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유도와 목적의식의 절묘한 조화,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
2016년에 첫 출시된 스퀘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아레프갈드를 부활시켜라(이하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는 '마인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샌드박스 게이밍에 일본의 국민 RPG,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세계관을 접목한 점을 강하게 어필한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샌드박스 게임과 일본식 RPG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샌드박스 게임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와 창의성을 제공하는 반면,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스토리가 결여된 경우가 많다. 일본식 RPG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셈이다. 그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각 게이머의 성향에 따라 선호도는 극적으로 나뉜다. 전자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후자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조합,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 리뷰 집계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서 전문가 평가 83점(100점 만점), 사용자 평가 8.1점(10점 만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이는 해당 게임이 다수의 사람들에서 높은 만족도를 제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작의 높은 평가를 등에 업고 2019년(해외는 2018년) 다시 게이머들 앞에 선보인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 파괴신 시도와 텅 빈 섬(이라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참고로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4(PS4)와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개발되었지만 한국어화되어 정식 출시된 건 PS4 버전만이다.
- 파괴의 가르침이 뒤덮은 세계, '만들기'로 구원하라
전작이 드래곤 퀘스트 1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면, 이번 작품은 드래곤 퀘스트 2와 관계가 깊다. 드래곤 퀘스트 2의 주인공들이 사교의 대신관 '하곤(중간 보스)'과 파괴신 '시도(최종 보스)'를 물리친 이후가 바로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의 이야기다. 분명히 악당들을 물리치고 평화의 세계가 온 줄 알았건만, 이상하게도 이 세계는 파괴를 칭송하는 하곤 교단 가르침이 절대적 진리로 통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물건을 창조하는 '빌더'는 교단과 그 추종자들에게 있어 절대악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 주인공 일행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풋내기 빌더인 주인공(이름과 성별, 외모는 게이머가 설정) 역시 위험 인물 취급을 받아 노예선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나 도중에 조난을 당하고, 이윽고 정체불명의 '텅 빈 섬'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 곳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소년 '시도'와 외톨이가 된 소녀 '루루', 그리고 여러 가지 조언 및 게시를 전하는 의문의 '하얀 영감'등의 동료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힘을 합쳐 하곤 교단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것이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의 주된 스토리다.
< 입수한 레시피와 각종 재료를 조합, 다양한 아이템과 건물을 만들 수 있다>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텅 빈 섬은 처음에는 이름 그대로 황폐한 유적 외에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 일행은 세계 각지의 섬을 돌아다니며 각종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료와 레시피(물건이나 건물, 지형 등을 만드는 일종의 설계도), 그리고 각종 아이템을 모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도구를 만들고, 건물을 짓고, 지형을 바꾸는 등의 창조 행위를 통해 텅 빈 섬은 점차 발전해 나간다. 이러한 와중에 주인공 일행이 창조의 즐거움을 세계에 퍼뜨리게 되면서 그 동안 하곤 교단의 가르침에 따라 파괴만 일삼던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마물(몬스터)들까지 '빌더'로서 각성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높은 자유도와 뚜렷한 목적의식이 공존하는 게임 구성
주인공 일행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각 섬 주민들의 '의뢰'로부터 시작된다. 의뢰의 내용은 아이템을 만들어달라, 방을 만들어달라, 마물을 퇴치해 달라 등의 단순한 내용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점차 주인공의 빌더 능력이 향상되고 보유 레시피가 충실해 지면서 성이나 피라미드 같은 대형 건축물을 지어달라, 폭포나 강 등의 지형을 만들어 달라 등, 한층 큰 스케일의 창조를 하게 된다.
< 주민들의 의뢰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빌더 능력이 향상된다>
이 게임의 세계는 수많은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파괴나 수집, 이동, 가공 등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게이머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기존의 일본식 RPG 대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도가 높다. 이런 게임은 자칫 목적성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할 우려도 있다.
