하는 완다. 하지만 그 끝은..- 완다와 거상]
이번 'E3 2017'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완다와 거상'의 리메이크 버전 출시 예고였다. PS2의 명작 중의 하나인 이코의 후속작으로써 기대를 모았던 '완다와 거상'은 화면 안에 잡히 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거인 이른바 '거상'들과 전투는 물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BGM과 배경을 선보여 당시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언 듯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룬 작품처럼 보이지만, '완다와 거상'은 주인공 완다와 그의 애마인 아그로를 제외하면 그 어떤 등장인물도 게임 진행 중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스토리의 대부분이 아름답지만 황량한 '세상의 끝'에서 진행된다.
더욱이 여주인공(히로인)인 '모노'는 전편인 '이코'에서 의식의 제물로 바쳐져 이미 사망한 상태이며, 그녀를 살리기 위해 정체불명의 목소리의 주인공 '도르민'의 지시에 따라 거대한 거상을 쓰러트리며 그들의 정수를 흡수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움는 완다의 모습은 게임을 즐기는 내내 안쓰러울 정도로 펼쳐진다.
거상을 쓰러트리며 완다는 점점 검게 변해 가는데 이는 게이머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어 플레이를 하던 중 흠칫 놀라게 하는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본 기자도 게임을 하다 부모님의 “재는 왜 저리 시커멓냐?”라는 말을 듣고 그제서야 완다의 몸이 변한 것을 알았을 정도.)
이처럼 연인의 부활을 위해 전설의 검을 훔치고 온갖 금기를 깨며 거상을 사냥한 완다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씁쓸하다. 완다가 사냥한 16개의 거상은 거대한 악이었던 도르민의 힘을 봉인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었으며, 결국 이들의 정수를 모두 흡수한 완다의 몸에서 대 악마 도르민이 부활하고 만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금기를 어기며 처절한 싸움을 이어왔지만, 결국 악마의 부활을 이루는 도구로 이용당한 것이다. 물론 이 대악마는 뒤늦게 완다를 막기 위해 달려온 샤먼 '에몬'에 의해 다시 봉인되지만, 대악마가 되어 봉인되면서도 '모노'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손을 뻗는 완다의 모습은 눈물이 핑 돌정도로 처절하게 그려진다.
[지구로 몰려오는 외계인과 처절한 사투. 하지만 그 외계인들은 지구인이었다!- 알타입]
80~90년대 전성기를 누린 장르는 바로 슈팅이었다. 지금이야 하는 사람만 하는 장르로 전락했지만, 슈팅 게임은 당시 게임 그래픽을 선도하는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 즐비했던 중요 장르 중 하나였다.
이 슈팅 게임의 전성기에 포문을 연 작품이 바로 1987년 아이렘에서 출시한 '알타입'이다. 알타입은 탄을 모아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비롯해 방어막의 존재와 다양한 공격 패턴을 지닌 보조무기가 등장하는 등 슈팅 게임을 한 차례 도약 시킨 명작으로 꼽힌다.
이 알타입은 꾸물거리는 곤충이나 에이리언과 유사한 기괴한 모습을 지닌 보스전과 극악의 난이도로 큰 유명세를 타 수 많은 후속작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 고전 명작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충격적인 설정과 스토리였다.
알타입 1편의 기체인 'R-90'은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간의 정신과 무기 모두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감염시키는 외계 생명체 '바이도'와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들과 전투를 위해 파일럿의 몸은 제외(!) 시키고 뇌만 캡슐화 하여 탑승시킨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2007년 발매된 '알타입 택틱스'에서는 태양계로 몰려오는 바이도와의 전투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이상하지 만치 지구에 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으로 그려진다. 더욱이 게임 후반부 '바이도'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할 때 함장과 파일럿의 이름이 전부 변하는데 일본어 버전에서 이들의 이름을 앞의 두 글자만 제외하고 읽으면 “정신을 차리니 바이도가 되어 있었다, 난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지구인은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는 뜻의 충격적인 문장이 나온다.
바로 이 지구로 향하는 '바이도'는 '바이도'를 처부수기 위해 지구에서 출격한 이들인 것.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이도에 감염된 '지구인 부대'는 적을 격파한 뒤 지구로 귀향하고자 했지만, 이미 괴기스런 모습으로 변해버린 이들이 태양계로 접근하자 지구인들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지구로 향하는 외계인도 이를 방어하는 사람도 모두 지구인이라는 가히 충격적인 스토리인 셈이다.
더욱이 태양계의 '바이도'를 전멸 시킨다 하더라도 이미 외우주 곳곳에 바이도의 세력이 남아 있으며, 이들을 격파하기 위해 출격 한들 이들 역시 바이도로 변해 다시 태양계로 향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알타입의 세계관이다. 극악의 난이도로 평가받지만, 내용은 더 꿈도 희망도 없는 게임인 셈이다.
[어디를 선택해도 해피엔딩은 없다!- 드래그 온 드라군]
올해 큰 이슈를 불러온 게임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니어 오토마타'다. 새로운 스타일의 여전사 '2B'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니어 오토마타'는 안드로이드 부대와 기계 생명체로 나뉘어 창조주의 전투를 대신한다는 참신한 소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니어 오토마타'의 세계관이 시작된 게임이 바로 2003년 스퀘어에닉스에서 출시한 '드래그 온 드라군'이다. 이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전투와 용을 활용한 슈팅 스타일의 액션 그리고 무려 5종에 이르는 멀티 엔딩을 갖추었지만, 어색한 캐릭터의 움직임과 어정쩡한 전투 시스템 덕에 작품 자체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흔한 일본 RPG로 보일 수 있는 이 '드래그 온 드라군'이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누구 하나 멀쩡한 이가 없는 캐릭터들과 어느 루트로 가도 절망만이 존재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 때문.
먼저 주인공인 카임은 드래곤을 이끄는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한 망국의 왕자로, 본인 생일에 아버지를 잃고 여동생은 강제로 여신으로 선택되어 감금되는 등 모든 가족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레드 드래곤 '앙헬'과 계약을 맺으면서 목소리도 잃어버린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남자다.
더욱이 여동생인 프리아에 역시 오빠에 연심을 품고 있으며, 주변 동료들 역시 사랑을 독차지하는 오빠를 증오하여 세상도 멸망시키려는 여동생부터 남편과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아이를 잡아먹는 식인을 일삼는 악녀에 비이상적인 성적취향을 가진 전사 등 누구 하나 멀쩡한 캐릭터가 없을 정도다.
더 막장인 것은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들로, 여신이 된 여동생의 죽음으로 붕괴하는 세계를 막기위해 주인공과 사지를 넘나들며 동료 이상의 존재가 된 레드 드래곤 스스로가 여신이 되어 봉인 당하는 것이 가장 해피엔딩일 정도다.
어느 엔딩도 세계가 평화를 찾았다는 것이 없이 주인공이 사망하던가, 이미 세계가 멸망한 단계에 이르렀던가, 소중한 동료가 적으로 돌변하는 등 다채롭게 꿈도 희망도 없어지는 상상 이상의 결과로 다가와 게이머의 정신 세계를 붕괴시킬 정도다. 이처럼 '드래그 온 드라군'은 개발자의 정신세계가 의심될 정도의 설정과 엔딩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언급되는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으며, 그 컬트적인 인기로 무려 2편의 속편이 등장하는 등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