< 빌더로 각성한 주민들의 도움을 통해 블록 수 천 개 규모 건물도 쉽게 지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의 경우는 다양한 의뢰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아이템 및 레시피를 순차적으로 입수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감각도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리고 각종 의뢰를 달성하며 '빌드 레벨'을 올리면 각 섬의 주민들도 빌더로 각성해 주인공의 창조 행위에 협력하게 되므로 수천 개의 블록을 조합해야 완성할 수 있는 대형 건축물도 레시피만 입수하면 비교적 빠르고 손쉽게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치게 자유도를 강조하다가 게이머에게 중노동을 시키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의미다.
- 전투와 액션, 시나리오 구성도 비교적 충실한 편
창조 행위 외에 액션 RPG로서의 요소도 비교적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게이머는 세계를 탐험하면서 각종 아이템을 수집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고,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전투 자체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각 장의 보스와 싸울 때는 지형지물이나 특정 아이템을 이용해 공격의 기회를 마련하는 등의 전략적인 요소도 있다. 전투의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라 액션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도 무난히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 전투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보스전을 할 때는 전략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시나리오의 구성도 흥미로운 편이다. 게이머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드래곤 퀘스트 2에서 분명 쓰러뜨렸던 하곤의 교단이 왜 다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왜 이 세계가 창조행위와 빌더의 존재를 그렇게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주인공의 동료인 '소년 시도'가 왜 '파괴신 시도'와 이름이 같은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한 진실의 길로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일행의 창조행위가 각 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므로 시나리오와 시스템 사이의 조화도 좋은 편이다.
< 파괴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 '시도'(왼쪽)의 정체는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물론 스토리 진행을 하지 않고 그냥 텅 빈 섬이나 원하는 섬에 가서 창조행위에만 몰두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주인공의 특수 능력이나 희귀 재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스토리 진행을 다 마친 뒤의 자유 플레이를 통해 창조 활동을 본격화 하는 것을 추천한다. 어찌 보면 이 게임의 시나리오는 엔딩 후의 자유 플레이를 위한 수 십 시간 분량의 튜토리얼일 수도 있겠다.
- 여기저기 만재한 '드래곤 퀘스트'스러움과 전작 대비 개선점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팬이라면 익숙한 전통적인 요소가 곳곳에 만재해 있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등장하는 마물이나 각종 아이템, 그리고 마법 등은 물론,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마을 NPC의 디자인 등과 더불어,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것 같다', '이럴수가 XX가 동료가 되었다!' 등의 시스템 출력 메시지도 시리즈 전통의 관용적인 표현을 그대로 쓴다. 장르가 바뀌었어도 시리즈의 정체성은 유지하겠다는 개발자들의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 시스템 메시지를 비롯한 사소한 점까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작 대비 개선된 부분도 많다. 다양한 블록과 아이템이 추가된 것 외에, 바다 속에서도 활동이 가능 해졌으며, 워프 기능을 통해 거점별로 편리하게 순간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각 장을 클리어 할 때마다 사실상 대부분의 상태가 초기화되던 전작과 달리, 각 섬에서 모은 아이템을 텅 빈 섬으로 가져갈 수 있으며, 주인공의 장비와 능력치도 그대로 이어지고 각 섬의 이동도 자유로워진 것 등 역시 좋아진 점이다.
< 각 시나리오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던 전작과 달리 섬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다>
장점이 많은 게임이지만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저장(세이브)가 1인분만 가능한 점이 아쉽고, 온라인 멀티 플레이는 최대 4인이 참여 가능하지만 자유 플레이만 가능하고 시나리오를 함께 진행하는 건 지원하지 않는다. 카메라 시점은 1인칭과 3인칭이 가능하지만 표시 범위의 임의적인 조절이 되지 않아 종종 불편한 상황에 처하는 것 역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다.
- '적당히 높은 자유도'와 '뚜렷한 목적의식'의 공존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는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샌드박스 게임과 일본식 RPG를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조화시킨 좋은 사례였다. 후속작인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2는 전작의 좋은 점을 대부분 계승하면서 시나리오 및 시스템, 그리고 편의성까지 개선하여 한층 완성도 높은 게임으로 거듭났다. 굳이 마인크래프트류의 샌드박스 게임이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팬이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플레이가 가능하며, 특히 '적당히 높은 자유도'에 '뚜렷한 목적의식'이 공존하는 게임을 선호하는 게이머에게 추천할 만 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